개울 건너에서 건너온 초록빛 삶
개울건너 작가님의 바카라 <<초록 언어로 살아가기>>가 왔다.
바카라의 질감도 자연스럽고 색감도 은은하다. 표지에는 매화가지 하나와 초록 산을 배경으로 옹기들이 가족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다. 표지만 바라보아도 작가가 살아온 삶과 글의 세계가 느껴진다.
작가는 옹기를 구워 팔던 부모님의 구 남매 중 여덟째로 태어났다.
온라인카지노에서 그의 글방을 자주 찾았던 것은 아니지만 몇 편의 글만으로도 이미 사람의 품과 깊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번에 바카라으로 만나 차분히 읽어보니, 콩을 한 알 한 알 심듯 일구어온 삶이 정직하게 글 속에 배어 있었다.
그녀의 글은 꾸미거나 보태기보다 덜어내는 쪽에 가깝다. 군더더기가 없다. 지적 호기심이 많은 나는 늘 더 보고 더 알고 싶어 안달하는 편인데, 작가의 글은 이미 살아낸 것들을 차분하게 건네준다.
그래서인지 담백한 문체가 가족 이야기와 텃밭 이야기에도 참 잘 어울린다.
사랑으로 이어진 대가족
무엇보다 마음을 오래 붙잡은 것은 가족 이야기였다.
구 남매와 부모님의 이야기는 어떤 소설보다 귀했다. 다섯 오빠와 언니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 작가를 보며, 오빠와 남동생 삼 남매였던 나는 솔직히 조금 부러웠다.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은 그 사랑을 다시 흘려보내는 법도 자연스럽게 배우는 것일까.
작가는 가족뿐 아니라 친지와 이웃에게도 자신이 받은 사랑을 알뜰하게 나누며 살아왔다. 그 모습이 그녀의 글 곳곳에 배어 있다.
그녀의 삶에서는 천지인(天地人)의 조화도 느껴진다.
농사는 사람이 아무리 애써도 하늘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 먼저 농사를 지어본 이웃들의 경험과 도움까지 더해진다. 작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농막에서 커피를 나누며 담소를 즐긴다.
누군가 동치미를 건네면 그녀는 만두를 빚어 나눈다.
텃밭을 가꾸는 일이 곧 이웃과 관계를 가꾸는 일이기도 한 셈이다.
마음의 밭에 초록 씨앗을 심다
북토크에서 바카라 제목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작가는 텃밭을 가꾸며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면서 앞으로는 마음의 밭을 잘 일구고 그곳에 초록 씨앗을 심어 키우고 싶다고 했다.
우리 마음에는 누구에게나 거칠고 모난 돌과 자갈이 있다. 그것들을 하나씩 골라내고 흙을 부드럽게 일구어 씨앗을 심는 것. 그리고 싹이 트고 자라는 모습을 기다리는 것.
그렇게 마음을 가꾸며 앞으로도 ‘초록 언어’로 글을 써가겠다는 작가의 마음이 제목에 담겨 있는 듯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글짓기로 칭찬을 받았고 중·고등학교에서도 국어와 음악을 좋아했던 소녀. 대가족의 어려운 형편 때문에 진학을 미루었다가 결혼 후 오십 대에 대학을 졸업한 사람.
그 뒤에도 문예창작교실 등을 통해 자신의 글을 꾸준히 빚어왔다.
그래서 그녀의 문학은 삶과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온 삶 자체가 글이 되어가는 과정처럼 느껴진다.
다섯 살 아이가 품었던 꿈
결혼 후 빠듯한 살림을 꾸리면서도 가계부를 쓰고 부지런히 살아온 작가의 마음 한구석에는 늘 다섯 살 아이가 품었던 꿈이 남아 있었다.
‘나는 장차 어떤 사람이 될까?’
어린 시절 마음속에 그려보았던 자신의 모습을 향해 조금씩 걸어온 시간이 결국 오늘의 바카라으로 이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
그녀의 필명 ‘개울건너’에도 그런 어린 시절의 기억이 담겨 있다.
“어릴 적 봄에, 빨래하러 가는 큰 언니를 따라 개울에 가면 개울 건너 민둥산에 분홍 물감을 뿌려놓은 듯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어요. 가슴에 늘 그 분홍빛이 물들어 있었고… 그 유년과 함께하고 싶어서 ‘개울건너’로 쓰게 되었다.”
나 역시 아련한 고향과 어린 시절의 기억을 품고 살아간다.
우리는 때때로 과거를 잊었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기억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 씨앗처럼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기억이 우리가 가고 싶은 방향을 다시 일러준다.
평화는 소박하다
텃밭에 콩을 심고 깨를 털고 고추부각을 만들어 이웃과 나누는 작가의 삶을 읽으며 한 문장이 오래 남았다.
“평화는 소박하다.”
정말 그렇다.
평화는 거창하지 않다.
고요하고 소박하기 때문에 오히려 오래 마음에 남는다.
초록 고추를 따서 부각을 만들고, 동치미에 넣을 고추를 삭히고, 무와 배추를 말려 시래기를 만들고, 남은 무로 무말랭이를 만든다. 묵나물을 밥상에 올리고 형제와 지인에게 나눈다. 남은 채소는 로컬푸드 매장에 내다 판다.
이런 삶을 읽고 있으면 텃밭에서 거두는 것은 단지 먹거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수고가 음식이 되고, 음식이 나눔이 되고, 나눔이 다시 관계가 되는 삶이다.
