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마르세유, 문명은 왜 항구에서 시작될까

유라시아 기행 남불의 마르세이유

by김별

문명은 왜 항구에서 시작될까

문명은 왜 내륙이 아니라 항구에서 먼저 꽃 피웠을까.


지중해의 푸른 물결을 가르며 크루즈가 첫 기항지 마르세유(Marseille)에 닿았다.

배에서 내리자 가장 먼저 바다 냄새가 나를 맞았다.

파리는 프랑스의 수도다. 하지만 프랑스를 처음 세계와 연결한 도시는 마르세유였다.


기원전 600년, 로마보다 먼저 그리스인들이 이곳에 항구를 세웠다. 2,600년이 지난 지금도 마르세유는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자 지중해를 향한 관문이다.


도시는 파리처럼 세련되지는 않았다.

대신 거친 바람과 짭조름한 바다, 오래된 부두와 시장이 살아 있었다.

그 생동감이야말로 마르세유의 첫인상이었다.



'라 마르세예즈'가 태어난 도시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는 이 도시에서 시작되었다.

혁명 당시 마르세유 의용군이 파리로 진군하며 부르던 노래를 시민들이 '마르세유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라고 불렀고, 그것이 오늘날 프랑스 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마르세유와 파리의 관계는 늘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수도를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과 남부의 독자적인 문화는 오랫동안 충돌했다.루이 14세는 반란을 진압한 뒤 요새의 대포를 바다가 아니라 시내를 향하게 했다. 적보다 백성이 더 무서웠던 모양이다.


오늘날에도 PSG와 올랭피크 마르세유의 '르 클라시크'는 프랑스 최고의 라이벌전으로 꼽힌다.

축구 한 경기에 도시의 자존심과 오랜 역사가 함께 뛰고 있는 셈이다.



남프랑스가 품은 여유


마르세유에서 40분쯤 달리면 액상 프로방스(Aix-en-Provence)가 나온다.

'샘과 온천의 도시'라는 이름처럼 느긋한 공기가 도시를 감싼다. 폴 세잔이 이곳에서 빛을 찾았고, 에밀 졸라는 이 거리에서 젊음을 보냈다.

햇살은 부드럽고, 플라타너스 그늘 아래 카페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인구 40만 남짓.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규모의 도시다.

언젠가 한 달쯤 살아보고 싶은 곳으로 조용히 찜해 두었다.


30여 년 전 내가 툴루즈에서 공부할 때도 프랑스 대학 등록금은 놀라울 만큼 저렴했다.

지금도 국공립대학은 다른 영어권 국가보다 부담이 훨씬 적다.

나는 가끔 후배들에게 프랑스 유학을 권한다.

전공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문화와 예술 속에서 삶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수박 한 조각이 남긴 미소


시장 골목에서 유난히 수박이 먹고 싶어졌다.

1/4조각을 집어 들고 조금만 더 잘라 달라고 부탁했더니 농부 총각은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웃으며 칼을 들었다. 계산을 마치고 잔돈을 건네려 하자 그는 손사래를 쳤다.

"자르는 값은 서비스입니다."

1유로도 안 되는 돈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보다 훨씬 큰 미소를 선물 받았다.


여행을 하다 보면 알게 된다.

사람은 큰 호의보다 작은 친절을 더 오래 기억한다는 것을.




자유와 평등은 함께 살아가는 기술이다


프랑스 시청에는 어디를 가도 마리안느가 있다.

혁명의 여신이자 자유·평등·박애를 상징하는 공화국의 얼굴이다.

혁명이 남긴 것은 왕조의 몰락만이 아니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마르세유와 파리는 정치도, 문화도 다르다.

그럼에도 하나의 프랑스를 이루고 있다.

그 모습은 서로 다른 나라들이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유럽연합(EU)을 떠올리게 한다.


여권도, 환전도 없이 국경을 넘는 사람들을 보며 문득 한반도를 생각했다.

언젠가 우리도 기차를 타고 서울에서 평양을 지나 시베리아로 이어지는 길을 아무렇지 않게 달릴 수 있을까.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대성당에 오르니 마르세유 항구와 지중해가 한눈에 펼쳐졌다.

수백 년 동안 항해를 떠나는 사람들은 이 언덕에서 무사 귀환을 기도했을 것이다.

성모상은 오늘도 묵묵히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중해는 바다가 아니라 길이었다


마르세유의 대표 음식은 부야베스(Bouillabaisse)다. 어부들이 팔고 남은 생선을 모아 끓여 먹던 소박한 음식이 오늘날 프랑스를 대표하는 요리가 되었다.

'국물이 끓으면 불을 줄여라.'부야베스라는 이름에는 그런 뜻이 담겨 있다.


가난한 식탁에서 태어난 음식이 최고의 요리가 되었듯, 문명도 언제나 평범한 사람들의 삶 속에서 자라난다. 마르세유도 마찬가지였다.


작은 항구에서 시작한 도시는 지중해를 오가는 사람과 물자, 종교와 사상을 받아들이며 프랑스를 세계와 연결하는 관문이 되었다.


생각해 보면 지중해는 바다가 아니었다.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를 이어 준 거대한 길이었다.

그 길을 따라 그리스 철학이 전해졌고, 로마의 법이 퍼졌으며, 이슬람의 과학과 향신료도 건너왔다.

문명은 언제나 길 위에서 자랐다.


그래서 나는 유라시아를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서로 연결되어 온 길을 따라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평양과 시베리아를 지나 다시 이곳 마르세유까지 이어지는 날이 온다면, 그때 비로소 유라시아는 지도 위의 대륙이 아니라 하나의 길이 될 것이다.



프랑스 가정식 마르세유 지방의 전통 생선 스튜 |부야베스|

https://www.youtube.com/watch?v=nS4TWpa65yI


거의 1500년 오래된 생 소뵈르 교회


1500년이 넘은 교회라 왼편은 나중에 쌓은 벽으로 스무드하고 오른편은 백 년 전 쌓은 벽돌로 터프한 점이 다르다

지중해 과일은 충분한 일조량으로 다 맛있고 달다. 수박을 여긴 이렇게 잘라서 판다. 직접 농사지은 걸 가져와서 파는 마켓이다.


납작 복숭아도 있다


액상 프로방스 시청. 프랑스기 양옆에 우크라이나와 유럽연합기가 있고 맨 끝 양 옆에 지역깃발이 카탈루냐지역, 바르셀로나와 같다. 이곳은 서로 연대가 되고 이민자들도 많은 곳이라 공용기로 쓰인다 한다. 프랑스와 우크라이나기 사이의 여자 조각이 마리안느인데 그 아래 egalite 평등이란 말이 쓰여있다.


세 개의 시계가 있는 탑


해바라기를 보니 고호가 생각나는 남불 프로방스


마르세이유 항구


애피타이저로 나온 치즈가 부드럽고 맛있었다


항구라 역시 생선요리가 대세다



전쟁에 승전한 전사들 기념비, 마르세이유항


마르세이유 대성당에서 내려다보는 마르세이유 항구뷰


마르세이유 대성당




다음 화 예고~ ‘영원의 도시’ 로마로 향한다. 지중해의 바람을 타고 대륙의 문명이 어떻게 다시 하나로 맞닿아 흐르는지 그 궤적을 계속 따라가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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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