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비가 올 때 우산을 잃어버렸다.
지하철 안, 부침이 적은 소화기 있는 구석에 쏙 들어가 있다가 우산을 놓고 내렸다.
그 우산은 양산을 겸해 써도 되는 우산이다.
파란 바탕에 노란 나비 무늬가 있어 눈에 띄기도 하는 우산인데 몇 년 전에 옷을 살 때 사은품으로 받은 것이다.
신발장 구석에 있는 우산은 많건만 유독 그 우산을 잃은 것이 아까웠다.
유실물센터에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고 분실물로 들어오면 연락해 달라고 했다.
다시 찾을 확률은 희박해서 연락은 오지 않았다.
지하철에 우산을 두고 내린 것이 두 번째다.
또 한 번은 장우산을 지하철 통로 연결 고무에 끼워놓았다가 그대로 내려버렸다.
집에도 많은 검은 우산이라 별로 아깝지 않았다.
두 번 우산을 잃은 후에는 손에서 우산을 놓지 않는다.
서 있을 때는 팔에 걸고 있고, 앉을 때는 무릎 사이에 끼고 앉아 있는다.
모양이 빠져서 사람들이 쳐다봐도 할 수 없다.
요즘은 우산 정도지만 예전에는 제법 값나가는 물건을 잘 잃어버렸다.
수영을 하고 탈의실에서 주머니에 시계와 반지를 같이 넣은 것을 모르고 옷을 털었다.
무언가 구석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니 시계다. 시계를 줍고 반지는 떨어졌는지도 몰라 그대로 잃어버렸다.
그 반지로 말할 것 같으면 언놈 하나 반지 사줄 놈이 없어 생일을 자축하면서 샀던 것이다.
오닉스 바탕에 18k 금으로 된 그리스 여신이 있는 목걸이와 한 세트였다.
너무 아까워서 며칠 밤을 고민하다 그 상점으로 가서 똑같은 반지를 구입했다.
두어 달 후에 그 반지가 또 없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언제 어떻게 없어졌는지 추리가 안 되었다.
심증이 가는 일은 있다.
베란다에 빨래를 널면서 힘차게 흔들다가 손가락에서 빠져나와 방충망을 뚫고 추락한 것 같다.
나중에 보니 방충망에 구멍이 나있었는데 오래돼서 저절로 난 구멍인지 그것은 알 수가 없다.
그 반지는 나와는 인연이 없나 보다 하고 포기했다.
자주 잃어버린 것은 신용카드다.
지하철 탈 때 손에 쥐고 있다가 흘리기도 하고,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분실 신고를 했더니 다음 날 다른 가방 구석에서 나오기도 했다.
분신과도 같은 핸드폰을 잃었다가 찾은 적도 있다.
ATM기에서 출금하다가 옆에 빠진 것도 모르고 집에 왔는데 습득한 동네 사람이 연락처에 있는 큰딸에게 전화해 전해주었다.
마트에서 먹을 것을 잔뜩 사서 안겨 주었는데 구형폰이라 사례비를 바란 것 같지는 않다.
물건을 분실한 것은 찾으면 다행이고 못 찾아도 할 수 없지만 정신줄을 놓아버리는 것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걸으려고 다 모였는데 한 사람이 안 온다.
마침 연락처가 저장되어 있어 전화를 걸었다.
깜빡님, 어디 오시고 있어요?
에? 오늘 걷는 날이에요?
잊으셨어요? 다 기다리고 있는데.....
아이고, 미안합니다. 내일인 줄 알았어요.
어떤 이는 처음 오는 사람이라 연락처도 모르는데 오지 않는다.
아마도 깜빡 잊었거나 댓글로 취소하기 싫어 잠수 탄 사람일 게다.
나라고 예외가 아니다.
모인 시간에 늦을 것 같아 연락을 했다.
당황님, 아니마인데요, 제가 10분쯤 늦을 것 같아요.
네? 오늘 내가 나가는 날인가요?
아니에요? 오늘 덕수궁 가려고 시청에서......
저는 내일 걷는 날인데요.
아, 그렇군요, 당황님 오시는 날인 줄 착각했어요. 미안해요. 내일 봐요.
우산 정도는 잃어버려도 좋다.
집에 우산 많다. 누군가 잘 쓰겠지.
신용카드, 교통카드 잃어버려도 된다.
번거롭지만 분실 신고하면 된다.
단어가 갑자기 생각 안 나도 좋다.
3분 안에 곧 떠오르니까.
뭐 가지러 왔는지 잊어버려도 된다.
다시 제 자리로 가면 생각나니까.
온라인카지노 읽다가 내릴 곳을 놓친 일도 괜찮다.
되돌아가면 되니까.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야 되는지 모르면 심각하다.
오늘이 그날인지 내일이 그날인지 정도는 알아야 한다.
정신 차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