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에 담긴 모습

byAnima

전철에서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 남자가 전화를 받으며 전철 안이라고 속삭이듯 말하고 서둘러 끊었다.

목소리가 듣기 좋아 조금 더 듣고 싶었는데......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각양각색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저승사자를 연상시키는 낮고 음산한 소리,

크고 우렁차서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소리,

또박또박 걷듯이 음 하나하나 힘주어 내는 소리,

어리광이 배어 나오는 혀 짧은 어린아이 같은 소리,

쇠를 마찰시키는 듯 참을 수 없이 소름이 돋는 소리,

경쾌한 음악처럼 짧게 끊어지며 물을 톡톡 튕기는 소리,

부드럽고 나긋나긋해서 마치 솜사탕을 맛보는 것 같은 소리 등 본래 타고났거나 연습과 훈련에 의해 다듬어진 목소리를 지니고 산다.


중학생 때 반 친구에게 전화를 한 적이 있었다.

친구 어머니가 받아서 친구를 바꾸어 주어서 한참을 이야기하고 끊으려는데 그 친구가 덧붙인 말이 충격적이었다.

친구 어머니가 바꾸어 주면서 목소리가 남자 같다고 했다는 것이다.

변성기 전이나 후나 변함없이 느릿한 저음이었던 내 목소리가 그 어머니에게는 남학생의 것처럼 들렸나 보다.

굳이 그 말을 전하는 친구가 야속하기도 하였고, 목소리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더 터라 생전 처음 듣는 말이 무척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훗날 그 친구가 장난이었다고 실토를 했어도 그 여운은 가시지 않아 오랫동안 내 의식의 한 구석을 지배했다.

그 영향은 대학을 졸업한 후까지 계속되었다.

누가 연락처를 물으면, '제 목소리 들으면 어디서 옹기가 깨지나 보다고 할 텐데요, 또는 반어적으로 제 목소리 들으면 너무 고와 놀라실 걸요' 하고 사족을 붙이곤 했다.

여러 사람 앞에서 목소리 내기를 주저했던 터라 무척 조용한 사람으로 보이기도 했다.

줄곧 내 목소리는 굵고 거친 저음이라는 생각을 하며 지내다가 대학 졸업 후 교단에 서면서 뜻밖의 말을 들었다.

남자 교생과 여자 교생을 지도하고 있었는데 그중 예쁘장한 여자 교생이 나를 보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선생님, 선생님 목소리에는 묘한 매력이 있어요. 누가 말하나 한 번 뒤돌아보고 싶은 목소리예요.


덧붙이는 말이 크지도 작지도 않으면서 묘한 분위기를 내는 소리라는 것이다.

‘세상에, 이런 찬사를! 설마 교생이 지도교사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말은 아니겠지?’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인사치레라 해도 고맙고 진심이라면 더욱 입가에 웃음이 번지는 일이었다.


또 한 친구의 어머니는 친구 부재중에 전화를 한 나를 전하면서, '점잖고 교양 있는 목소리'라고 했다니, 목소리를 칭찬하는 진정으로 교양 있는 어머니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나로서는 모두 목소리에 관한 최고의 찬사가 아닐 수 없었다.

용모는 둘째치고 목소리가 고운 여자들을 보며 내가 갖지 못한 여성스러운 목소리를 늘 부러워하며 살았다.

어머니도 우리 형제자매들 중에는 다른 집처럼 담장을 넘나드는 여성스러운, 높고 고운 목소리나 듬직하고 남성적인 목소리를 가진 애가 없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하나같이 평범한 저음 아니면 가는 목소리라 여자들의 소프라노 음색, 남자들의 바리톤 음색이 부럽기는 어머니도 마찬가지셨나 보다.


우리가 그렇게 좋은 목소리를 가지지 못한 이유를 나름대로 분석하다가 내가 얻은 결론은 아기 때 많이 울지 않은 순둥이들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머니에게 여쭤 보니 역시 어렸을 때 별로 울지 않던 아이들이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온라인 게임에 나가신 아버지 몫까지 대신하여 다섯이라는 적지 않은 아이들을 혼자 키우셨다.

자리에 뉘어 놓고 제때 젖만 주면 보채지를 않아 힘든 줄을 모르셨다니 무던히도 목소리를 아꼈던 자식들이었나 보다.


창을 하는 사람들이 목을 틔우기 위해 우르르르 굉음을 내며 떨어지는 폭포수 아래에 앉아 목에서 피가 나도록 훈련을 했다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아기 때부터 울지 않는 아이를 일부러 울게 만들었어야 했나 보다.

다섯 명 모두 특별히 곱달 것도 없고, 거칠 것도 없는 평범한 목소리를 지니고 있고, 지극히 순하고 조용히 누워 있었기에 덤으로 납작한 뒤통수까지 얻었으니 말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한이 되기도 하고 뜻밖의 기쁨이 되기도 한 목소리 때문에 내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름대로 신경을 쓴 일이 있다.

아이들이 커서 남부럽지 않은 목소리를 가지려면 목청이 툭 터지게 소리를 지르며 울게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보채면서 칭얼거리는 아이를 보면서도 일부러 5분을 더 울리고, 잠이 깨서 우는 아이에게 한달음에 달려가는 대신, '이제 일어났구나. 엄마 곧 간다. 조금만 기다려라. 착한 아기야.' 하고 5분 동안 기다리다 달래곤 했다.

울리면 고운 목소리를 갖게 된다는 검증되지 않은 속설을 신봉한 이 엄마라는 여자는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 목소리 좋다는 말을 듣고 다닌다면 분명히 내 덕이라고 큰소리를 칠 생각으로 애꿎게 아이를 울리곤 했던 것이다.

이제 세월이 흐르고 흘러, 큰 아이는 노래를 잘한다는 말을 듣고, 둘째는 변성기 때 불안정한 목소리를 내다가 소위 동굴에서 울리는 목소리의 소유자가 되었다.

막내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귀여운 목소리에 내 마음이 녹아드는 느낌이라 내가 했던 행동이 맞는 것 같다.


교단에서는 마이크 없이 수업을 하다 보니 남들보다 큰 목소리를 내었다.

학생들을 바라보며 우스꽝스러운 표정에 걸맞은 목소리를 내기도 하고, 감정을 살려서 시나 연극 대사를 읊조리기도 하고, 가끔 누구 흉내를 내어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를 즐기기도 했다.


학창 시절 때 자신 없는 목소리로 조용조용 말하던 여자는 요즘은 막내에게 이런 말도 듣는다.


엄마, 웬 목소리가 그렇게 커? 남들이 다 듣겠어. 소리 좀 낮춰.


이제는 목소리가 아름답거나 굵거나 거칠거나,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

곱지 않은 목소리가 아니라 그 목소리에 담긴 어감과 상대방에게 비치는 모습이 어떨까 신경을 써야 할 나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