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증명사진을 찍으러 사진관에 갔다. 오래전에 찍은 사진을 계속 사용했더니 이제는 그 얼굴을 내가 몰라볼 지경이다. 예약한 시간보다 십 분쯤 일찍 도착했다. 유리문에는 흰색 시트지로 '증명사진·여권사진·프로필 촬영'이라고 적혀 있고, 문 옆에는 촬영 가격표가 붙어 있다. 안으로 들어서니 생각보다 작은 사진관이다. 입구 오른쪽에는 두 사람이 앉을 만한 짙은 보라색 소파가 있고, 그 앞의 낮은 테이블에는 사진 샘플이 담긴 투명 아크릴 액자가 놓여 있다. 한쪽 벽에는 정장 상의 몇 벌이 옷걸이에 걸려 있다. 검은 재킷과 남색 재킷, 흰 셔츠가 차례로 걸려 있는데 급하게 사진을 찍으러 온 사람들을 위한 옷인 모양이다.
소파에 앉아 기다리는데 맞은편 벽에 걸린 흑백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온다. 다른 사진들은 모두 작은 액자에 담겨 있는데 그 사진만 유난히 크다. 검은 나무 액자 안에 다섯 명의 여자가 조금은 굳어 있는 듯한 자세로 나란히 서 있다. 모두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치마를 입고 있다. 가운데 여자는 작은 꽃다발을 들고 있는데 흑백사진이라 꽃은 시들어 보인다. 가장 오른쪽에 선 여자는 고개를 조금 숙인 채 살짝 웃고 있다. 가장 자연스럽다. 사진 아래에는 '1978년 5월'이라고 적혀 있다.
"저 사진은 정말 오래됐네요."
내가 묻자 사진사가 촬영용 의자를 정리하다 말한다.
"저희 어머니 사진이에요."
"혹시 가운데 계신 분이요?"
"아니요. 맨 오른쪽이요."
사진사는 잠시 사진을 올려다본다.
"어머니가 저 사진을 참 싫어하셨어요."
"왜요?"
"앞머리를 너무 짧게 잘랐다고요."
사진사가 웃는다.
"저는 저 사진이 제일 앳돼 보인달까… 좋거든요."
나는 사진 속 여자를 다시 본다. 앞머리가 한쪽으로 조금 기울어져 있다. 사진사가 안쪽으로 나를 안내한다. 촬영 공간은 회색 종이 배경이 벽에서 바닥까지 길게 내려와 있고 양옆에는 커다란 조명이 우뚝 서 있다. 검은 삼각대 위에 카메라가 놓여 있다. 그 뒤에는 사진사가 앉아 화면을 확인할 수 있는 작은 모니터가 있다. 바닥에는 검은 테이프로 의자 위치가 표시되어 있다.
거울 앞에서 머리를 정리한 뒤 촬영용 의자에 앉는다. 사진사는 의자를 조금 돌리고 내 어깨를 낮추고 턱을 당기라고 한다. 조명이 켜지자 얼굴 한쪽이 환해진다.
"입술에 힘 조금 빼세요."
나는 시키는 대로 한다.
"너무 무표정하신데요. 살짝만 웃어보세요."
웃으려고 하니 오히려 얼굴이 어색해진다. 사진사가 카메라 뒤의 모니터를 보여준다. 머리카락 한 올이 이마에 내려와 있어 손으로 넘기고 다시 한 장을 찍는다.
촬영을 마치고 나서 사진을 고르는 동안 아까 보았던 흑백사진이 생각난다. 사진사는 모니터에 두 장을 나란히 띄운다.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드세요?"
첫 번째는 얼굴이 반듯하고 표정이 차분하다. 두 번째는 입꼬리가 조금 올라가 있는데 왼쪽 눈이 오른쪽보다 작게 나온 것이 너무 티가 난다.
나는 첫 번째 사진을 가리키려다가 손을 멈춘다.
"두 번째로 할게요."
"이게 더 자연스럽긴 해요."
사진사는 선택한 사진을 보정하기 시작한다. 나는 기다리는 동안 자꾸만 흑백사진에 눈길을 빼앗긴다. 아마도 예전에 본 엄마의 젊은 시절 사진과 그 어머니의 모습이 겹쳐진 것 같다.
잠시 후 사진사가 작은 봉투를 건넨다. 사진 여덟 장이 들어 있다. 보면서 드는 생각이 흑백사진 속 그분이나 나나 자신의 사진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먼저 찾아내는 것은 비슷한 모양이다. 그분에게는 짧은 앞머리가, 내게는 조금 작게 나온 왼쪽 눈이 그랬다. 아니면, 그저 흐르는 시간이 더 보여서 싫었던 걸까. 봉투를 열어 사진을 한 장 더 꺼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