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은 손님이 많은 날

by필우

"선생님, 가족들이 도착할 때까지만이라도 좀 살려둘 수 없을까요?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조치는 취하겠지만,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보호자가 회진을 마치고 나가는 의사의 소매를 붙들었다. 의사의 목소리 톤을 봐서는 임종이 가까워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서너 시간을 넘기지 못하고 숨죽인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늦게 도착한 가족들이 한 두 명씩 병실에 들렀다. 보호자들이 내 침대를 지나기 때문에 그들의 침울한 모습을 나는 지켜봐야 했다. 시간을 정해두고 직계가족 중 한 명만 환자를 볼 수 있게 하는 중환자실 면회 규정은 적용되지 않았다.


이미 돌아가신 분의 모습을 중환자실에서 굳이 봐야 할까? 산자들의 도리를 다한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가족들이 우르르 몰려나간 뒤, 간호사들이 환자의 침대에 일제히 모였다. 환자 몸에 꽂았던 주삿바늘과 산소호흡기, 욕창 방지용 패드, 모니터의 선을 제거하는 작업을 하는 것 같았다. 그에게 영혼이 있다면 이제 자유로워졌을 것이다.


나의 침대 앞으로 환자의 침대가 지나갔다. 하얀 천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덮었다. 나는 숨이 막혔고 건조한 눈동자가 흐려졌다. 토요일 오후였다.


다음날 아침에는 옆 침대가 부산스러웠다. 환자는 아직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엄마, 일어나야지.' 하는 목소리가 반복해서 들렸다. '오빠가 아직 안 왔어요. 강릉에서 새벽에 출발했으니, 조금 있으면 도착할 겁니다. 큰 언니는 병원에 도착했다고 금방 연락받았어요.' 본의 아니게 가족 상황과 그들이 어디에 사는지도 듣게 되었다.


옆 침대의 가족들은 환자의 따뜻한 손을 만지며 각자 하고 싶은 말을 한마디씩 할 수 있게 되었다. 저렇게라도 보면 좋지.




의사도, 환자도 주말이면 쉬고 싶은 것은 마찬가지인가 보다. 주말에는 당직 의사와 수련의가 주로 중환자실 회진을 돈다. 중요 환자에 대해서는 계속 의사소통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의 경우도 담당의사가 주말에 새로운 약을 처방해주기도 했다. 그래도 주말에는 온라인 게임에 오고 싶지 않을 것이다.


주말을 앞두고 있으면 의사도 마음이 바빠져 환자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호전이 된 환자는 준중환자실로 내려보내기도 하고 주말 동안 환자에게 처치할 내용을 미리 간호사에게 알려준다.


주말에 중환자실 병상을 차지하고 있는 환자 숫자가 줄어드는 걸 보면 환자들도 본능적으로 주말에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비록 영원한 휴식이라 할지라도. 온라인 게임 다닐 때를 생각해 보면 나의 가설에 확신을 더해 준다. 월요일에 부고장이 많이 날아온다.


빈 병상이 많은 일요일 밤은 길다. 긴 잠을 잤다고 생각했는데 새벽 한 시다. 간호사들의 두런거리는 소리가 더 잘 들린다. 이때 할 수 있는 거라곤 머리를 쓰는 일 밖에 없다. 상상력을 동원해 소설을 쓴다. 잠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시간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흐른다는 말은 거짓이다.




월요일은 다른 공기가 흐른다. 활력이 돈다고 해야 하나. 간호사, 간호조무사, 청소하시는 분 모두가 분주하게 움직인다. 손님이라도 맞이하려는 듯하다. 나를 인계받는 간호사의 목소리도 밝다. 주말에 잘 쉬고 온 덕분일 것이다.


오후 시간이 되면 환자가 한 명씩 채워진다. 응급실에서 급한 처치를 받고 중환자실로 들어오는 환자가 많다. 환자가 자리를 차지하면 제일 먼저 간호사들이 대여섯 명씩 붙어서 침대 정리를 하면서 중환자실에 맞는 세팅을 한다. 커튼을 드리우긴 하지만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소리로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내가 거친 과정이다.


피크는 월요일 밤 시간이다. 응급실의 처치에 더해서 수술, 시술, 검사가 진행되고 퇴근하지 못한 담당의사가 수련의를 이끌고 무더기로 환자를 방문할 때도 있다.




중환자실의 경험 중 잊히지 않는 장면 중 하나는 하얀 천을 덮어쓰고 나의 침대 앞을 지난 환자의 모습이다. 같은 공간에서 삶과 죽음의 외줄 타기를 하던 사람이었다. 내가 중환자실에 머물렀던 주말에 두 명의 환자가 긴 휴식의 시간을 선택했다.


그들에게는 죽음이 중환자실의 삶보다 나았으리라.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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