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상처와 위로
기독교 며느리의 첫제사
첫제사 이야기를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많은 고민을 했다. 아무래도 여러 감정을 느꼈던 날이기 때문이다. 결국 기독교 며느리의 첫제사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영주로 시집을 오며 감명 깊었던 이야기를 담아내는 과정에 꼭 필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태신앙 과정(친가 제사에 대하여)
먼저 친정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나는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교회를 다녔다. 흔히 기독교에서는 이를 '모태신앙'이라고 부른다. 모태신앙이라고 해서 믿음이 좋은 것은 아니다.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믿음이 다 좋은 것이 아닌 것과 비슷하다. 반대로 믿음은 있는데 행동이 안 따라주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그렇다. 마음을 바로 세우고, 믿음은 있지만 교회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가 있는 나는 한 교회에 정착을 잘 못한다. 개인적인 PTSD라고 할 수 있지만 이는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 '목사'가 되겠다던 믿음과 아쉬움은 여전히 남아있다.
우리 친정은 대대로 불교집안이었다. 신줏단지를 모시고, 교회만 갔다 하면 핍박이 오고 가는 그런 집안이라고 들었다. 친할머니부터 시작된 믿음은 친할아버지의 분노를 샀다. 교회만 다녀오면 안방에서 현관까지 쓰레기통이 날아왔다고 했다. 하지만 친할머니는 개종을 멈추지 않았다. 친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시 어머니(나에게는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신줏단지를 깨버렸다고 한다. 그렇게 친할머니 홀로 믿음 생활을 시작했다.
친할아버지가 살아계실 때까지 제사를 지냈다. 물론 나는 태어나지 않았거나 너무 어렸어서 기억이 없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친할머니는 제사를 없애자고 했다. 음식은 그대로 했지만 예배를 드리는 형식으로 기일을 보냈다. 엄마에게 들어보니 첫제사를 없앤 날 친할머니가 기도를 하며 펑펑 우셨다고 한다. 감격을 해서 우신건지, 아니면 제사를 안 지내서 우신건지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하지만 한 성깔 제대로 했던 우리 아빠는 그 모습을 보고 '다 때려치우고 그대로 제사해!'라며 호통을 쳤다고 한다. 그렇게 제사가 다시 시작됐지만 어느 순간 다시 예배로 돌아왔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할아버지의 기일과 설날에 예배로 애도했다.
영주에서의 첫제사
우리가 결혼을 약속하기 전, 남편의 친가가 불교라고 들었다. 남편이 먼저 나에게 말했다. "제사 강제로 안 지내도 돼요." 그 말 한마디가 고마웠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 그래요. 그래도 참여는 할게요."라고 했다. 서로 고마움을 갖고 제사 문제는 큰 일 없이 마무리됐다. 남편은 믿음을 갖는 것은 어렵겠지만 기독교로 전향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신혼집을 구하기 전, 주말 부부처럼 부천집에서 만날 때는 일요일마다 교회를 함께 나갔다. 빼먹는 날도 있었지만 함께 악기를 다루며 즐겁게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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