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내기가 뜨내기를 맞는 공간, 어느 한옥마을 이야기
마을에는 오래된 것들이 있다. 골목길이 있고, 단골집이 있으며, 그곳을 지키는 토박이가 있다. 대동맥처럼 넓게 뻗은 큰길을 걷다 모로 돌아드는 샛길, 그 모세혈관으로 찬찬히 스며들면 그제야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마을의 속살이 드러난다. 늘 새로운 것들로 치장하는 큰길과 달리, 비좁은 골목길에는 지나다닌 이들의 발자국이 무수히 남아 저마다의 이야기를 쏟아낸다. 어느 담벼락에는 친구와 장난치다 부딪혀 엉엉 울던 아이의 서러움이 배어 있고, 밤이 늦도록 이웃집 아저씨가 기대어 졸던 전봇대도 여전하다.
그 숨어든 길의 곳곳에 단골집이 있다. 단골집은 좋은 물건을 파는 곳도, 대단한 맛집도 아니다. 그저 제 집으로 돌아서다 왠지 모를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들르는, 토박이들의 다정한 간이역 같은 곳이다. 어머니들은 귤 한 봉지 달랑 들고 동네 미용실에 들러 수다장을 펼친다. 아이들은 동전을 들고 문턱이 닳도록 사탕가게를 들락거린다. 오래된 것들이 서로 기대어 온기를 보태는 집합소, 그리고 그보다 더 오래된 나무와 언덕이 뭉근하게 마을을 감싸고돈다.
뜻하지 않게 약속이 어긋나 한 시간 정도 산바카라할 기회를 얻었다. 마침 그곳이 처녀 시절의 아내와 함께 즐겨 걷던 곳이라, 한옥이 즐비한 마을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늦가을 찬바람에 사람들이 옷깃을 여미는 계절. 나무들도 저마다 잎을 떨구고는 다시 내년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까지 수없이 반복했음에도 그들은 늘 처음처럼 진중하게 겨울맞이에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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