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개방의 도시 상하이

유라시아 기행- 세계를 향해 열린 중국의 창

by김별

[서에서 동으로, 유라시아를 걷다]


마침내 유라시아 횡단의 거대한 동쪽 관문이자 인구 2,400만의 메가시티, 상하이(上海)에 도착했다.

중국 수도 북경과 인구 최대도시 충칭과 함께 상해는 중국 최대 도시이자 직할시다.


유라시아를 서에서 동으로 달려오며 수많은 도시를 만났지만, 상하이는 조금 다른 도시였다. 이곳은 단순한 중국의 대도시가 아니라 중국이 세계와 만나는 창이었고, 과거와 미래가 가장 극적으로 맞닿아 있는 공간이었다.


상하이는 양쯔강이 동중국해로 흘러드는 하구에 자리한 항구도시다. 중국 내륙에서 생산된 수많은 물자가 이곳으로 모여 바다를 통해 세계로 나가고, 세계의 자본과 기술은 다시 이 항구를 통해 중국으로 들어온다.

오늘날 상하이가 중국 최대의 경제도시가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지리가 만든 필연이었다.



이름없는 어촌에서 세계의 허브로


상하이는 원래 이름도 없던 조용한 어촌이었다. 그러나 1840년 제1차 아편 전쟁 이후 유럽 열강에 의해 강제로 문을 열어야 했고, 1930년대에는 아시아 최대의 금융·상업 거점으로 비상했다.


1949년 공산당 정권 수립 이후 국제무역이 슬롯주의권으로 제한되면서 도시의 활력은 한동안 빛을 잃었다가 다시 비상한 것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후였다.

"흑묘든 백묘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

이 실용주의 한마디는 중국의 운명을 바꾸었다. 푸둥 신구 개발이 시작되었고, 불과 30여 년 만에 다시 눈부시게 변했다.


푸둥공항에 내려 시내로 향하는 길, 영국·프랑스·미국 열강이 남긴 150년 세월의 고풍스러운 유러피언 스타일 건축물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동양의 파리라 불리는 이 도시는 뉴욕, 도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상하이 증권거래소와 세계 최대의 무역 허브를 품은 거대한 생태계가 되었다.

인공지능과 반도체, 바이오산업, 전기차 산업까지 미래 산업을 이끄는 핵심 도시로 성장하며, 앞으로도 태평양과 유라시아를 연결하는 중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여행 첫날, 아찔했던 시간


그런데 호텔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려는 순간 갑자기 싸한 느낌. 여권과 휴대전화, 현금이 들어 있는 크로스백을 택시에 두고 내린 것이다.

남편은 급히 달려갔으나 택시는 떠난 뒤였고 다행히 인도네시안 인턴 직원이 영어를 능숙하게 해 신속히 휴대전화를 잠그고 위치 추적과 공안 신고를 도와주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양심적인 택시기사의 연락으로 가방은 무사히 돌아왔다.


만약 여권을 잃어버렸다면 여행 일정은 물론 가족들의 계획까지 모두 틀어질 뻔했다.

좋은 숙소를 선택하는 것이 여행 성공의 절반이라는 말을 새삼 실감했다. 그리고 평소엔 부정적이었던 중국의 감시카메라와 공안시스템 덕을 내가 보게 될 줄은 몰랐으니 인생 만사 참 아이러니다.



황푸강, 과거와 미래가 마주 서다


상하이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와이탄(外灘)이다. 외국인 거주지였던 '바깥쪽 물가'라는 뜻의 와이탄은 황푸강을 사이에 두고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강 서쪽에는 과거 열강의 탈취와 수탈이 남긴 고풍스러운 유럽풍 은행 건물들이 묵직하게 버티고 있고, 강 동쪽에는 20년 만에 마천루로 탈바꿈한 푸둥의 상징, 구슬 세 개를 꿰어 놓은 듯한 동방명주(Oriental Pearl Tower)와 최첨단 고층 빌딩들이 화려한 오색 불빛을 뽐낸다.

사이로 황토색 황푸강물이 마치 거대한 황룡처럼 꿈틀대며 흐르는 그 강을 중심으로, 과거의 상처와 미래의 야망이 양대 산맥처럼 마주 보고 서 있는 셈이다.



골목에서 만난 중국


이튿날에는 명나라 때 조성된 예원을 찾았다. 아홉 번 꺾인 구곡교를 건너 빨대로 육수를 빼먹는 공갈빵 같은 빨대 만두를 맛보고, 프랑스 조계지였던 티엔즈팡과 상하이의 압구정이라 불리는 신천지를 걸었다.


슬롯주의 나라답게 널찍한 인민공원에서 자식의 프로필을 빼곡히 적어두고 짝을 찾으려는 부모들의 '결혼 시장' 풍경은 슬롯주의의 거대한 외피 아래 흐르는 지극히 인간적인 부모의 마음을 보여주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만난 오늘의 나


신천지 근처에 자리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는 화려한 메가시티 속에서 돌연 숙연해지는 공간이었다.

1919년 3·1운동 이후 세워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청사'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좁은 3층 가정집이었다.

작은 집무실, 비좁은 계단, 소박한 침대가 나라를 지키고 독립을 이뤘다는 공간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1949년 흉탄에 서거하기까지 백범 선생님과 독립운동가들이 겪었던 엄혹한 세월을 떠올렸다.


