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에서 가장 큰 선물 '가족'
아버님 생신 준비
영주에 와서 처음 맞이하는 아버님 생신이었다. 생일이 다가오자 선물부터 고민했다. 무엇을 좋아하실지, 무엇이 필요하실지 남편과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다 마침 "지갑 어때?"하고 남편에게 물어봤다. 남편도 좋을 거 같다며 동의했다. 지갑은 매일 가지고 다니는 물건이고, '대박'이라는 좋은 의미도 갖고 있으니 괜찮은 선물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며칠 동안 인터넷을 찾아봤다. 첫 번째 고민이 끝나고, 두 번째 고민이 시작됐다. 어떤 브랜드가 좋을지, 모양은 어떤 게 나을지 한참을 생각해 보았다. 내 눈길을 끈 지갑은, 심플하게 로고가 들어가 있는 지갑이었다. 겉은 까맣고, 안쪽은 진한 남색에 가까운 색이었다. 너무 스포티하지도 않고, 올드하지도 않고 세련돼 보였다. 보자마자 '이거다'싶었다. 아버님께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했다. 물론 디자인을 고를 때 남편의 의사도 빼놓지 않았다. 남편도 '아빠가 좋아하는 색이네'하며 공감했다. 남편은 떡 케이크를 예약했다. 몇 년 전, 아버님 생신 때 떡 케이크 한번 해드린 적 있다며 맛있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케이크는 남편에게 맡기기로 했다.
아버님 생신 당일.
시댁으로 가는 길에 남편과 떡 케이크를 픽업했다. 케이크를 찾아오면서 작은 쿠키도 샘플로 몇 개 받았다. 남편은 그 쿠기가 마음에 들었는지 한두 개 집어먹으며 연신 감탄을 했다. 시댁 가는 길에 남편의 짖꿎은 장난으로 눈물을 찔끔 흘렸다. 남편은 마침 신호 대기 중에 내 모습을 보더니 '찰칵'하며 사진을 찍었다. 뭔가 얄미웠지만 토라진 모습을 귀여워해주는 남편의 반응에 눈물이 쏙 들어가 버렸다. 무엇보다 방금 찍힌 사진을 휴대폰 잠금 화면에 해두겠다는 남편 때문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안돼!' 지우려고 했으나 신호등이 바뀌었고, 남편은 얼른 휴대폰을 감추었다. 그 사진은 아직 남편 휴대폰 잠금 화면에 있다. 그 사진을 볼 때마다 넙데데하게 나온 내 얼굴 때문에 얼른 지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내가 싫다고 지우라고 하면 남편은 '킥킥'웃기만 한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삭제는 어려울 것 같다. 그렇게 웃고 떠들며 시댁에 도착했다.
가족들이 모두 모이기 전에 아버님께 선물을 드렸다. 사실 지갑에 문제는 없는지 미리 꼼꼼하게 검수를 해보느라 기존 선물 포장이 조금은 삐뚤어진 게 신경 쓰였다. 포장이 어려운 건 아니었다. 문제는 리본 묶는 법이 참 어려웠다. 그래도 선물인데 검수는 해봐야 할 것 같아서 조심스럽게 풀었는데, 결국 리본을 묶느라 한 시간은 앉아있었던 거 같다. 조금은 삐뚤어진 리본이지만 다행히 지갑은 너무나 예쁘게 도착했다. 아버님은 지갑을 받아보시고 고맙다며 기뻐해주셨다. 할머님은 다음부터 돈 쓰지 말라고 했지만, 생일인데 선물을 드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선물을 준비하는 일이 나는 좋다. 최근에 아버님이 선물해 드린 지갑을 쓰시는 모습을 봤다. 내가 며칠 고민하며 골랐던 지갑. 꼼꼼하게 검수하느라 리본만 한 시간을 맸던, 그 선물. 아버님께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뿌듯하고 감사했다.
나에게 생일이란
조금 뒤 가족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둘째 고모님도 오고, 작은 아버님과 작은 어머님도 도착했다. 작은집 아이들도 왔다. 사람이 하나 둘 모이더니 어느새 집안이 북적북적해졌다. 생일상 먹기 전에 남편과 픽업해 온 떡 케이크에 초를 꽂았다. 이제 본 건데 떡 케이크에 꽃도 있고, 글씨도 적혀있었다. 생일 축하하고, 사랑한다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알록달록한 케이크와 함께 생일 축하노래가 시작됐다. "생일 축하합니다~" 나는 영상을 빼놓지 않고 찍었다. 이렇게 가족들이 모여 생일 축하하는 모습을 많이 보지 못했기 때문에 꼭 남기고 싶었다. 우리 친가는 중학교 이전부터 가족들이 잘 모이지 않았다. 생일 축하를 해도 두세 명이 전부였고, 고등학교 때부터는 아버지와 단둘이 생일을 보내는 날이 많았기 때문이다. 가끔은 아빠가 내 생일을 잊어버리기도 했다. 아주 가끔이지만. 그럴 때면 '나 오늘 생일인데~' 하고 말해본다. 아빠는 '어? 다음 주 아니었어?' 하며 능청스레 넘겼다. 생일 당일에 선물을 받기보다 몇 달 전에 선물을 받고, 생일이 되면 "그게 선물이었어"하고 지나가는 일도 있었다. 물론 그게 싫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게 우리 가족의 표현이니까. 아빠도 나름대로 내 생일을 챙겨준 거라고 생각했다. 한 번은 아빠가 말한 적이 있다. 아빠 어렸을 땐 아무도 아빠 생일을 챙겨주지 않았다고. 그 이유는 하필 태어난 날이 음력 설날이기에, 다들 세배하기 바빴고, 생일을 챙기진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 아빠 생일도 내가 챙겼다. 케이크를 며칠 전에 미리 사두거나, 선물을 미리 준비해 뒀다. 친할머니도 '아빠 생일 챙기는 건 딸 밖에 없네'라고 말할 정도로, 우리 아빠 생일 챙기는 사람이 과거에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생일이라는 날을 조금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생이라는 길고 긴 길에 홀로 걷다 보면 내가 축하받을 일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가도, 생일에 한 두 명이라도 생일 축하한다는 말이 오면 그것 또한 감사하기 때문이다.
