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은

다른/같은 사람입니다

by부소유

올해도 9월의 아라아트센터였다. 이렇게 서울국제작가축제를 찾은 것도 이번이 3년째다. 이번에는 왜인지 모르게 공간이 전체적으로 한산했다. 익숙한 공간이라 어렵지 않게 세미나실을 찾았다. 객석에 앉아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이어폰을 꽂고 채널을 1번에 맞추는 것이다. 한국어는 1번, 일본어는 2번. 동시통역으로 진행되는 자리라 대답에는 늘 몇 초의 시차가 생긴다. 슬롯자의 질문이 끝나고, 객석이 조용해지고, 그다음에야 통역된 목소리가 귀 안쪽에 도착한다. 이 짧은 지연이 나는 매번 좋았다. 말이 곧장 건너오지 않고 누군가의 입을 한 번 통과해서 온다. 올해 축제의 주제인 ‘누구세요?’와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었다. 나는 누구일까.


이날 대담의 제목은 ‘다른/같은 사람입니다’였다. 진행은 편집자 K가 맡았다. 한 문학 출판사에서 한국문학 편집자로 일했고 지금은 출판사를 준비하며 유튜브 채널을 운영한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연륜있는 유튜버라서 진행이 매끄러웠다. 무대에는 황정은 작가와 일본 소설가 히라노 게이치로가 함께 앉았다. 히라노는 사람이 상대와 환경에 따라 여러 개의 ‘나’로 나뉜다는 분인(分人) 개념을 오래 밀고 온 작가다. 다만 그의 말은 내 노트에 성글게 남았다. 2번 채널을 거쳐 다시 1번으로 넘어오는 동안 문장의 공백이 자주 있었고,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아도 생각나지 않는 대목이 많았다. 그래서 대체로 황정은 작가의 말을 위주로 회상해본다.


주제를 처음 받았을 때 어땠느냐는 질문에 작가는 ‘누구세요’를 당연히 2인칭 단수로 읽었다고 답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하고 앞에 앉은 사람에게 묻는 말. 그런데 부제를 보고서야 이것이 1인칭과 3인칭까지 끌어안는 훨씬 넓은 질문임을 알았다. 나에게도 묻고, 여기 없는 그에게도 묻는 질문. 인공지능을 둘러싼 논란이 매일 갱신되는 시대에 이 물음이 꽤 요긴하고 또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질문으로 느껴진다는 말도 덧붙였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다음이었다. 축제 소개문에 서로의 다름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같은 인간으로서 만난다는 표현이 있는데, 작가는 그 문장에 한참 붙들렸다고 했다. 아름다운 말이지만 자신이 일선에서 느끼는 감각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이었다. 삶은 관계이고, 인간과 인간 사이든 인간과 비인간 사이든 관계에는 마찰과 충돌이 따른다. 마찰이 있는 이상 훼손은 피할 수 없다. 애초에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가 매끄럽지 않다. 가장 어려운 타인을 떠올려보면 대개는 가장 친밀한 사람, 곧 가족일 것이고 그다음은 자기 자신일 것이라고도 했다. 지금 이렇게 앉아 있는 자기 안에도 거칠고 뾰족한 것이 계속 느껴진다고, 무척 긴장한 채로 말했다. 그런 것이 이 자리에도 있고 저 자리에도 있고, 객석에 앉은 사람마다 하나씩 다 있는 것 아니냐고. 그러니 멈춰 서서 당신은 누구십니까 하고 묻는 일은 서로 상처를 낼 가능성을 먼저 인정하고 그 토대 위에 마주 서는 일이어야 한다. 객석의 고개들이 그때 한 번 크게 끄덕였다.


같음과 다름을 두고는 이런 말도 했다. 장편은 다른 사람에서 출발해 같은 사람을 발견해가는 작업이고, 단편은 같은 사람에서 출발해 다른 사람을 발견하는 작업 같다고. 그런데 그 생각을 하고 나니 거꾸로도 가능하더란다. 그래서 같음과 다름을 생각하는 일이 자신에게는 회전문을 통해 안과 밖을 드나드는 일 같다고 했다. 밀면 밖으로 나가지고, 계속 밀면 다시 안으로 들어와 있는 문. 나는 이 비유를 오래 만지작거렸다. 회전문에는 문턱이 없고 경첩도 없다. 대신 멈춰 서면 갇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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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와 어문계를 오가며 공부했습니다. 공장에서 일하는 15년 차 엔지니어이자, 소설을 쓰는 에세이스트입니다. 읽기와 쓰기, 기술과 인간에 대한 생각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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