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은 평등한가

반전의 시대 - 우리가 모르던 세상의 진짜 얼굴

by왜사는가

세상을 움직이는 불편한 진실들〈059〉


'취향은 자유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음악, 영화, 바카라, 음식 같은 것들을 선택할 때 우리는 자신의 '취향'을 따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취향을 존중해야 한다고 배운다. 그러나 취향은 정말 자유로운가? 아니면 취향도 계급, 교육, 경제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닐까? 슬롯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문화자본'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를 설명했다. 취향은 객관적 선택이 아니라, 슬롯적 지위와 경제력이 만든 '구별'의 수단이다. 따라서 취향의 평등성을 논하기 전에, 취향이 얼마나 불평등하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인식해야 한다.


문화자본과 취향의 슬롯적 구성


취향이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은 취향을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슬롯학적으로 보면, 취향은 개인이 자라난 가정, 교육, 경제적 배경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 부르디외가 말하는 '문화자본'이란 학위, 교양, 예술적 감식안 같은 것들을 의미한다. 이러한 문화자본은 경제자본(돈)과 마찬가지로 계층에 따라 불평등하게 분배된다. 예를 들어, 고소득층 가정의 자녀는 어릴 때부터 클래식 음악을 듣고, 미술관을 방문하고, 문학 고전을 읽는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고급스러운 취향'을 습득한다. 반면 저소득층 가정의 자녀는 그러한 경험이 부족하다. 따라서 그들의 취향은 접근 가능한 대중문화에 한정된다. 이것이 문화적 불평등이다. 또한 이러한 불평등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고급 음악을 좋아하는 것을 '고급 취향'이라 하고, 대중음악을 좋아하는 것을 '저급 취향'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는 객관적 기준이 아니라, 슬롯적 합의일 뿐이다.


교육과 계급이 만드는 취향의 위계


취향의 위계는 교육을 통해 강화된다. 학교에서는 '올바른 취향'을 가르친다. 고전문학은 읽어야 할 바카라이고, 대중소설은 저급하다. 클래식 음악은 고상하고, 대중음악은 낮다고 암시한다. 미술 시간에는 인상파 화가들을 높게 평가하고, 상업 미술은 무시한다. 이렇게 학교 교육을 통해 '고급'과 '저급'의 위계가 내면화된다. 부자의 자녀들은 학교와 가정에서 일관되게 '고급 취향'을 강화받는다. 그들의 부모는 음악회에 데려가고, 미술전시에 데려가고, 해외여행에서 문화유산을 보여준다. 반면 가난한 자녀들은 그러한 경험이 거의 없다. 또한 대학 진학 시에도 취향의 격차가 드러난다. 명문대 인문학과의 학생들은 고전을 많이 읽고, 철학을 깊이 있게 학습한다. 반면 실업계 고등학교 학생들은 실무 교육에만 집중한다. 대학 진학 후에는 더욱 격차가 벌어진다. 명문대 학생들은 '올바른 취향'을 공유하고, 이를 통해 상류층의 문화 공동체에 진입한다. 반면 그렇지 못한 학생들은 대중문화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 취향의 차이는 곧 슬롯적 지위의 차이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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