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좀 해주지

byAnima

에스컬레이터를 올라가는데 앞사람의 등에 실밥이 붙어 있다.

하얀 실이 제법 굵고 길어서 쉽게 눈에 띈다.

살짝 떼어주려다 괜한 의심을 살까 싶어 그만두었다.


조잘대며 여학생 둘이 내려간다.

한 명의 운동화 끈이 풀어졌다.

저러다 넘어질까 걱정되어 말해 주려다 참았다.

몇 걸음 가다가 알아채겠지 하고 그만두었다.

승강장에서 앞에 서 있는 여자의 하얀 옷에 머리카락이 붙어 있다.

살짝 떼어주려다 눈치챌까 참았다.

문이 열리자 장애인이 앉은 휠체어를 밀고 한 여자가 들어온다.

장애인석에는 두 남자가 서있다.

휠체어를 보고도 자리를 내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휠체어는 어정쩡하게 가운데 서있다.

휠체어 타신 분께 양보해 주시겠어요?

저 자리에 들어가겠다고 말하세요.

하려다 대변인이 필요 없을 것 같아 안 했다.


부부가 유모차를 끌고 탔다.

역시 아무도 아는 체하지 않았다.

아빠인 듯한 사람이 말했다.

여기에 서도 될까요?


사람들은 기꺼이 비켜주었다.

비행승무원이 캐리어를 끌고 탔다.

어정쩡하게 서있다가 차가 흔들려 내 쪽으로 넘어지려 했다.

기둥이 있어 안전한 자리에 서 있던 내가 말했다.

저와 자리 바꾸실래요.


아, 괜찮은데...... 감사합니다.

아들보다 한참 어린 군인이 탔다.

자기 몸의 반은 됨직한 큰 배낭을 메고 있었다.

무거워 보였다.

이쪽에 배낭 올리고 서세요.

하고 자리를 바꿔 주었다.

전에 어떤 여자가 화장실에서 나오면서 치마를 반쯤 웃옷에 넣은 것을 봤다.

바삐 가는 여자에게 굳이 뛰어가서 치마 빼라고 말해줬다.


걷기를 마치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다가 아차! 했다.

치마레깅스가 올라가서 엉덩이가 백일하에 다 드러난 것이다.

치마와 바지가 붙어 있지만 치마를 걷으면 그야말로 스키니, 레깅스라 라인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잠시 쉬다 일어날 때 말려 올라간 모양인데 미처 손을 쓰지 못했다.

어쩐지 횡단보도를 건널 때 사람들이 유난히 쳐다보더라니......

에스컬레이터 타고 올라올 때 길벗이 뒤에 있었다.

아니, 이걸 왜 말 안 해 줬어요?


그냥 그렇게 입었나 보다 했지.


이런 일이 전에도 있었다.

한참을 걷다가 허전해서 보니 엉덩이 쪽이 말려 올라가 있었다.


왜 말 안 해 줬어요?


엉덩이 좀 보여주면 어때? 볼만하구먼.


이건 실밥, 머리카락 붙은 것과는 다르다.

운동화 끈이 풀린 것과는 다르다.

자리 바꾸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그런 것은 꼭 말을 해줘야지요, 안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