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동안 자잘한 일들에 신경을 못 썼다. 그러다 보니 고장 난 것도 많고 버려야 할 것들도 많다. 그저께는 서랍을 정리하다가 오래된 손목시계를 하나 발견했다. 자주 차지 않아서 가죽줄은 아직 새것 같은데 시계는 멈춰 있었다. 명품이라 버리기는 아깝고, 고쳐서 차자니 요즘은 휴대전화로 시간을 보는 일이 더 많아서 굳이 돈을 들여 고칠 필요가 있나 싶었다.
한참 들여다보다가 생각했다. 멈춰 있는 것보다는 움직이는 게 낫지. 고칠 수 있는지 먼저 알아보자 싶었다. 단순히 배터리가 나간 걸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카르티에 매장에 시계를 가지고 갔다. 직원이 흰 장갑을 끼고 시계를 받아 들더니 앞뒤를 천천히 살펴본다. 시곗줄을 펼쳐보고 용두를 몇 번 돌린 뒤 작은 트레이 위에 시계를 올려놓는다.
“언제부터 멈췄는지 기억하세요?”
“아니요. 안 찬 지가 오래돼서요.”
직원이 시계 뒷면에 적힌 번호를 확인하고 컴퓨터에 무언가를 입력한다. 잠시 후 시계를 들고 안쪽으로 들어간다. 기다리는 동안 진열장을 구경했다. 유리 안에는 새로운 디자인의 시계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놓여 있다. 모두 정갈하고 세련되어 보였다.
잠시 후 직원이 돌아왔다.
“시계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정확한 상태는 점검해봐야 할 것 같아요.”
수리를 맡기기 위한 몇 가지 설명을 듣고 서류에 서명한다. 직원이 내 시계를 작은 파우치에 넣는다. 며칠 뒤 점검 결과를 보고 수리가 필요한 부분은 마저 수리하겠다고 했다.
매장을 나오는데 손목이 괜히 허전하다. 몇 년 동안 차지도 않았던 시계인데 막상 수리를 맡겨놓으니 돌아오기를 기다리게 되는가 보다.
집에 와서 정리를 계속했다. 오래된 영수증을 버리고, 쓰지 않는 충전선을 골라내고, 서랍 안쪽에서 굴러다니던 예전 열쇠 꾸러미를 휴지통에 던졌다. 그러다 빈 시계 상자가 나왔다.
뚜껑을 열어보니 시계가 놓였던 자리가 움푹 파여 있다. 멈춰버린 시계와 예전에 그 시계를 내게 사주었고 이제는 헤어진 사람의 기억이 그 홈을 조금 더 깊게 파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시계를 고쳐 오면 상자 안에 다시 넣어 그저 보관하고 싶지는 않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미 지나간 시간이라도 그 안에 있었던 것까지 모두 없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시계는 며칠 뒤면 돌아온다. 수리가 끝나면 다시 정확한 시간을 가리키고,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의 시간으로 움직일 것이다.
나는 빈 상자의 뚜껑을 닫지 않고 서랍 한쪽에 넣어 두었다. 버릴 것들은 제법 버렸고, 고칠 것은 수리를 맡겼다. 이번에는 미련이 남아 있던 몇 가지 물건들도 함께 정리했다.
서랍 곳곳에 제법 넓은 빈 공간이 생겼다.
그 자리에 오늘이 가지런히 담기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