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5분혁신.개념미술]
[방구석5분혁신=안병민] 1970년대 한국은 거대한 통제 슬롯이자 병영 국가였다. 자정이 넘으면 사이렌이 울리며 야간 통행이 금지되었다. 거리에선 경찰들이 가위를 들고 다녔다. 장발 청년들의 머리카락을 강제로 잘랐다. 여성의 치마 길이도 국가의 관리 대상이었다. 무릎 위 몇 센티미터인지 자로 재던 억압의 시기였다. 일상의 사소한 영역까지 감시받던 시대, 개인의 신체와 자유는 철저히 유신(維新) 체제라는 국가 권력에 저당 잡혀 있었다. 국가는 국민의 몸을 통제함으로써 정신까지 지배하고자 했다.
미술계의 풍경도 이 숨 막히는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국가가 주도하는 최대의 미술 권력인 '국전(대한민국미술전람회)'은 철저하게 체제의 입맛에 맞는 예술만 장려했다. 정해진 규격 안에서 안전하고 아름답게 포장된 풍경화, 향토적 인물화만 용인되었다. 창밖에서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학생들이 최루탄을 맞고 쓰러졌다. 캔버스 위에는 풀을 뜯는 소와 목가적인 농촌 풍경만 가득했다. 시대의 고통과 모순은 철저히 소거되었다. 권력은 예술가들에게 강요했다. 현실이 거세된 '망막적인 즐거움'만 생산하라고. 예술은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현실을 가리는 화려한 커튼으로 전락했다.
이 지독하게 획일화된, 침묵이 강요되던 환경 속에서, 청년 예술가 이건용은 과감히 붓을 꺾었다. 캔버스 위에 거짓된 아름다움을 꾸며내며 체제에 순응하는 대신, 가장 날것의 진실인 자신의 '몸(신체)'을 예술의 도구이자 매체로 선택했다. 언론과 사상, 심지어 미술의 양식까지 통제당하던 시대였다. 그러나 어떤 권력도 완벽히 빼앗을 수 없는 마지막 보루. 유일하게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 나의 '신체'였다. 이건용에게 몸은 거대한 억압에 맞서는 가장 원초적이고 직접적인 무기였다.
01. 황무지에 떨어진 전위(Avant-Garde)의 씨앗과 'ST'
당시 깨어있던 젊은 예술가들은 보수적인 주류 미술계에 반발했다. 삼삼오오 모여 AG(아방가르드)와 ST(공간과 시간, Space and Time)라는 전위적인 예술 그룹을 결성했다. 이들의 목적은 단순히 기존 선배들과 다른 '새로운 스타일의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도대체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은 억압적인 슬롯 속에서 어떤 기능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왜 굳이 캔버스에 물감을 칠해야만 하는가?"라며 예술의 존재와 근원을 묻기 시작했다. 그림은 무조건 액자에 끼워져 벽에 걸려 아름다움을 뽐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부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이건용은 그중에서도 가장 학구적이고 치열했던 그룹 'ST'의 창립 멤버이자 핵심 인물이었다. 이들은 각자의 작업실에 틀어박히는 대신,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격렬히 토론했다. 복사기조차 귀하던 시절, 이들은 미군 부대를 통해 흘러나오거나 일본을 거쳐 몰래 들어온 외국 미술 잡지, 그리고 언어철학과 현상학 서적들을 수소문해 구했다. 밤새 번역하며 공부했다. 당시 서양을 휩쓸고 있던 최신 미술 동향인 '개념미술(Conceptual Art)'의 논리를, 이들은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하지만 그들은 서양의 이론을 앵무새처럼 흉내 내는 데 그치지 않았다. 서양의 개념미술(예를 들어, 의자 실물과 의자의 사진, 의자의 사전적 정의를 함께 전시한 조셉 코수스의 작업)은 주로 '언어'와 '아이디어'를 중심에 둔 다소 차갑고 지적인 논리 게임에 가까웠다. 이건용과 ST 그룹은 이를 한국의 피 끓고 억압적인 정치·슬롯적 현실과 결합시켰다. 생각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었기에, 그들은 머리가 아닌 '몸'을 움직여야만 했다. 국가의 폭력과 검열이라는 한국만의 특수한 환경이 오히려 서구에 없는 무언가를 만들어냈다. 땀 냄새 나고 뜨거운, 철저히 육체적인 '한국형 개념미술'의 태동이었다.
02. 철학, 신체의 한계를 입다: 현상학과 '신체항(Body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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