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은사, 정암사, 그리고 금산사를 다녀오다.
8월 말 접어들면서 더위가 한풀 꺾이리라 기대했지만 폭염의 열기는 여전했다. 그만큼 답사길 역시 숨이 막힐 듯한 더위와의 전쟁이었다. 그래도 버스 안에서 바라본 창밖의 여름은 눈부신 햇살과 더불어 풍요로운 초록의 향연이었다. 하나의 색깔로 이름 붙일 수 없는 너무나 많은 다양한 초록들. 그 각각에 이름을 붙인다면 얼마나 많은 단어들이 필요할까? 여름은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절정의 미를 보여주고 있었다.
개인이든 단체든 문화유산답사나 국내여행을 다닐 때 핵심 동선마다 사찰이 있다. 그 이유는 우리 역사와 문화에서 사찰이 가지는 독특하고 독보적인 위상 때문이다. 단순한 종교적 예배 공간을 넘어, 우리 민족의 역사, 예술, 자연, 생활사가 융합된 살아있는 종합 박물관의 역할을 한다. 또한, 많은 절이 깊은 산속에 위치하여 사찰의 지형적 특성과 품고 있는 역사, 문화적 서사가 달라 각 절의 깊은 분위기를 온전히 만끽할 수 있다. 시간과 공간을 벗어나 산바카라과 사색의 체험을 오롯이 체험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8월 중 1박 2일의 강원 일원 향토문화답사에서도, 2박 3일의 친구들과의 전주 여행에서도 절집은 빠뜨리지 않았다. 특히, 삼척의 천은사, 정선의 정암사, 그리고 김제의 금산사는 올여름 가장 기억에 남는 산사였다.
천은사는 이름 그대로 천은(天恩), 하늘의 은혜를 입은 절이라는 뜻이다. 1899년 조선 왕실은 이성계의 4대조 목조(穆祖) 이안사의 능을 보수하고 봉안하면서, 이 능묘를 수호하고 제사를 거드는 조포사와 원찰로 삼았는데 이후 천은사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이 절이 더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고려말의 문신이자 사상가인 이승휴 선생이 천은사 인근(당시 용안사 龍安寺)에 구동당을 짓고 거처하며 《제왕운기》를 집필한 곳으로 알려진 곳이기 때문이다.동안거사(動安居士) 이승휴(李承休, 1224~1300)선생은 몽항쟁기와 원간섭기라는 혹독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글로 세운 인물이다. 《제왕운기》는 중국과 우리나라의 역사를 운율시(7언시, 5언시) 형태로 읊은 서사시 사서(史書)로 단군을 신화를 넘어 한민족의 시조로 하여 우리 민족이 중국과 대등한 오랜 역사를 지닌 단군의 후손임을 천명하고 신라 중심의 역사를 넘어 발해를 우리 역사로 편입한 최초의 역사서이다.
천은사 가는 길, 수령 200여 년이 넘은 나무들 사이를 걷다 보니 공기부터 달랐다. 때마침 지난주 내린 비로 계곡에 물이 많아 두타산의 울창한 숲과 계곡의 물소리가 잘 어우러져 폭염에 지친 몸과 마음을 진정시켜 주었다. 바람소리, 계곡물소리를 따라 천천히 걸으니 걸음이 느려지고 마침내는 걸음을 멈추게 되고 자주 주변을 둘러보게 되었다. 두타산의 깊고 은은한 골짜기 산세는 외부로부터 절을 숨긴 듯하고 곳곳의 푸른 이끼가 뒤덮인 바위와 울창한 나무들로 인해 신비로운 '은신처'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래서인지 천은사는 절집이면서도 인문학적 사색과 은둔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얼마나 걸었을까? 숲을 지나 조금씩 사찰의 모습이 드러나고 자연과 잘 조화를 이룬 천은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조용하고 자연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 산속의 사찰이 가지는 최대의 매력이다. 개인적으로 불교신자가 아니면서도 절에 가는 것을 좋아하고 가끔 전각에 모신 부처님께 예를 갖추기도 한다. 별다른 생각 없이 예를 갖추다 보면 그저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낀다. 그리고 그 공간 자체를 좋아한다. 우리나라 궁궐 등 많은 목조건물이 일반인의 출입을 제한하는 등 보존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절집의 공간은 천년 전이나 지금도 여전히 누군가가 기도를 드리고, 목탁을 치며, 스님과 대중이 생활하는 '살아있는 현재 진행형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머물고 생활하지 않는 공간은 그저 아름다운 전시물이 불과하다.