가족
떡 케이크도 생각보다 맛있었다. 달달하면서 부드러운 케이크는 내가 알고 있던 우유 생크림이 아닌, 고구마 무스로 만든 맛이었다. 더 깊고, 고소한 맛. 마치 가까운 가족들이 모여 시아버님의 생일을 축하하는 모습과 닮아있었다. 달달하고 포근한, 깊은 마음이 느껴지는 그런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밥을 다 먹고 쉴 때 북적이는 가족들이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동안 각자 생활을 하며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는 가족들,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고민을 하고, 누군가는 장난을 치기도 했다.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나에게는 생소한 북적이는 가족들의 모습. 서로에게 불편한 말 한마디 없이 근황을 이야기하고, 걱정도 하는 모습을 보며 참 좋은 가족들이라고 생각했다. 마음 한구석은 배가 부른 만큼 따뜻해졌다. '이게 가족이구나' 생각했다.
아버님이 차려준 생일상, 외롭지 않은 영주생활
연고가 없어 외로울 거라 생각했던 영주는 남편 덕분에 웃고, 아버님과 할머님, 그리고 가족들 덕분에 외롭지 않았다. 아버님은 맛있는 것이 생길 때마다 나와 남편을 먼저 챙겨주었다. 소고기가 생겼을 때도, 삼겹살을 구울 때도, 돼지갈비를 사 왔을 때도 늘 우리를 먼저 챙겼다. 불판과 집게도 아버님이 꼭 들고 계셨는데, 고기를 구워서 매번 우리 앞에 먼저 놓아주었다. 내가 남편 생일 상을 차렸을 때는 아버님이 '현주 생일상은 못 먹고..'라며 말했다. 그래서 아버님이 직접 수육과 육회를 만들어 생일 상 차려주셨다. 이날은 잊지 못할 생일이었다. 또 가끔 할머님과 아버님이 점심 약속이 있을 땐 연락이 왔다. 집에서 혼자 글 쓰고 있는 내가 밥은 챙겨 먹었는지 걱정된다며 함께 먹으러 가자고 했다. 우리 아빠처럼, 나를 먼저 챙겨주는 아버님이 참 감사했다. 시댁에서 설거지를 할 때도 할머님은 "내가 천천히 하면 돼"라며 말리거나, 둘째 고모님이 빠르게 고무장갑을 낀다. 타이밍을 놓칠 때면 "바통터치해요!"라고 내가 말한다. 그럼 고모님은 "다 했어" 라며 괜찮다고 한다. 누가 봐도 설거지 거리가 아직 많이 남아있다. 그럴 때면 죄송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다. 어쩌면 부담스럽지 않게 배려해 주는 것 같아, 괜히 마음이 간질간질하게 느껴진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생일 영상을 다시 꺼내봤다. 아버님이 케이크 앞에 앉아 초를 끄는 모습, 가족들의 행복한 목소리가 담겨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 합니다, 사랑하는-" 다들 웃고 있었다. 특히 아버님이 더욱 웃고 있었다. 영상을 볼 때마다 마음이 찡해진다. 한참을 바라보다 보면 코 끝이 매콤하다. 아마 내가 그 자리에 있고, 그 따듯함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차가운 도시가 아닌, 이곳 영주에 있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가족의 온기에 참 감사했다. 만약 우리가 신혼집을 서울로 구했다면 지금과는 다른 생활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무런 이벤트 없이, 따뜻한 아버님의 부름 없이, 할머님의 닭죽도 못 먹고,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도 자주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영주에 있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아이가 이곳에서 자란다면, 가족이라는 따듯함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맛있는 것이 생기면 서로를 부르는 온기, 힘들 때 가족들이 머리 맞대고 상의할 수 있는 곳. 나는 아버님의 생신에서 우리들의 따뜻한 미래를 보았다. 그리고 나는 영주에서 가족이라는 더 큰 선물을 받았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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