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차(老茶)

오래 남는 것들

by김원진

숙성된 차를 우릴 때, 찻잎이 태어난 고향을 묻는 일은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 태생이 황실에 바치던 최고급 명산의 고수차(古樹茶)였든, 이름 없는 산비탈의 거친 야생차였든, 오랜 세월을 견딘 노차(老茶)의 진짜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보관의 내력이기 때문이다. 수십 년 동안 어느 골방에서 어느 정도의 습도와 함께 지냈고, 어떤 맑은 바람을 쏘이며 고슬고슬하게 늙어왔는가. 찻잎이 온몸으로 통과해 낸 환경과 그 세월의 방식이야말로 노차의 명줄을 쥐고 있는 가치 판단의 기준이자, 진향(陳香)의 비밀이다.


예전에, 차를 오래 다룬 지인으로부터 대만 청심오룡 품종으로 만든 1976년산 진년오룡(陳年烏龍)을 50g 들여온 적이 있다. 공교롭게도 그 차의 나이는 나와 같다. 오십여 년이라는 긴 세월을 이 차는 어떻게 살아왔을까 궁금해하며 천천히 탕관의 물을 부어 우린다. 젊은 시절의 차가 풍부한 향미와 화려한 기운으로 혀를 카랑카랑하게 찔러댄다면, 세월을 묵은 노차는 개성을 가지되 한없이 부드럽게 누그러진 채로 다가온다. 날카로웠던 기상과 넘치던 에너지는 한풀 꺾여 은은한 단맛으로 진화했고, 마신 후에도 뭉근한 여운을 남기며 지친 가슴을 다독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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