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공존의 멜로디, 세비야

유라시아 기행 스페인 세비야

by김별

리스본 다음으로 유라시아의 서쪽 끝, 그 역사의 갈래를 따라 도착한 곳은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심장, 세비야다. 이곳은 유럽의 서구적 질서와 이슬람의 신비로운 미학이 800년의 공방전 끝에 빚어낸 거대한 융합의 현장이다.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을 넘어, 문명이 충돌하고 스며든 '원융(圓融)과 통섭'의 역사가 도시 곳곳에 서려 있다.



레콩키스타의 기억, 세비야 대성당과 알카사르


세비야의 공기는 이색적이다. 711년 이슬람 세력이 이베리아반도를 장악한 후, 약 800년 동안 이어진 '레콩키스타(국토 회복 운동)'의 흔적이 도시의 골격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슬람 세력이 이베리아반도(오늘날 스페인과 포르투갈 지역)를 급습하여 단기간에 장악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었다.


당시 이베리아반도를 지배하던 서고트 왕국은 왕위 계승 문제로 극심한 내분을 겪고 있었고 이에 왕권이 약화되고 귀족 간의 파벌 싸움이 치열해지자, 권력에서 밀려난 세력이 이슬람 세력(우마이야 왕조)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반대로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무너진 틈을 타 이슬람군이 손쉽게 침투할 수 있는 정치적 공백이 생겼다.


이슬람 군대는 아랍인과 북아프리카의 베르베르인으로 구성된 정예병이었고. 통일된 지휘 체계 하에 있었기에 이들은 기동력이 뛰어난 기병 전술을 앞세워 단시간에 거점을 장악했다.


다행히 이슬람 세력은 정복 과정에서 파괴보다는 '협상과 관용'을 택했는데 기독교인이나 유대인들에게 일정 정도의 세금을 내는 조건으로 종교의 자유와 재산권을 보장함으로써 정복을 당하는 지역 주민들이 저항을 포기하거나, 오히려 고질적인 부패와 차별에 시달리던 서고트 지배층보다 이들의 통치를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이슬람 무어인의 침공은 '지배층의 분열로 무너진 왕국'과 '새로운 통치력을 앞세운 팽창 중인 이슬람 제국'의 만남이었기에 이후 약 800년 동안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역은 고도의 이슬람 문명과 서구 기독교 문화가 뒤섞이며 독보적인 문화를 꽃피우게 된다.


세비야 대성당은 그 치열했던 역사의 증인이다.

이슬람 사원이었던 모스크의 미나레트를 개조한 히랄다 탑은 오늘날 이 도시의 전망대 노릇을 하고, 성당 내부의 거대한 제단은 이슬람의 성전의 빈 공간을 기독교적 열정으로 빽빽하게 채워 넣은 흔적이다.

백 년에 걸쳐 지어진 이 거대한 건축물 안에는 콜럼버스의 무덤이 안치되어 있는데, 이는 대항해 시대 스페인이 쏟아부었던 막대한 부와 정복의 영광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더 깊은 융합의 미학은 알카사르 궁전에서 만날 수 있다.

이슬람 요새를 가톨릭 왕들이 증축한 이곳은 이슬람 건축술과 기독교 왕실의 권력이 결합한 '무데하르 양식의 정점이다. 특히 '대사의 방' 천장에 새겨진 황금빛 목조 돔은 밤하늘의 별을 형상화한 공예의 극치이며, '처녀들의 안뜰'이라 불리는 중정은 물과 그늘을 귀하게 여겼던 무어인들의 미학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슬람의 기술로 기독교의 왕을 기리는 이 모순적이고도 아름다운 공간이야말로 세비야가 품은 문화적 역설이다.




삶의 슬픔과 저항, 플라멩코의 진혼곡


세비야에서의 첫날 밤, 숙소 아래층에서 마주한 플라멩코 공연은 내 여행의 관점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레콩키스타 이후 가톨릭 왕정의 박해를 피해 안달루시아 변두리로 숨어들었던 집시들의 예술, 플라멩코는 상처와 한(恨), 그리고 저항의 정서를 담고 있다.


