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내 발목보다 손익을 걱정했다

by부소유

K2 라인은 모든 장비가 새것이다. 새것이라고 좋은 것은 아니다. 장비는 보통 반조립 상태로 미국, 유럽, 일본에서 바다를 건너온다. 라인에 반입되어야 조립이 완성된다. 그 과정에 문제가 없으면 완벽하겠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완벽한 것은 없다. 가동이 시작되어도 안정화 시간이 필요하다. K2 장비 대부분이 그 시간을 지나는 중이라는 얘기다.


“아저씨, 여기 장비가 멈춰서 제품 다 중단되었어요. 빨리 봐줘요, 빨리.”


현장의 교대직 여사원들은 우리를 아저씨라고 부른다. 갓 졸업한 이십 대든, 정년을 바라보는 어르신이든 모두 아저씨로 통한다. 편하고 합리적인 호칭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녀들을 아줌마라고 부를 수는 없다. 아가씨나 이모는 더 안 된다. 우리는 그녀들의 이름을 외워야 한다. 언제 시작되었는지 아무도 모르는, 불편하고 이상한 호칭의 세계다.


제품이 멈추는 이유는 다양하다. 배선 수준이 관리범위를 넘거나, 장비 신호가 범위를 넘거나, 알 수 없는 이유로 멈춘다. 알 수 없는 이유가 제일 어렵다. 신규 라인은 센서와 관리 항목이 특수배선 시절과 비교가 안 되게 많아서, 멈춘 제품도 열 배 이상 쌓인다. 나와 김민수 과장, 진달호는 하루 대부분을 라인에서 보낸다.


아침 두 시간 만에 열 개가 멈춘 날, 진달호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이게 보통 수준이라고, 더 쌓이기 전에 빨리 풀어야 한다고, 매일 하는 일이라고 그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더 빨리 걷지 않으면, 심지어 달리지 않으면 낙오되는 붉은 여왕의 나라였다.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워 잠시 밖으로 나왔다.


방진복의 마무리는 늘 라텍스 장갑이다. 의료용과 비슷한, 얇고 투명한 장갑. 본래 꿈은 의사였다.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라텍스 장갑을 낀 채 손등을 보이며 손가락을 펴는 모습. 내가 상상하던 외과의사의 모습이다. 지금의 나는 같은 장갑을 끼고, 로봇 생산 설비 앞에 멍하니 서서 눈금이나 조작하는 사원 나부랭이다. 사람을 살리는 손과 숫자를 만지는 손에, 같은 장갑이 씌워져 있다.


“어제 뉴스 봤어? 궤도 방위대 초소에 민간 셔틀이 노크하고 들어왔대. 이게 말이 되나? 말세야 말세. 내가 2312 군번인데 우리 때는 상상도 못 한 일이야. 군대도 이젠 별 쓸모가 없어. 회사 생활 대충대충 해.”


권준현 대리의 화두는 언제나 슬기로운 회사 생활로 끝난다. 그는 참 선배다. 회사의 고민은 잠깐 사이에 잊고, 주말에 뭐 하고 놀지를 생각한다. 업무는 닥쳤을 때 고민하고 적당한 힘만 써서 해결한다. 절대로 과도한 힘을 쓰지 않는다. 그게 회사 생활 장기흥행의 비결이 아닐까 싶다. 어느새 나는 그를 닮고 싶어졌다.


“얼른 회사 나가서 와플 장사해야지. 부산 내려가서 와플 장사할 거야. 개업하면 놀러들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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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와 어문계를 오가며 공부했습니다. 공장에서 일하는 15년 차 엔지니어이자, 소설을 쓰는 에세이스트입니다. 읽기와 쓰기, 기술과 인간에 대한 생각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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