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위하여, 건배
아침에 길을 나서는 사람에게 우리는 잘 다녀오라고 말한다. 특별히 먼 곳으로 떠나는 것도 아니고, 위험한 일을 하러 가는 것이 아니더라도 그렇다. 학교에 가는 아이에게, 출근하는 가족에게, 잠깐 외출하는 사람에게도 잘 다녀오라고 한다. 생각해 보면 그 말에는 잘 가라는 의미와 잘 오라는 의미가 한 문장 안에 들어 있다.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돌아오는 순간까지, 그 사이의 시간을 모두 포함하는 인사다.
어릴 때는 그 말이 그저 외출할 때 주고받는 인사인 줄 알았다. 집에 들어오면 “다녀왔습니다”라고 말하고, 나갈 때는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당연했다. 아침이면 가족들이 저마다 나갈 준비를 하느라 분주했다. 누군가는 신발을 신으며 인사를 했고, 누군가는 식탁에서 밥을 먹다가 고개만 돌려 대답했다. 서로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않고 주고받을 때도 많았다. 그렇게 익숙한 말이어서 그 안에 어떤 마음이 들어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말을 건네는 사람은 그날 집을 나서는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인사일 뿐이다. 이 말은 참 모호하면서 많은 뜻을 담고 있다. 시험을 잘 보라는 뜻일 수도 있고, 일이 잘 풀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겼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결과에 의존하지 않는 말이다. 아무 성과가 없어도, 기분이 좋지 않아도, 결국 다시 돌아오면 되는 인사다.
잘 다녀오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대개 “응” 하고 짧게 대답한다. 상대방이 무슨 마음으로 그 말을 했는지 묻지 않는다. 인사를 건넨 사람도 특별한 대답을 기대하지 않는다. 어쩌면 오래 함께 살아온 사람들 사이에는 이런 말들이 필요할 것이다. 매번 사랑한다고 말하거나 걱정된다고 표현하지 않아도, 서로를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할 수 있는 말. 하루에도 몇 번씩 주고받으면서도 부담스럽지 않은 말이다.
생각해 보면 아침의 “잘 다녀와”와 저녁의 “왔어?” 사이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시간이 놓여 있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밖에서 보낸 하루를 모두 알 수는 없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누구의 말에 상처를 받았는지, 어떤 순간에 혼자 웃었는지 알지 못한다. 함께 사는 사람이라고 해서 하루의 모든 시간을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잠시 헤어졌다가 저녁에 다시 만난다.
그런 의미에서 잘 다녀오라는 인사는 상대방을 잠시 놓아주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함께할 수 없는 시간 동안 당신이 잘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모든 것을 알거나 대신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시간을 무사히 보내기를 바란다. 그러니 내게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해주는 사람이 있고,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건 소중하고 행복한 일이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이런 인사를 생략하기 쉽다. 어제도 했고 오늘도 하는 말이라서, 내일도 당연히 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한다. 인사를 건네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신발을 신는 사람에게 잠깐 고개를 돌리는 정도면 된다. 피곤해서 눈이 떠지지 않더라도 일찍 나가는 가족을 위해 눈을 떠보자. 그리고 잘 다녀오라고 말해주자. 그 말 한마디에 기운을 얻어 하루를 견디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오늘도 모두 잘 다녀오기를. 그리고 저녁에는 잘 돌아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