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모처럼 쉬는 날에 옷 정리를 했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려고 하는데 아직도 겨울옷, 봄옷이 뒤섞여 옷장에 걸려 있다.
이사 오기 전 집은 사계절 옷을 그대로 걸어놓아도 됐었다.
이제는 겨울옷, 봄옷을 정리상자에 넣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겼다.
전에 살던 집보다 10평이 줄어든 공간이라 사철 줄줄이 늘어놓고 이 옷 입을까 저 옷 입을까 고민을 할 수가 없다.
작년 초여름에 이사 오고 입었던 여름옷을 꺼내놓고 나니 방안 가득이다.
안 입을 옷을 골라서 장애인단체에서 준 비닐봉지에 넣으니 두 개 분량이다.
특히 부피가 큰 겨울옷은 따로 종이상자에 넣으니 큰 상자로 두 개가 된다.
이사 오면서도 버리고 단체에 기부한 것이 5 상자는 넘는데 해가 바뀌니 안 입는 옷이 더 생겼다.
그렇다고 그동안 새 옷을 많이 산 것이 아니다.
전에 살던 동네에서 단골로 다니던 저가 옷가게에서 싼 맛에 몇 개 산 것뿐이다.
요즘 그 사장 언니가 보고 싶어도 또 쓸데없이 옷을 사기에 얼굴 내미는 것마저도 자제하고 있다.
오히려 사지 마, 사지 마하고 말리는데 꼭 눈에 띄는 게 있어 지갑을 연다.
그저 싼 맛에, 얼마 안 되니까......
몇 년 전 정리전문가를 불러서 집안을 정리한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돈자랑에 미친 짓이지만 그 당시는 전 남편과의 오랜 결혼생활을 청산한 지 얼마 안 되었고 좀 더 쾌적하게 살고 싶어서 오래된 물건, 손때 묻은 물건들을 다 정리하고자 했다.
왜 이사 오기 전에 정리 안 했냐고 묻는다면 다 쓰려고, 아까워서였지만 넓은 집에 오니 마음이 달라진 것이다.
그때 버린 물건이 열 상자가 넘는다.
반은 내 옷이었다.
이거 그만 버려요, 이거 쓸 거예요? 묻는 도우미에게 답해 주기도 바빴다.
몇 번 입지도 않은 옷, 살 빼면 입겠다고 사놓은 예쁜 옷들이 무심하게 상자로 던져졌다.
옷더미에 휩쓸려 던져진 옷 중에 아뿔싸, 괜히 버렸네! 하는 옷이 있어 지금도 생각난다.
옷에 관심이 있고 옷에 욕심이 생긴 것은 고등학교 때부터라 생각한다.
교복만 입다가 수학여행이나 임원 수련회를 갈 때 사복을 챙겨가려면 유난히 신경 썼던 것 같다.
대학입시 때도 마음은 패션계로 나가고 싶었는데 생활기록부에 진로희망만 패션디자이너로 남고 말았다.
친구들과 놀러 갔을 때 사진을 보면 매일 바뀌는 옷차림이다.
2박 3일이라도 한두 벌만 챙기는 친구들에 비해 두세 벌은 더 챙겼다.
온라인 게임에 다닐 때는 학생들 앞에 서는 교직이라 특별히 신경을 썼던 것 같은데 다른 교사들이 점잖고 어두운 색을 입은 것에 비해 밝은 색 옷을 입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젊을 때도 이상하게 고상한 색이고 품격 있는 베이지색, 회색이 안 어울렸다.
그렇다고 매일 원색의 향연을 벌인 것은 아니고 중간색에 가끔 튀는 색을 즐겼다.
기본적인 복장보다 평범을 거부하고 포인트가 하나라도 있어야 입으니, 옷을 걸치고 나갈 때마다 엄니가 한마디씩 하셨다.
옷이 그게 뭐냐? 교사가 점잖게 입고 좀 다녀라.
바로 위 언니가 참한 스타일 옷만 입어서 비교를 하시며 내 스타일을 못마땅해하셨다.
그런데도 밖에 나가면 학생들과 교사들이 패셔니스타라고 말해주니 엄니 뜻대로 옷차림을 조신하게 바꾼 적은 없다.
온라인 게임 다닐 때는 주로 무릎 아래 오는 치마나 바지를 입고 다녔다.
어쩌다 마주친 사람이 다리가 예쁘다는 말을 했는데도 남학생들의 거울 밀어 넣기를 방지하고자 짧은 치마는 가능하면 삼갔다.
어제 긴 바지를 입었더니 다리에 칭칭 감기며 더운 기운이 훅 끼쳤다.
오늘은 낮 기온이 30도를 넘는다니 무릎 위로 올라가는, 겉으로는 치마를 가장한 반바지를 입어야겠다.
맨다리 내놓고 걷기를 시작하자니 감회가 새롭다.
예전에는 여름에 더워도 스타킹을 신고 어떻게 다녔는지 모르겠다.
걷기 하면서부터는 흰 양말을 신고 운동화를 신으니 산뜻하고 편하다.
하얀 반양말에 운동화를 신으면 치마바지가 무릎 위로 올라가도 민망하지 않다.
누가 뭐라나, 운동하러 나가는데, 걷기 하러 나가는데.
치마레깅스를 입고 나갔을 때 그렇게 입고 다니면 부끄럽지 않냐고 한 길벗이 내 맨다리를 보면 한마디 할 것 같다.
그렇게 맨다리 내놓고 다니면 부끄럽지 않아?
전혀요, 아주 시원한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