해외에 사는 동생이 다녀가면서 된장과 간장, 밑반찬을 챙겨 받으며 “우리 집안에 어머니 전수자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라고 했다는 대목도 정겹다.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손맛이 한 사람의 삶을 거쳐 다시 가족에게 이어진다. 반찬이 오가는 것 이상의 일이다. 한 가족의 기억과 사랑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것이다.
가족이라는 가장 오래된 인연
오빠를 먼저 떠나보낸 올케언니를 챙기는 작가님 부부의 마음도 참 다정하다. 함께 바람을 쐬러 나가자는 아들과 남편의 대화에서부터 이미 그 마음이 느껴진다.
그 자리에서 올케언니가 읽어준 한 문장이 작가의 마음에 깊이 들어온다.
“글은 잘 쓰려고 하면 더 안 써져.”
나 역시 이 말에 크게 공감했다.
글을 잘 쓰려는 마음이 오히려 글을 어렵게 만들 때가 있다. 결국 가장 좋은 글은 잘 쓰려고 애쓴 글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글인지도 모른다.
결혼 43년을 살아온 작가는 한때 과묵한 남편을 감내해야 했지만, 이제는 세월이 지나며 표현되지 않았던 사랑도 사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나 역시 36년째 부부로 살고 있다. 이제야 조금씩 서로의 성향과 다름을 이해하고 인정하며 살아간다.
부부의 인연은 참 묘하다. 젊어서는 서로 다름 때문에 힘들어하고, 시간이 흐르면 그 다름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사랑보다 어쩌면 더 깊은 이해와 연민으로 서로의 손을 잡고 가는 사이가 되는 것 같다.
빚과 사랑의 기록
온라인카지노 연재작 『가족의 노래』에서도 읽었던 대가족 이야기는 이 바카라에서 다시 만나도 뭉클했다.
특히 ‘빚과 사랑의 기록’이라고 표현한 작은언니 이야기가 오래 남는다.
두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언니는 동생에게 보호자이자 선배였고, 음악을 통해 세상을 보여준 인생의 길잡이였다. 부모님이 멀리 계실 때 가족을 돌보기 위해 자신의 진학을 포기했던 언니.
그런 삶을 원망이나 불평으로 남길 수도 있었을 텐데 언니는 가족을 위해 자신의 몫을 묵묵히 살아냈다.
돈을 빌려서라도 찾아온 동생에게 고기를 사주고, 임신한 동생이 김밥이 먹고 싶다고 하면 김밥을 싸서 손에 들려 보내고, 어려운 형편에도 조카를 불러 함께 살자고 했던 언니.
그런 삶을 보면 ‘한 알의 밀알’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그 언니에게서 받은 사랑의 빚이 작가의 삶에서도 다시 나눔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오빠들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그중에서도 바카라을 출간하며 가장 먼저 떠올린 막내 오빠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가족 중 유일한 음치였지만 막춤과 유머로 분위기를 살리고, 조카들의 등록금을 보태고 가족여행도 데려가던 오빠.
“세상을 혼자 잘 살려고 하지 말고, 어려운 가족은 서로 살피고 도우며 살아라.”
그의 목소리가 지금도 가족들 사이에 남아 있는 듯하다.
내가 꿈꾸는 시골생활과는 조금 다르지만
사실 나도 귀촌해 남편과 텃밭농사를 짓고 있다. 하지만 농사는 대부분 남편의 몫이다. 나는 옆에서 사진을 찍거나 조금 거드는 정도다.
고추가 너무 많이 열려 먹다 지친 적도 있다. 그런 나에게 고추부각은 정말 ‘어나더 레벨’이다.
작가의 야무진 손길과 꼼꼼한 살림솜씨에 비하면 나의 5도 2촌 시골생활은 그저 빙판 위를 휘리릭 스케이트 팅하는 수준이다. 그리고 유목민 성향이 강한 나는 때만 되면 또 휘리릭 여행가방을 챙긴다.
그래서인지 그의 텃밭 이야기가 더 재미있고 존경스럽다.
그녀는 농사만 짓는 것이 아니라 삶을 알뜰하게 가꾸고 있다.
개울 건너에서 만난 초록 언어
바카라을 덮으며 작가의 마지막 말을 다시 읽었다.
“돌아보면, 제 몫의 길은 제법 따뜻했습니다.
앞으로도 잘 쓰려 애쓰기보다
곁에서 들려오는 작은 것들을 놓치지 않으며
제 속도로 걸어가려 합니다.”
이 문장이 이 바카라 전체를 잘 말해주는 것 같다.
그녀는 멀리 있는 특별한 것을 찾아다니기보다 자신의 곁에 있는 가족과 이웃, 텃밭의 흙과 채소, 지나간 어린 시절의 기억을 오래 바라본다. 그리고 그 작은 것들에서 삶의 의미를 길어 올린다.
어쩌면 좋은 글이란 바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거창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곁에 늘 있었지만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고, 그것에 마음을 건네는 일.
그래서 그녀의 첫 열매 <<초록 언어로 살아가기>>는 텃밭 이야기이면서 가족의 이야기이고, 한 사람의 성장기이면서 결국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조용한 답처럼 읽힌다.
개울 건너 분홍 진달래를 바라보던 어린 소녀는 이제 자신의 마음 밭에 초록 씨앗을 심고 있다.
그 씨앗이 자라 앞으로 어떤 초록의 문장들을 피워낼지 궁금하다.
잘 쓰려고 애쓰기보다
곁에서 들려오는 작은 것들을 놓치지 않고
자기 속도로 걸어가겠다는 작가의 다음 길을 응원한다.
개울 건너에서 건너온 초록빛 언어가
앞으로도 오래도록 싱싱하게 자라기를 바라며~^^!
https://fishingproductfr.com/@63c194385ce4419/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