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조직개편이 공지되었다. K1과 K2 공장의 통합이다. 팀을 합쳐 두 공장을 함께 관리하겠다는 경영 방침이다. 부천에 K3 공장을 준비하는 프로젝트 본부도 생겼다. 통합으로 남게 되는 팀장, 파트장들이 그쪽으로 이동했다. 보통 연초에 나오는 조직개편이 연중에 공지된 걸 보면 많은 고민 끝의 결론으로 보인다.
생산본부 기준으로는 K2가 K1에 흡수되는 셈이다. K1은 10년 전에 완성된 공장이라 장비도 사람도 많다. 선배도 많고 후배도 많다.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됐다. 김민수 과장, 권준현 대리, 나, 진달호는 K1으로 그대로 흡수되었고 민귀남 파트장은 투자 파트로 빠졌다.
통합된 K1 배선지옥의 팀장은 공석이었다. 대신 이석수 부장이라는 오랜 경력의 부장이 파트장 자리에서 팀장 대행을 하고 있었다. 보기 드문 20년 생산부 외길 인생. 입사 동기들은 이미 팀장이거나 임원이다. 우직하게 조용히 일만 하는 사람인데 윗사람에게 잘 못 보여 승진에서 계속 누락되고 저평가를 받았다. 누구는 그를 팀장이라 부르고 누구는 파트장이라 부르고 누구는 존중의 의미로 부장님이라 부른다. 그의 앞에서는 호칭의 다양성이 공존한다.
외모는 영락없는 부장님이다. 얼마 남지 않은 희끗한 머리, 낮은 코에서 흘러내리는 안경, 세월이 새긴 주름, 오래 앉아 있었음을 말해 주는 뱃살과 그 몸을 겨우 잡아 주는 셔츠. 자리에서 잘 일어나지 않는다. 늘 화면의 전산을 새로고침하며 앉아 있다. 그리고 언제나 사원들을 자기 자리 앞으로 부른다.
“처.. 철수 사원 여기 좀.”
이석수 부장은 말을 좀 더듬는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입의 속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십 분 전에 튄 배선 품질 하나를 두고, 십 분 전이든 후든 튈 것을 예상하고 미리 공정 시간을 수정했어야지, 그게 네 능력이지, 하는 식이다. 바로 수정하겠다고 하면 얘기는 끝난다.
사실 지금 내게 힘든 사람은 이석수 부장이 아니라 후배들이다. 알면 알수록 퇴사 유발자들이다. K1 생산부 후배들은 원래 악명이 높았다. 라미정, 연민호의 입사 동기들인데 하나같이 성격이 다르다. 언제나 화를 품고 있다. 배선지옥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그들이 분위기를 그렇게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그들에게 철저한 이방인이었다.
같은 공정을 맡게 된 탁용칠, 탁용팔 형제는 후배라기엔 선배 같은 후배들이다. 친형제는 아닌데 체형이 비슷하고 죽이 잘 맞는다. 탁용칠은 까무잡잡하고 날카로운 농사꾼 인상, 탁용팔은 라틴계 혼혈처럼 짙은 쌍꺼풀에 구릿빛 피부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