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 카페가 사라진다, 세 번째다.

사라진 건 공간이 아니라, 거기 적어둔 한 시절의 나였다.

by김원진

단골 카페가 일 년 뒤 문을 닫는다고 한다. 그러면서 주인은, 이제 이곳으로 향하던 발걸음도 슬슬 끊는 연습을 하라고 농담처럼 말을 흘린다. 습관이 된 행위를 멈추는 건 늘 고통스럽다. 경험이 기억이 되고 그 기억이 머리에서 몸으로 내려앉는 동안, 꼭 같은 방식으로 몸에 새겨두었던 내 몸의 일부를 떠나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단골 카페를 지워야 했던 상황이, 벌써 세 번째다.


처음은 대학 시절 정문 앞에 있던 'Oui'였다. 프랑스어로 '예스'라는 뜻인데, 그 이름처럼 어리숙하던 나를 어떤 모습이든 흔쾌히 받아주던 곳이었다. 나는 그 무렵 막 세우던 가치관과 어설픈 비판 의식, 국어 전공자랍시고 키우던 문학적 감수성을 그곳 방명록에 죄다 쏟아부었다. 군대에 다녀와 다시 가보니, 카페는 프랜차이즈에 밀려 시들어 있었고, 개똥철학을 꾹꾹 눌러 적던 대학 시절의 추억도 먼지를 인 채 구석으로 밀려나 있었다.


다음은 온라인 게임을 얻고서 드나든 '고신(古新)'이었다. 한옥으로 말끔히 꾸며 한동안 그 동네의 명물로 불리던 찻집이다. 나는 그곳에서 지금의 아내와 데이트를 했다. 바카라을 읽고, 논술문을 쓰고, 함께 살 집을 종이에 그려보기도 했다. 물론 지금 그곳은 없다. 동네가 관광지로 바뀌면서 옛 주인은 돈의 서슬에 밀려났고, 한 땀씩 새기던 우리의 시간도 신기루처럼 흩어져, 다시 찾은 우리에게 헛걸음만 시켰다. 대신 그 자리엔 아이스크림과 꼬치를 파는 가게가 줄지어 들어섰다.


그리고 이제, 세 번째 단골이 사라질 채비를 한다. 이곳에서 우리 부부는 육아를 했다. 맞벌이라 온종일 온라인 게임에 매였다가, 부리나케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데려오면 저녁은 으레 이 카페로 향했다. 부모에겐 휴식처요 아이들에겐 신나는 놀이터였다. 아이들이 비치된 색연필 세트를 가운데 두고 그림에 빠져 있는 동안, 우리 부부는 그 뒤 푹신한 소파에 앉아 커피와 달달한 에이드를 마시며 주인이 취미 삼아 누빈 퀼트 이불 속에 발을 묻었다. 그렇게 하루의 고단함을 풀던 자리다. 그런 곳이, 계약이 끝나며 사라질 채비를 한다. 나와 동갑인 주인과 진솔하고 긴 인연을 꿈꿨는데, 그도 나도 원치 않건만 헤어져야 하는 때가 있다. 이 공간은 곧 깨끗이 비워지고, 전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로 다시 채워질 것이다.


생각해 보면 사라지는 건 카페가 아니었다. 그 시절의 나를 받아 적어 둔 방명록이, 그러니까 어느 한 시절의 내가 그때마다 함께 지워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떠나기 전 늘 같은 일을 한다. 처음 왔을 때 적어둔 방명록을 펼쳐, 거기 앉아 있는 지난 나를 떠올리고, 한 줄씩 읽어가며 마음에 묻는다. 그렇게 한 시절을 또 한 번 접어, 내 기억 어딘가에 들여놓는다.

image.png아이들은 카페에서 늘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

이 글은 사물 하나를 오래 들여다보며 '낡아가는 나'를 적는 산문 연재 《닦아도 중고지만, 매일이 새것 같아서》의 한 편입니다. 화요일과 금요일에 한 편씩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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