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모든 길은 로마로~!

유라시아 기행 로마 편

by김별


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했을까.

새벽 6시 30분, 로마로 향하는 길에 가슴이 뛴다.


2천 년 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로마로 모여들었다. 군인과 상인, 순례자와 사절단이 제국의 중심으로 향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로마는 도시 이전에 길이었다.

오늘 나의 발걸음을 안내할 가이드 ‘빈센트(비니)’는 로마 병사의 투구라도 얹어야 할 것 같은 각진 얼굴과 강렬한 인상을 가졌다. 피렌체의 가이드가 훈남의 미소로 예술을 이야기했다면, 비니는 고대 로마의 돌벽처럼 단단한 역사를 이야기했다.


여행지마다 풍경과 음식을 넘어 그 땅을 닮은 사람을 만나는 것, 그것이 내가 현지 가이드를 고집하는 이유다. 신토불이(身土不二)다.

그 땅과 그곳에 사는 사람은 둘이 아닌 하나다. 그래서 풍경만 보는 여행보다 그 땅을 살아온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 비로소 도시가 입체적으로 살아난다.



로마는 어떻게 유럽을 하나로 만들었을까


로마를 이해하는 것은 서구 문명이라는 거대한 운영체제(OS)를 여는 것과 같다.


기원전 753년 작은 도시국가로 출발한 로마는 지중해를 둘러싼 거대한 제국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로마를 위대한 제국으로 만든 것은 군대만이 아니었다.

법이었다. 그리고 길이었다.


정복한 땅마다 먼저 도로를 놓았다.

길이 열리자 군대가 움직였고, 상인이 오갔다.

라틴어가 퍼졌고, 법이 자리 잡았다.

사람과 문화가 오갔다.

로마는 칼보다 길로 더 오래 제국을 유지했다.


오늘날 유럽 곳곳에 남아 있는 로마 가도는 단순한 유적이 아니다. 유라시아 서쪽을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었던 최초의 네트워크였다.


그러나 거대한 제국도 영원하지는 않았다.

끊임없는 영토 확장과 권력 다툼, 내부의 부패는 결국 스스로를 무너뜨렸다.

역사는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균열이 더 무섭다는 사실을 로마를 통해 다시 보여 준다.




콜로세움, 영광과 잔혹함이 함께 서 있는 곳


콜로세움 은 영광과 잔혹함의 상징이다. 4만 명의 인부를 동원해 네로 황제의 인공연못을 메우고 세운 이 거대한 원형 경기장은, 시민들에게 ‘빵과 서커스’를 제공하며 황제의 권력을 다졌던 정치적 도구였다. 2,000년의 지진과 전쟁을 견딘 건축 기술은 놀랍지만, 그 안에서 희생된 이들의 순교와 맹수의 울음소리가 겹쳐지는 것은 역사의 비극이다.


글래디에이터영화로도 잘 알려진 장소지만 실제 그곳에서 모의해전이 이뤄졌다는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인근의 강물을 끌어들여 바닥이 평평한 군함을 띄우고 사형수들을 전사로 사용해서 연출이 아닌 목숨을 건 진짜 전투를 벌였다. 시민들의 환심을 사고 제국의 위엄을 과시하기 위한 목적의 초대형쇼였던 것이다.


나는 로마인의 거대한 건축 기술에 감탄하면서도 인간의 잔혹함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문명은 언제나 빛과 그림자의 양면을 품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니는 경기장이 버려졌던 수백 년 동안, 로마 시민들이 이곳의 대리석을 뽑아 자신의 집을 짓는 데 썼다고 했다. 그 말은 로마가 또 다른 형태의 로마로 이어짐을 보여주는 거 같아 흥미로웠다.





바티칸, 권력과 예술의 정점


황제의 도시는 교황의 도시가 되었다. 로마 제국은 무너졌지만 중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황제의 권력은 교황의 권위로 이어졌고 제국의 수도는 기독교 세계의 수도가 되었다.


