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위하여, 건배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넓게 열린 하늘이 좋았다. 파란색이라는 말 하나로는 조금 부족한 하늘이 건물과 건물 사이에 펼쳐져 있었다. 여름에는 파란 하늘을 만나도 그 아래 습기가 한 겹 끼어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멀리 있는 건물의 윤곽도 조금씩 흐려지고, 햇빛은 공기 속에서 부풀어 오른다. 가을의 하늘은 누군가 밤사이 유리를 닦아놓은 것처럼 먼 곳까지 선명했다. 건물 옥상에 세워진 안테나와 물탱크가 보이고, 평소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산의 능선도 또렷했다.
구름은 많지 않았다. 아주 얇은 구름 몇 조각이 높은 곳에 흩어져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가로수 잎이 뒤집혔고, 햇빛을 받은 면과 그늘진 면이 번갈아 보였다. 아직 초록인 잎들 사이에는 끝이 노랗게 변한 것들이 섞여 있었다. 나무 아래에는 성격 급한 잎 몇 장이 먼저 떨어져 있었다.
길을 걷는 동안 자꾸 하늘을 올려다봤다.
평소에는 고개를 들 일이 별로 없다. 신호등을 보고, 앞사람의 등을 보고, 횡단보도에 다다르면 바닥의 흰 선을 본다. 버스를 기다릴 때는 도착 시간을 보고, 걷다가 잠깐 멈추면 휴대전화를 본다. 도시에서 하루를 보내는 동안 시선은 대부분 내 눈높이 아래에 머문다.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데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남자가 위를 바라봤다. 한 여자는 휴대전화를 들었다가 하늘을 향해 카메라를 켰다. 사진을 한 장 찍고 화면을 들여다본 뒤 다시 한번 찍었다. 아마 사진에는 눈으로 본 만큼의 파란색이 담기지 않았을 것이다. 나도 여러 번 그런 적이 있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마음은 다 같지 않겠지만 오늘은 하늘이 사람들의 마음을 많이 부르고 있었다.
신호가 바뀌었다. 사람들이 한꺼번에 길을 건넜다. 나도 그 틈에 섞여 걸었다.
가을 하늘은 유난히 높아 보인다는 말을 어릴 때부터 들었다. 실제로 하늘이 높아지는 것은 아닐 텐데도 가을이면 그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습기가 줄어들고 공기가 맑아지면서 먼 곳까지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여름 내내 가까운 곳에서 흩어지던 시선이 어느 날 갑자기 멀리까지 닿는다.
생각해 보면 멀리 있는 것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산도 있었고, 건물 옥상의 안테나도 있었고, 그 위로 하늘도 있었다. 보이지 않았다고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공기가 흐렸고, 내가 고개를 들지 않았을 뿐이다.
사람의 하루에도 그런 것들이 꽤 많다. 당장 해야 하는 일들이 가까이에 붙어 있으면 그 넘어가 잘 보이지 않는다. 오늘 처리해야 할 일, 답해야 할 연락, 지켜야 할 약속 같은 것들이 눈앞을 차지한다. 가까운 것을 들여다보는 데에는 제법 많은 힘이 든다. 그러다 보면 몇 달 뒤에 어디에 있고 싶은지, 오래전 무엇을 좋아했는지, 요즘 내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는 쉽게 시야 밖으로 밀려난다.
그렇다고 매일 멀리 보며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은 결국 눈앞의 밥을 먹고, 오늘의 일을 하고, 오늘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며 산다. 먼 곳만 바라보다가는 발밑의 턱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다.
다만 가끔은 고개를 드는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을 결심하거나 삶의 방향을 다시 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냥 내가 보고 있던 것보다 세상이 조금 더 넓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지금 눈앞을 가득 채운 일이 내 삶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것. 맑은 날 먼 산이 다시 나타나는 것처럼 말이다.
한참 걷다가 다시 한번 뒤를 돌아봤다. 작은 구름 하나가 조금 전보다 멀리 움직여 있었다. 가을은 이런 식으로 오는 모양이다. 달력의 숫자가 바뀌어서가 아니라 어느 아침 갑자기 멀리 있는 것이 선명하게 보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