그곳에서 나와 프랑스 조계지의 세련된 카페에 앉아서도 남의 땅을 침탈했던 열강의 역사를 두루 씁쓸하게 곱씹어 보게 되었다. 지금 우리는 그들이 흘린 피와 거름 위에서 비록 독립은 찾았으나, 여전히 분단된 조국에 살고 있다.

선조들이 그리도 소원했던 완전한 독립과 평화를 넘어, 이제는 남북이 하나로 이어져 기술과 자원, 인구를 겸장한 위대한 통일 코리아를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바카라임감이 무겁게 밀려왔다.


개방의 도시 상하이는 내게 중국의 과거뿐 아니라 미래를 보여 준 도시였고, 동시에 대한민국의 과거를 가장 깊이 돌아보게 한 도시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상해숙소 호텔과 예원근처 거리


와이탄 야경, 야경의 초록색 은행건물이 이쁘다


왼쪽 동방명주랑 오른쪽 상하이 타워- 막내시누 부부와



예원

상해 먹거리풍경

상해 음식은 해산물 천국, 특히 털게 튀김등 꼬치랑 거리음식점에서 다양한 걸 맛볼 수 있다


상해여행 3일째는 티엔즈팡이라고 이전 프랑스 조계지 근처를 둘러보았다. 이쁜 전시공예품들과 소품들, 그리고 전통상품들이 있는 우리나라의 인사동같은 지역이었는데 개인적으로 반나절을 보내고 싶은 곳이었다. 그기서 중국 전통치마를 사고 실크 스카프도 샀다. 여자들에게는 쇼핑을 즐기며 차도 마시고 중국을 좀 더 세밀히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티엔즈팡에 골목상점이 엄청 많아서 하루종일 돌아다닐 수 있다



건물 전체 색갈이 레드다~Red is lucky in China


신천지 카페 음식적 거리


실내에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다



백범의 부인은 산후 조리중 좁은 계단에서 실족한 후 폐렴까지 겹쳐 그 후 1년을 고생하다가 돌아가셨다. (주변인들 말로는 시어머니가 뜨다 주시는 세숫물이 죄송한 며느리가 혼자 내려오다 넘어지셨다 한다)

최 여사의 임종을 지켜본 사람에 따르면 임종하기 전에 남편인 백범을 부르려고 하자 아내는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당시 병원은 프랑스 조계(租界) 밖에 있었고, 일경들이 백범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차로 불과 10분 거리에 있었음에도 백범은 아내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백범의 동지들이 의연금을 추렴해 최 여사의 장례를 치르고 묘비까지 세웠는데 최 여사의 나이는 서른여섯, 백범과 혼인한 지 18년째였다. 이후 백범은 새장가를 들지 않고 일생을 독신으로 지내며 살다가 1949년 안두희가 쏜 흉탄을 맞고 서거했다.


프랑스 조계지- 간판이 불어다



프랑스 조계지에 있던 옛 건물을 이용한 카페


신혼 침구셋트도 온통 빨강색이다


인민공원앞 길거리 풍경


장기 삼매경 인민공원 - 빨간표지판은 지금 장기 시합중이란 뜻



이 놀라운 진풍경에 놀랐다. 많은 사람들이 군집해있고 혼인광고 메모판이 즐비했다. 결혼정보 광고를 보러오는 사람들과 광고대행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내용을 보면 "83년생 키 178 남자, 87~91년생 키 165 이상 상해여자구함등" 그리고 연락처는 주로 모친 전화번호가 있다.

박사학위 소지자도 자주 보이고 유능하고 인품좋은 남자를 구한다는 말도 보인다. 자식을 혼인시키고 싶어하는 간절한 부모마음이 이런 식으로 표출되는구나 싶었다.


자본주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난징루 - 상해 신세계 백화점



난징루 거리(남경로)




먹는것으로 치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중국이다. 상해와 인근의 항조우, 푸조우 를 방문하여 다양한 음식을 접해보았다.


흔히 중국의 4대요리는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 쓰촨(四川) ,광둥(廣東) 요리를 일컫는다.


넓은 땅의 지방별 기후, 풍토, 산물에 따른 다양한 요소가 작용하여 4대 요리가 형성되었는데 황허강 유역 및 기타 북방은 베이징 요리를 대표로 하고, 양쯔강의 하류는 상하이 요리를, 양쯔강의 중상류는 쓰촨 요리를, 쭈강 유역은 광둥 요리를 대표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기나 생선 등 주재료에 따라 전문 식당이 있지만, 중국에서는 한 식당에서 육해공이 모두 준비되어 다양한 음식을 회전판에 올려 함께 나누어 먹는 편이다. 상해 요리는 다양한 지역 출신 사람들이 모인 국제 도시답게 호텔 조식처럼 음식도 누구나 무난하게 즐길 수 있는 맛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지역마다 특색을 나타내는 말이 있으니 "남담북함 동남서랄"이라고 남쪽은 담백하고, 북쪽은 짜며, 동쪽은 달콤새콤하고, 서쪽은 맵다고 하는데 상하이의 음식은 남쪽 지방답게 담백함이 특징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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