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5분혁신.개념미술]
[방구석5분혁신=안병민] 서도호(Do Ho Suh)는 집을 만든다. 그러나 그 집은 벽돌이나 콘크리트로 지어지지 않는다. 그의 집은 종이로 만들어진다. 한 번 살았던 실제 공간을 그대로 문지르고, 떼어내고, 다시 꿰매어 만든 종이 집이다. 《Rubbing / Loving》 프로젝트는 개념미술의 정수다. 작가의 가장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작업이기도 하다.
개념미술에서 중요한 것은 형태가 아니라 아이디어와 과정이다. 서도호는 이 원칙을 극단으로 밀어붙인다. 그는 떠나야 할 공간 전체를 하얀 닥종이로 감싼다. 벽과 천장, 바닥, 문, 스위치, 손잡이, 콘센트까지 모든 표면을 종이로 덮은 뒤, 색연필과 그래파이트, 때로는 맨손으로 오랜 시간 문지른다. 이 행위는 단순한 탁본(frottage)이 아니다. 시간의 흔적, 사람의 체온, 빛과 습기가 새긴 미세한 층위까지 물리적으로 끌어내는 행위다. 문지른 종이를 조심스럽게 떼어낸 뒤, 조각들을 바느질하고 알루미늄 프레임 위에 입혀 실제 공간과 거의 동일한 크기의 입체 설치로 재구성한다. 결과물은 가볍고, 접을 수 있으며, 이동이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rubbing’과 ‘loving’이라는 제목이 만난다. 한국어 발음으로 ‘러빙’으로 겹치는 두 단어는 작가의 의도를 명확히 드러낸다. 문지른다는 것은 대상을 정성껏 어루만지는 행위다. 동시에 사랑하는 행위다.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 공간을 온몸으로 기억하고 애도하는 의식이다. 뉴욕에서 18년간 살았던 아파트와 서울의 오래된 한옥을 대상으로 한 이 작업은, 개인적 상실을 넘어 현대인이 겪는 근본적인 뿌리의 불안정성을 건드린다.
서도호의 작업은 집을 ‘장소’가 아닌 ‘기억의 피부’로 바꾼다. 우리가 소유한다고 생각하는 우리 집. 실제로는 집이 우리를 스치고 지나가며 흔적을 남긴다. 그의 종이 집은 그 흔적을 포착한다. 관객이 작품 안으로 들어서면, 종이 위에 새겨진 수많은 결과 균열, 오랜 세월의 마모를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물리적 공간이 아니다. 시간과 감정이 축적된 ‘기억의 건축’이다.
개념미술은 종종 차갑고 지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서도호의 《Rubbing / Loving》은 다르다. 극도로 노동 집약적이고, 감정적이다. 동시에 철학적이다. 그는 집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집과의 이별을 통해 ‘집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그리고 그 질문은 오늘날 끊임없이 이동하고, 떠나고, 새로운 공간에 적응해야 하는 우리 모두에게로 이어진다.
결국 서도호가 남기는 것은 종이 한 장 한 장에 새겨진 손길이다. 그 손길은 말한다. 우리가 사랑한 공간은, 우리가 문지르고 사랑하며 기억하는 방식으로만 영원히 남을 수 있다고.
양평미술관에서 6주간 진행된 미술인문학 콜로키움 <예술, 생각을 입다> 과정이 오늘 끝났다. 첫 3주 동안은 19세기 말 모더니즘의 탄생부터 포스트모더니즘, 동시대 미술까지 미술사의 주요 흐름을 차근차근 짚어보았다. K-미술과 힙트래디션까지, 한국 현대미술의 위치도 탐색했다. 이어진 후반 3주에서는 마르셀 뒤샹으로 시작해 개념미술의 본질을 깊이 파고들었다. 조셉 코수스, 이건용, 데미언 허스트, 쉬빙, 서도호, 마우리치오 카텔란 등 동서양을 아우르는 주요 작가들을 통해 개념미술의 다양한 실천 방식을 두루 살펴보았다.
내 일과 삶의 경영 혁신과 관련하여 수많은 영감과 인사이트를 얻은 시간. 6주간의 인문 예술 여정에 길잡이로 나서주신 안현정 교수님과 정하윤 작가님께 진심 감사. 생각의 지평이 한 뼘은 더 넓어졌다^^. ⓒ혁신가이드안병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