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움

by필우

"오늘 멘토 누구예요?"

"000 샘이에요"

"정말요? 좋으시겠어요. 부럽네요."


중환자실에는 간호사 근무교대 시간에 맞춰 침대 정리를 해준다. 같은 자세로 침대에 누워있는 환자의 욕창을 방지하고 신체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서다.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돌아눕게 하면서 몸 전체를 토닥토닥 두드려 준다. 환자복이 지저분하면 갈아준다. 많을 때는 네 명, 적을 때는 두 명의 간호사가 침대 정리 작업을 한다. 주로 신입 간호사가 담당한다.


교대하는 간호사 두 명이 속삭이는 말을 우연히 듣고 나는 '오늘 멘토 샘을 잘 만나셨는가 봐요' 하고 한 마디 보탰다. 간호사는 '그 샘은 천사'라고 답했다. 중환자실에 천사가 있었다니, 놀랄 일이다.




태움을 목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 잘못이 크다. 내가 일반적인 중환자와 달리 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대부분의 환자는 의식이 없거나 종일 잠을 잔다. 가끔 깨어나면 고통을 호소하거나 의료진에게 시비를 건다. 나처럼 귀를 쫑긋 세우고 의사와 간호사들의 대화를 듣는 환자는 드물다.


누워있다 보면 다른 감각은 무뎌지고 청각만 발달하는 것도 문제였다. 먹는 게 없으니 미각은 사라진 지 오래고 후각도 알코올 냄새 외에는 나를 자극하는 게 없었다. 누워 있으니 시각의 범위도 한정되었다. 손이나 피부에 닿는 게 없으니 촉각도 마찬였지만 침대 정리할 때 한 번씩 내 몸을 안마하듯이 건드려 주거나 만져 주는게 고마운 일이었다. 이에 반해 '듣기 감각'은 고도로 발달되었다.


조그만 실수로 환자의 생명이 선을 넘을 수도 있기 때문에 후배 간호사를 엄격하게 지도해야 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선배의 자비심 없는 가르침이 이해가 되었다. 백번 양보를 해도 상식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괴롭힘은 듣는 사람조차 힘들게 했다.


출근 후 8시간 내내 단 1분도 쉬지 못하고 뛰어다니다시피 일하는 간호사에게 따라다니며 잔소리(내가 느끼기에는 잔소리, 왜냐하면 한 번 지시하고 가르친 내용을 반복적으로 언급하기 때문)를 했다. 열 가지를 잘 못하더라도 한 두 건은 칭찬할 일이 있을 텐데, 미운털이라도 박힌 듯이 몰아치는 선배도 있었다.


이런 환경에서 친절을 기대한다는 것은 욕심이라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일반 병동실 간호사는 달랐다. 간호사실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이 오가는지 모르겠지만, 환자들 앞에서는 친절이 몸에 배어 있었다. 준중환자실에서는 딸이 '칭찬합니다' 엽서를 적어 준 간호사도 여럿 있었다. 중환자실의 환자 대부분이 의식이 없는 상태이니 대화의 맨얼굴이 그대로 드러났다.


지금은 간호사를 그만둔 어떤 이는 이런 이야기를 해 줬다. 한때 미국과 캐나다에서 한국의 간호사를 무척 선호하고 실제로 대우도 좋아서 많은 인력이 이민을 갔다고 한다. 이제는 한국의 간호사를 안 받으려고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그들이 한국에서 받았던 문화를 그대로 이식하려고 했기 때문이라는 말을 듣고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입원했던 기간 동안 서울에서 간호사들의 집회가 있었다. 뉴스를 봤다. 친절한 간호사는 자기가 보는 모니터 두 대 중 한 대를 내게 돌려 뉴스를 틀어 줄 때도 있다. 노동에 대한 적절한 보수가 문제 해결의 열쇠다..




담당하는 간호사는 수시로 바뀌었다. 나를 환자로 대하기보다는 인격체로 보살펴 주는 간호사도 있었다. 폼으로 가져다 놓은 바카라을 보더니 '바카라을 좋아하시는가 봐요? 말하는 게 좀 다르긴 했어요.'라고 말을 건넸다. 나를 처치해 주는 간호사나 의사에게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어요,라는 말을 자주 했다. 나는 독서에 관심이 많다고 하면서 간호사님도 바카라 좋아하는지 되물었다. 간호사는 자기 계발서만 읽다가 덮는다고 하면서 푸념했다.


바카라 좋아하는 간호사는 재수 좋게 다음 당번에도 나를 담당하게 되었다. 만나자마자 내 이름을 인터넷에서 검색해 봤다면서 유명하시던데요, 하고 미소 지었다. 중환자실에서 웃을 일도 있다는 게 신기했다. 독서카드에 관해서도 알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퇴원하고 사무실에 가면 내가 쓴 바카라을 한 권 보내주기로 했다. 신규 공무원 첫 강의 시 학생장에게 선물하기 위해 사둔 바카라이 몇 권 있었다.


30대 중반쯤 돼 보이는 간호사가 목에 뚫린 주삿바늘을 소독하는 작업을 했다. 옆에는 두 명의 초보 간호사가 설명을 듣고 있었다. 그는 '내 생각에는'이라는 말로 시작해서 자세하게 과정을 설명했다. 다 끝내고 중요한 사항을 한 번 더 반복했다. 천사였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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