은둔과 사색의 분위기와 느낌 탓일까? 이곳에 머물며 《제왕운기》를 집필한 이승휴선생의 생각을 좇아 잠시 생각에 잠겨보기도 했다. 사찰 아래쪽에는 이승휴 선생의 영정을 모신 동안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유창한 숲 속에 이끼로 가득한 주변과 잘 조화를 이루며 정방형의 사당 건물이 검소하고 담담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이곳 동안사에서는 매년 음력 10월 3일 이승휴 사상선양제 및 문화제를 개최한다고 한다. 기회가 되면 꼭 다시 오고 싶다.
올여름 답사를 통틀어 내가 강원도에 왔음을 느끼게 한 곳은 정선 정암사였다. 앞선 답사지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늘어진 몸과 마음을 다독여 도착한 정암사는 피서지로써의 강원을 느끼게 한다. 천연기념물 열목어가 서식하는 곳으로도 알려진 이곳 정암사는 해발 1,300m 함백산 만항재 고원 자락에 위치한 데다 여름 강원답게 초록빛으로 가득한 청정함과 서늘한 고원 바람으로 여름에 가장 어울리는 사찰이었다. 특히, 신라 선덕여왕 14년(645년) 자장율사(慈藏律師)가 당나라에서 가지고 온 부처님의 사리와 치아를 봉안하기 위해 창건한 사찰이다. '정암사(淨巖寺)'라는 이름은 "깨끗한 바위 위에 지은 절"에서 유래하고, 사찰이 위치한 함백산의 호젓하고 기품 있는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자장율사가 노년이 되어 마지막으로 머물며 문수보살을 기다리다 입적한 곳이라고 한다.
일주문을 지나자 곧 드러나는 사찰 건물 위 산 중턱에 위치한 수마노탑이 어렴풋이 보였다. 울창한 여름 숲의 녹음과 맑은 계곡물소리 그리고 예불소리. 세상의 번뇌를 씻어내는 정암사 적멸보궁의 청정한 기운이 강하게 느껴졌다. 이곳 정암사도 앞서 천은사와 마찬가지로 한국 전통 조경과 자연관을 보여준다. 자연을 훼손하기보다는 산세의 흐름에 맞춰 전각을 배치하여 절집의 문과 마루에 앉아 밖을 바라보면 산과 숲이 그대로 한 폭의 병풍처럼 안으로 들어오는 전통 건축 미학을 느낄 수 있었다. 경내를 가로질러 흐르는 계곡의 이끼 가득한 돌들과 어우러져 흐르는 물소리, 풍경소리, 모처럼 느끼는 서늘한 기운이 방문객의 번뇌를 씻어내고 여유와 사색의 시공간을 내어주었다. 자장율사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실 적멸보궁을 세울 때, 인간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이곳을 선택한 것도 사리의 신성함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일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석탑 중 기단부터 상륜부까지 이토록 완전한 모습을 갖춘 모전석탑이 또 있을까? 석회암지대라는 지역 특성이 반영되어 고회암으로 제작한 벽돌 한 장, 한 장을 차곡차곡 쌓아 그 속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우리나라의 유일한 수마노탑은 정암사의 대표적인 유물이다. 가파른 길을 올라 숨이 탁 막힐 무렵 하늘을 배경으로 너무나 단정하게 그리고 위풍당당하고 압도적인 우아한 기품을 지닌 채 생각 많은 방문객을 맞이해 주었다. 오랜 세월에도 매끄럽게 다듬어진 돌들 하나하나가 견고하게 맞물려 쌓인 모습은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세련된 아름다움을 잃지 않은 절정의 미를 내뿜고 있었다. 함백산의 울창한 금강송 숲과 기암괴석, 하늘 그리고 탑에서 내려다본 정암사를 보기 전에는 수마노탑을 보기 위해 정암사에 간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니었다. 탑에서 내려다본 정암사는 인간세상에서 벗어나 오롯이 자연 속에 파묻힌 '비밀스러운 안식처'였다. 거대한 녹음 바다의 숲 위에 떠 있는 조용하고 고요한 섬이었다. 수마노탑의 아름다움과 의미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자연과 조화로운 합일, 인간이 하늘을 향해 쌓은 정성과 울창한 숲과 청정한 계곡에 둘러싸인 초월적 평화와 적멸의 도량, 탑과 절과의 아득한 고도차가 만드는 공간적 신비감이 탑과 절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수마노탑에서 내려오니 저녁예불이 조용한 산사에 울려 퍼져고 그 소리에 오히려 산사는 더욱 고요해졌다. 초를 밝힌 적멸보궁이 어스름한 어둠이 빛을 내며 부처님의 공덕을 담은 염불 소리와 참배객의 침묵 속의 염원이 산사의 저녁을 밝힌다. 그 덕분에 조명의 도움 없이 맘에 드는 정암사의 적멸보궁 사진 한 장을 건졌다. 물론 내가 건진 건 사진만은 아니다.