공연은 강렬했다. 무용수의 격렬한 발구름(사파테아도)과 애절한 노래, 그리고 리듬을 쪼개는 기타 연주가 좁은 공간을 꽉 채웠다. 멜로디는 아랍의 향수를 품었고, 춤사위는 방랑하는 집시의 자유를 노래했다.


스페인 라틴 문화와 아랍 무어인, 그리고 집시의 피가 섞여 탄생한 이 예술은 각 문화가 서로를 배척하지 않고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결과물이다. 며칠간 머물며 매일같이 그들의 땀과 호흡을 지켜보며, 나는 이것이 단순한 민속 공연이 아닌 한 문명이 겪어온 고통의 승화라는 것을 깨달았다.



미래를 향해 뻗은 쉼표, 메트로폴 파라솔


구시가지의 중세풍 골목을 걷다 마주한 '메트로폴 파라솔'은 무척 생뚱맞다.

세계 최대 규모의 목조 건축물로, 버섯 모양의 독특한 외관 때문에 '세비야의 버섯들'이라 불린다. 중세 고딕과 이슬람 양식의 도시 한복판에 나타난 이 미래지향적 구조물은 당혹스럽기도 하지만, 동시에 강렬한 안달루시아의 햇살을 피할 서늘한 그늘을 내어준다.


세비야의 매력은 바로 이런 것이다. 과거의 상흔을 지우지 않고 그 위에 미래를 쌓아 올리는 것. 성당의 종소리와 플라멩코의 기타 소리, 그리고 현대적 건축물의 그림자가 한데 섞인 세비야를 보며 나는 유라시아의 연결 또한 이와 같아야 함을 생각한다. 파편화된 문화와 역사가 길 위에서 만나 서로의 그림자를 안아줄 때, 대륙은 비로소 하나로 이어질 것이다.



i_9bcUd018svc1qmny3jw2j1p3_h3kbqd.jpg?type=e1920_std

세비야 대성당 앞에서 먹은 빠에야~남비가 뜨거워서 온도유지가 되는 것은 좋았으나 맛은 별로였다.


i_9bcUd018svc13uruecu4ghs8_h3kbqd.jpg?type=e1920_std

세비아 대성당 용서의 문 입구


i_abcUd018svc1d4fwdhu63d4a_h3kbqd.jpg?type=e1920_std

알카사다궁전 중정


i_abcUd018svc1821yxa1bpo3b_h3kbqd.jpg?type=e1920_std

궁전의 정교한 아랍풍의 아치문

i_bbcUd018svc5pi7d6osl90m_h3kbqd.jpg?type=e1920_std

궁전입구 조약돌 문양~~반질함속에 세월이~~그 발자국들이 그려진다


i_cbcUd018svcgynku9uwvdfh_h3kbqd.jpg?type=e1920_std

세비아 성당안의 콜럼버스 무덤


i_4bcUd018svc1fivrtis7kgss_h3kbqd.jpg?type=e1920_std

마그네틱도 무거워 안 사고 사진으로 대신했다.


i_6bcUd018svc1hhoggisss75f_h3kbqd.jpg?type=e1920_std

징박힌 신발 밑창 찍어봤다~어떻게 해서 그리 요란한 소리가 나나해서


i_6bcUd018svchf49b0g3ishj_h3kbqd.jpg?type=e1920_std

메트로 폴 파라솔~~그늘에 돗자리 깔고싶은 곳이다 ㅎㅎ



i_8bcUd018svccizwwa2xtf4_h3kbqd.jpg?type=e1920_std

플라멩코 박물관 여인그림들



다음 화 예고~세비야 이슬람 향기를 뒤로하고, 프랑스 마르세이유로 향한다. 지중해의 바람을 따라 서유럽에서 시작된 연결의 여정은 계속된다.


#유라시아횡단 #세비야여행 #인문기행 #알카사르 #플라멩코 #레콩키스타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