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이 지나간 자리

필사와 암송, 불편함이 주는 진정한 공부 이야기

by김원진


태블릿 화면 위를 매끄럽게 미끄러지는 손가락에는 아무런 저항도, 흔적도 남지 않는다. 클릭 한 번으로 온갖 지식이 복사되고 드래그 한 번으로 문장이 지워지는 속도의 시대에 적응할수록, 배움은 갈수록 가벼워지고 사유의 호흡은 짧아진다. 편리함이 극치에 달한 세상에서 정작 영혼의 양식인 언어가 파편화되어 가는 역설을 응시하며, 나는 교실 안에서 기꺼이 ‘필사(筆寫)’라는 아날로그적 저항을 선택했다. 매일 아침 아이들의 손에 휴대전화 대신 흑연 연필을 쥐여주고, 종이 위에 정자(正字)를 꾹꾹 눌러 적게 하는 ‘불편한 배움’을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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