7월에 시작한 학교 공사가 8월로 이어지고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전주로 여름휴가를 떠났다. 내가 직접 공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지켜보는 일에 불과하지만 마음이 가는 일이라 벗어나긴 어려웠다. 그동안 가뭄과 폭염으로 어려움을 겪던 것을 한꺼번에 보상하듯 휴가 내내 비와 함께 했다. 덕분에 비 내리는 여름 산사를 경험할 수 있어 개인적으로는 좋았다. 천은사와 정암사가 높은 산과 골짜기 그리고 계곡의 숨겨진 은둔과 안식처와 같은 곳이었다면 휴가 중에 시간을 내어 방문했던 김제의 금산사는 모악산의 빽빽하고 너른 숲이 만들어내는 울창한 녹음 생동감을 주었다.
금산사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폭우로 인해 고속도로에서 여러 번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또한 익숙하지 않은 내비게이션이 길도 없는 곳으로 인도해서 중간에 회차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금산사의 동행자는 30년 지기 고교 동창으로 오랜 세월 변함없는 우정에 감사하고 앞으로 더 좋은 관계를 유지하자는 의미에서 함께 제작한 우정반지를 끼고 답사를 나섰다. 우정반지에는 L'envol 2026라는 문구를 새겨 넣었다. L'envol은 불어로 새로운 시작과 도약을 의미한다. 안개 낀 모악산 자락아래 너른 평지에 자리한 금산사는 보는 것만으로도 방문객을 압도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3층의 미륵전은 안개와 함께 쏟아지는 빗속에서 그 신비감은 더했다.
어머니의 품처럼 평탄하고 너른 모악산 능선을 따라 자욱한 산안개(운무)와 비에 젖은 울창한 숲은 더욱 진한 초록빛을 띠고, 흙냄새와 풀향이 도량 안으로 짙게 퍼졌다. 비에 젖은 3층 목조 전각 '미륵전은 세월을 고스란히 받아 든 고풍스러운 단청, 기둥과 들보는 훨씬 무겁고 정갈하게 느껴졌다. 높은 처마 끝에서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낙수 소리와 함께, 젖은 목재에서 은은하게 배어 나오는 고풍스러운 향이 공기를 채웠다. 어둠이 내려앉은 미륵전 미륵삼존불(11.8m)은 빗소리와 어우러져 평소보다 훨씬 압도적이고 장엄한 구원의 울림이 느껴졌다. 디딤돌에 앉아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 어느 한 보살님의 마음이 나에게 전해졌다.
경내에 자리한 보물인 거대한 '석련대'와 용도를 알 수 없는 '노주', 그리고 '방등계단'의 빗물 머금은 돌결은 더욱 선명하고 석조 유물 표면에 세월만큼 자란 이끼와 기와지붕을 타고 내리는 빗줄기는 고찰이 가진 수백 년의 역사적 깊이를 알려준다. 일상의 번잡함이 내리는 비와 함께 모악산의 너른 품 속에서 방문객의 지친 마음을 조용히 씻겨 내려주었다.
아무리 힘들었어도 과거는 언제나 아름답다. 괴로움도 어려움도 시간이 지나면 낭만으로 남는다. 그래서 과거는 늘 회상의 시간이다. '황금시대 증후군'은 그래서 생겨난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힘들고 외롭다.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 다가올 평화로운 미륵의 세상을 열망하는 건 모든 사람들의 바람일 것이다. 금산사는 미륵 구원 신앙의 중심지였다. 또한, 후백제 견훤의 역사적 비극의 현장이기도 하다. 친구들과 함께 경내를 둘러보고 자그마한 보시를 올리고 정성을 다해 절을 올렸다. 무엇을 염원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세속적인 사람의 자질구래한 소망들을 나열했는지 모른다.
올여름에 방문 삼척의 천은사, 정선의 정암사, 김제의 금산사는 개인적으로 여름 산사로 기억이 될 것 같다. 이승휴선생의 여운이 남아있는 인문의 공간 천은사, 서늘한 계곡과 바람 그리고 적멸의 청정함이 가득했던 정암사, 어머니의 품과 같은 녹음 속 미륵의 구원과 희망 금산사. 수백 년 된 목조 마루에 앉아 눈부신 햇살을 느끼고 바람 소리와 빗소리를 들으면서 산사를 거쳐간 무수한 사람들의 기도와 염원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과거의 사람들이나 현재의 사람들의 바람이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미래의 누군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