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뒤에도 여운을 남기는 것들에 대하여
모든 것은 제 향기를 품고 산다. 그리고 그 향기는 살아온 이력을 대신 말한다. '자주 꽃 핀 건 파보나 마나 자주 감자'라 했던 권태응 시인의 시처럼, 다양한 향기를 품은 사람들이 어울려 세상엔 향기가 진동한다. 그러나 쉽게 사라지는 향이 대부분이다. 그중 어떤 이들의 향기는 그가 멀어진 후에도 잔향으로 남아 내 곁에 맴돌 때가 있다. 사람도 사물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사물의 향기가 언어와 표정으로 스스로를 가리고 포장하는 사람보다 더욱 담백하고 정제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향기는 모든 것들이 잠시 멈춰 있는 겨울에 더욱 돌올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공간을 유영한다.
나는 오래전부터 겨울을 좋아했다. 한옥을 짓고 사는 것이 한때의 꿈이어서, 함박눈에 포옥 싸인 마당을 거니는 상상을 자주 했다. 뜨끈한 구들에 몸을 눕히는 순간도 좋았지만,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건너가려 차가운 대청을 종종걸음으로 지나는 그 짧은 순간을 더 좋아했다. 온몸을 떨게 하는 찬바람을 마다하지 않고 깊이 숨을 들이면, 상쾌함이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주머니가 얇았던 젊은 시절에도 툭하면 한옥마을 찻집에 앉아서 비싼 전통차를 홀짝이며 있던 고집도 그 정취 때문이었다.
김동률의 〈잔향〉은 오래 좋아한 노래다. 겨울에 어울리는 곡을 추릴 때면 그의 노래를 꼭 두엇 끼워 둔다. 묵직한 저음과 그에 맞춤한 악기, 무엇보다 추억을 자주 소재로 삼는 점이 좋다. 그래서 그 결 위에 내 추억도 슬며시 얹어 흥얼거리기 좋다. 소리 없이 번지다 귀를 막아도 은은히 차오르는 그 노래를 들으면, 오래전 나를 아프게 했던 사랑의 흔적까지도 어쩐지 편안하게 떠올리게 된다. 노랫말처럼 삭여온 것을 다 게워내고 나서야 허기를 채울 수 있다는 듯이.
그해 겨울은 공연장 한 번 변변히 찾지 못한 시절이었다. 늘 매진을 기록하던 그의 콘서트도 그해엔 멈췄다. 그 아쉬움 때문이었는지 라이브 앨범은 나오자마자 동이 났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손 빠른 처제에게 부탁했다. 처제와 나는 ‘아날로그와 음악’을 좋아한다는 공통 분모가 있다. 특히 처제는 음악에서도 한 분야, 한 그룹을 오랫동안 마음에 담는 순정파라서, 20년 가까이 공연을 다녔고 그래서인지 클릭해서 티켓이라든지 앨범을 사는 온라인 경쟁에서 승률이 높다. 김동률이야 마니아 층도 두텁고 오래 노래를 해온 사람이라, 앨범을 구하는 게 쉽지 않았다. 결국 처제 덕에 겨우 한 장을 구했다. 그 해는 특히 코로나로 인해 사람을 만나기 어려운 때였으니, 좋아하는 노래 한 곡이 마치 보고 싶은 친구가 날 찾아온 듯 귀하고 반가웠다. 하루를 온전히 내것으로 만들 수 있는 순간이 온것도 행운이다 싶어, 그날은 노래를 벗 삼아 오롯이 혼자 놀기로 했다.
그래서 언젠가 올 차벗에게 내어주려 아껴 둔 차통 하나를 열었다. 1998년에 눌러 만든 보이차다. 오래 묵어 부드럽고, 화려하지 않은 단맛이 목울대를 슬쩍 건드리고 지나간다. 기세 좋게 ‘쨍’하던 기운은 한풀 꺾이고 여러모로 차분히 가라앉아서 겨울에 어울리는 맛이다. 공교롭게도 1998년은 김동률이 첫 솔로 앨범을 내고 그해 겨울 제 이름의 첫 콘서트를 연 해이기도 하다. 스물 몇 해를 훌쩍 넘기고도 제 빛깔과 자존을 잃지 않은 두 친구를 앞에 두고, 나는 그들이 천천히 풀어놓는 삶의 잔향을 오래 들이마셨다. 한 잔, 또 한 잔, 한 곡, 또 한 곡……. 노래는 끝나도 한참 귀에 남고, 차는 넘어가도 목 안쪽에서 오래 머문다.
좋은 것들은 늘 그렇게, 사라진 뒤에도 여운을 남긴다.
이 글은 사물 하나를 오래 들여다보며 '낡아가는 나'를 적는 산문 연재 《닦아도 중고지만, 매일이 새것 같아서》의 일부입니다. 화요일과 금요일에 한 편씩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