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이 제삿날이 될 뻔

by필우

F1 경기를 보면 고속으로 달리던 차가 잠시 정비구역으로 들어올 때가 있다. 어림짐작으로 열 명 정도 달려들어 차량상태를 점검하고 일제히 타이어를 갈아 끼워 다시 트랙으로 내 보낸다. 내가 그 차가 된 느낌이었다.


당직의사가 지시를 내리자. 여덟 명의 간호사가 달려들었다. 옷을 벗겨 환자복으로 바꿔 입히며 주삿바늘을 꽂았다. 바이탈 사인을 쉴 새 없이 알리는 모니터를 연결했다. 모니터의 신호음 '삐~ 삐~'는 이후에도 쭉 나를 괴롭히는 소음이 되었다. 혈압이 경계선을 넘나들면서 쉬지 않고 경고음을 울렸기 때문이다.


주삿바늘은 팔목에 더하여 한 군데 더 뚫었다. 목에서 바로 정맥을 하나 찾아서 구멍을 만들었다. 전문 용어로 '중심정맥관 삽관'이라고 불린다. 시술은 다소 신중하게 진행되었는데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중심 정맥관이 새기라도 한다면... 더 나쁜 상상은 그만.


간호사들은 나를 환자로 리셋하면서 계속 질문을 던졌다. 의식이 있는지 점검하려는 목적과 환자 본인임을 확인하는 절차라고 생각했다.

여기 어디예요? 이름을 말해보세요? 주민등록번호는요?


"생일이시네요?"


주민등록번호를 받아 적는 간호사의 한 마디가 나의 뇌 또는 가슴 어딘가를 두드렸다. 오전까지만 해도 지인들과 생일 축하 문자를 주고받았다. 거의 5년 만에 연락 온 친구도 있었다. 대기업 간부였던 친구는 중소기업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내가 태어난 날 저녁, 바이탈 사인은 들쑥날쑥 하고 사지는 늘어진 채 응급실 침대에 놓였다.


8월 20일, 낮 시간은 강의 저편에 있었다. 이제는 닿을 수 없는 곳이다.




나쁜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전날 저녁, 소설 쓰기 수업을 듣고 있었다. 현기증과 함께 눈앞이 흐릿해졌다. 대구의 사립고등학교에서 강의를 마치고 쉬지 않고,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바로 강의실로 달려왔기 때문에 원기 부족이라고 생각했다. 속이 미씩 거렸다. 몸에 일시적으로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수업은 계속되었다. 마주 앉아서 강의를 듣고 있던 딸은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


내 차를 타고 함께 돌아오는 길에 딸은 늦은 시간이지만 아내가 사다 놓은 소고기를 구워 먹자고 제안했다. 나는 속이 좋지 않다며 사양했다. 집에 도착한 후, 피곤함에 곧바로 침대에 누웠지만, 쉽게 잠들지 못했다. 얼굴에 열감이 있었고 먹은 것도 없는데 속이 더부룩했다.


그다음 날은 사무실에 휴가를 내고 쉬기로 했다. 오전에 한숨 자고 죽 먹고 다시 오후에 잤다. 몸이 가라앉는 것을 느끼면서 칠 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새벽에 일어나서 입으로 피를 토하고 아스팔트색 설사를 한 후 바로 응급실에 간 일이 있었다.


나의 가슴은 그 느낌을 자꾸 밀어내고 머리는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저녁에 다시 죽을 먹고 변을 보고 나서야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간병화 합병증인 식도정맥류 출혈을 확인했다.


옷을 갈아입고 택시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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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