세계 3대 박물관 가운데 하나인 바티칸 박물관에는 천 년 동안 축적된 예술이 담겨 있다.
120미터에 달하는 지도 복도는 교황의 세속적 권위와 신성한 지배력을 동시에 보여준다.

시스티나 성당에서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을 마주했다.


4년간 고개를 쳐들고 천장화를 그리다 중증의 통증을 얻었다는 대목에 그 고통이 내 목에 전해지는 듯해서 나는 그 자세로 4 분도 힘들다고 중얼거렸다.

또한 ‘최후의 심판’ 속 나체에 덧그림이 그려졌던 일화와, 자신을 비판한 의전 담당관을 지옥의 모습으로 그려 넣은 미켈란젤로의 복수(?)는 인간적인 유머와 예술적 자존심으로 다가왔다.

성 베드로 대성당의 거대한 위용 앞에서 나는 지난 유럽 여행 동안 보았던 수많은 성당과 모스크의 기억을 갈무리했다. 이제 성당 기행은 여기서 종결지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그곳이 종착지처럼 느껴졌다.


신앙은 달라도 사람들은 모두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삶의 의미를 찾는다.

그리고 종교란 시스템은 어쩌면 지금도 가장 강력한 지배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로마는 끝났지만 AMOR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비니는 로마(ROMA)를 거꾸로 읽으면 사랑(AMOR)이 된다고 했다.

줄리어스 시저조차 사랑의 여신 비너스를 숭배했듯, 이 도시는 결국 정복의 역사가 아니라 사랑의 흔적으로 기억되길 바라는 지도 모른다.

돌아오는 다리 위에서 본 "모든 것은 로마에서 시작되었다"는 문구가 다시 묵직하게 남았다.


로마는 스스로를 세상의 중심이라 믿었지만, 결국 그 거대한 중심은 스스로 무너졌다. 하지만 그 파편들은 유럽 곳곳에 스며들어 오늘날의 서구 문명이 되었다.


로마가 과거 ‘길’을 통해 정복했다면, 우리가 꿈꾸는 유라시아의 미래는 남북 철도라는 ‘철길’을 통해 다시 연결되는 또 다른 로마, 사랑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로마, 씨유 어게인(See you again)!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나의 유라시아 횡단은 계속된다.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오는 콜로세움


못은 없다 ㅡ 바위사이에 현대식 시멘트는 대신 화산돌과 흙, 우유등을 섞어서 만든 단단한 재료가 사용되었다 한다. 돌과 돌 사이는 연결되지 않아서 한 돌이 빠지면 와그르르할 수도 있는데 전쟁. 지진에도 버틴 로마의 건축기술이 대단하다.원래 있던 부분과 새로 헛된 부분에 색깔의 차이가 보인다


파리 개선문을 본 따 만들었는 콜로세움 옆의 티투스 개선문


하루 종일 깃발대신 파란 우산 들고 열일한 가이드 비니


널찍한 도로를 사이에 두고 한 건물인듯한 유적지들이 길가에 즐비하다


이전 유적지들- 로마에서는 뒹구는 돌들도 다 역사다 ㅎㅎ


하얀 대리석으로 지어져 웅장하면서도 아름답다


유럽에 오면 지칠 줄도 모르고 내가 좋아하는 반질반질한 바닥돌

1~ 2세기 유적과 돌들이다.

시저동상인데 이건 이전 걸 복원한 것이라 한다


점심 먹은 레스토랑의 실내 인테리어가 역사박물관 같다

이태리와인과 라자니아


이태리와 바티칸 국경선이다


앗 삼성이닷 ㅎㅎ


바티칸 정원에 있는 4미터 높이 솔방울은 왜???

천같이 휘감겨있는 대리석과 조각품들


교황 제대를 덮은 천개-청동을 주재료로 금박을 입힌 바로크 양식으로 화려하고 웅장하다.

저 아래 지하무덤이 있다.


대리석을 천처럼 조각해 둔 걸 보고 입이 다물어지질 않았다.



다음 화 예고~로마의 영원한 시간을 뒤로하고, 역동적인 현대의 거점, 자그레브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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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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