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살구 따러 가야 해"
남편이 토요일에 살구를 따러 가야 한다고 했다. 사과농장을 하는 시아버님을 도우러 종종 시골에 가는데, 나에게는 기회가 아직 없었다. 이때다 싶어 '나도 갈래!'라고 말했다. 남편은 더운데 집에 있으라며 말렸지만 결국 주말에 함께 출발했다.
먼저 시 할머님 댁에 가서 할머님을 모시고 출발했다. 출발하기 전, 남편이 모기에 물린다며 긴 바지를 입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했지만, 한 여름 더운 날 긴 바지를 입고 싶지 않아 원피스를 입었다. 그렇게 영주의 도로를 지나 보이는 곳은 생각과는 달랐다. 나에게 시골이라 하면, 평평한 땅에 각각의 밭들이 펼쳐져 있는 것만 생각했다. 하지만 가는 길에 펼쳐진 풍경은 완전한 산길이었다. 다행히 이날 모기는 물리지 않았지만 다음에는 꼭 바지를 입고 와야겠다고 다짐했다.
차를 타고 30분. 체감상 한 시간은 달린 것 같았다. 산 길은 험했고, 양쪽에 도랑이 있어 무서웠다. 빼곡하게 자란 나무들은 산을 이루었으며, 한치도 허락하지 않을 것 같은 나무 사이는 경이롭게 보였다. 멋지기도 했지만 무섭기도 했다. 들어갈수록 버드나무가 거대하게 늘어져 있었다. 차 안에서 보는 나무들은 어느새 서늘함이 느껴지는 듯했다. 조금 더 들어가니 처음 보는 사과나무와 수박 밭이 보였다.
"저기 보이는 하얀색이 전부 수박이야"
할머님의 말에 빠르게 지나가는 창문을 보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수박을 하얀색 종이로 하나하나 정성스레 쌓아놓은 것이 보였다. 수박을 감싸놔야 푹 익지 않고 크게 자란다고 한다. 길가에 열려있는 사과나무, 옥수수나무 등이 신기했다. 그렇게 구경하고 나니 금세 시골길이 나왔다.
어두운 산 길 지나 밝은 사과 밭이 나왔다. 울퉁불퉁 한 시골길을 덜컹덜컹 올라가니 아버님이 보였다. 반가웠다. 아버님과 남편이 살구 열매 따러 갈 때, 아래에서 열매를 받아주고 싶었는데 모두가 절대 못한다며 말렸다. 힘드니 쉬고 있으라고 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할머님과 아버님이 지내는 곳으로 올라갔다. 검은색 커다란 개가 저 멀리 짖는다. 개를 무척 무서워하는 나는 그 소리에 움츠려 들었다. 아버님이 키우는 강아지라고 한다. 덩치는 큰데 순하게 생겨서 의외로 무섭지는 않았다. 할머님이 주섬주섬 어제 먹다 남은 치킨 살코기를 꺼내시더니 개에게 던져주었다. 개는 그 치킨을 맛나게 먹더니 금세 조용히 개 집으로 들어갔다.
아침을 안 먹고 아침 6시에 바로 출발했더니 출출해졌다. 할머님이 장독대에서 간장과 된장을 꺼내시는데 그 냄새가 너무 좋았다. 꼬르륵하는 소리가 들릴까 괜히 할머님께 '맛있겠어요!'라며 말을 건넸다. 서너 개가 넘는 장독대의 뚜껑을 열어보고는, 고무줄이 삭을 수 있다며 갈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할머님이 장독대를 정리하는 동안 옆에서 이것저것 기웃거렸다.
"집에 된장 남았나?"
"할머님이 주신 된장 벌써 반이나 먹었어요!"
"간장은 사서 먹나? 줄까?"
"네 사서 먹어요. 주시면 감사하죠!"
커다란 페트병 한가득 간장을 담고, 사람 머리보다 더 큰 플라스틱 통에 된장을 한가득 담아주셨다. 주신 장으로 고기도 볶고, 미역국을 끓일 생각 하니 벌써 군침이 돌았다. 당장이라도 고기를 삶아 된장에 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한참을 할머님과 이야기를 하고 나니, 신랑이 차를 끌고 도착했다. 아버님도 나중에 오셨는데 트럭에 한가득, 살구와 매실이 담겨있었다.
"매실이 노란색이네요?"
"이건 익어서 그래, 먹어볼래?"
아버님이 살구와 비슷한 매실을 하나 집어주셨다. 배고픈 와중에 잘 됐다 싶어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아이고 셔!"
"매실은 셔!"
"그래도 맛있어요!"
신맛이 강했지만 단 과일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오히려 맛있게 느껴졌다. 매실이 이렇게 맛있는 과일인 줄 알았으면 진작 많이 먹어볼걸. 매실 하나를 손에 들고 할머님에게도 가서 '이거 정말 셔요!' 하고 자랑했다. 다들 신 걸 잘 먹는다며 신기해했다.
할머님은 밭에서 대파를 잔뜩 뽑고, 가지도 수확했다. 서로들 살림에 보태라고 나눠주셨는데 그날 저녁 미역국도 끓이고 대파를 손질하고 가지무침도 해 먹었다. 할머님이 고생했는데 맛있는 거 사 먹으라며 손에 꼭 쥐어주신 소중한 오만 원은 수육 고기를 사서 남편에게 삶아주었다. 맛있다고 먹는 남편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할머님이 주신 된장 풀어 양파, 고추 등 재료 넣고 수육을 끓였다. 감칠맛이 아주 좋았다.
이날, 산길은 생각보다 울창했고, 장독대의 된장 향은 맛있었으며, 처음 먹어본 매실 열매는 신맛이 좋았다. 사랑 가득한 하루가 햇살만큼이나 따뜻했다. 걱정인 것은 7,8월의 해가 강한 날, 밭일을 하시는 아버님의 건강이 가장 신경 쓰였다. 무언가 해드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남편과 상의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덧 9월이 되었다. 선선한 날이 장독대의 향기를 가져다주는 것만 같았다. 드높게 푸른 하늘은 아버님이 계시는 사과밭을 예쁘게 비췄다. 사과가 다 자란 모습은 아버님이 보내준 사진 한 장에 담겨있었다. 나는 아버님이 주시는 사과가 맛있다. 우리 집 막내 고모도 다른 사과는 달기만 해서 별로인데, 아버님 사과는 맛있게 달고 상큼해서 정기적으로 사 먹고 싶다고 했다. 달기만 한 과일을 싫어하는 나도 아버님이 키운 사과는 이상하게 맛있게 느껴졌다. 하나를 깎아 두면 한 조각만 먹었던 사과를 하나 가득 그 자리에서 다 먹는다. 분명 대박이 날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 집에 귀여운 가족이 생겼다. 살구를 따러간 날, 받아온 흙 대파에 붙어있던 작은 달팽이다. 벌써 두 달 가까이 살아가는 달팽이를 위해 집을 마련해 주고, 곡물을 빻은 밥과 상추, 칼슘까지 챙겨주고 있다. 며칠 전에는 알도 낳았는데 아무래도 무정란 같다. 팽이라는 이름으로 가족이 된 영주의 명주 달팽이는 꿈에도 나올 정도로 잘 지내고 있다.
공기 좋은 울창한 숲을 지나, 예쁘게 자리 잡은 사과 밭에서 자란 사과는 사랑을 받아 빨갛게 익어간다. 마치 영주에서 자리 잡고 살아가는 남편과 나처럼. 그렇게 무럭무럭 오늘도 영주에서의 따뜻함을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