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페 디엠'에는 바카라임이 따르지!

byMy Way

2학년 말, 아들은 새로운 고민거리를 안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엄마의 대학 생활 아쉬움을 대리 만족시켜 주며 ‘카르페 디엠’을 몸소 실천해 오던 아들은 동아리 활동의 계속 여부를 놓고 고민에 빠졌습니다.


아들이 소속된 카이스트 응원단은 2학년 정단원을 주축으로 운영됩니다. 1학년들은 정단원의 뒤를 받쳐주고, 3학년들은 단장단이 되어 응원단을 이끕니다. 다만 대부분이 2학년을 끝으로 동아리 활동을 멈추기 때문에 매년 단장단 수는 1명 ~ 3명으로 늘었다, 줄었다 합니다.


동아리 활동을 2학년까지만 하고 그만두는 이유는 뻔합니다. 군 입대 문제거나 졸업 후 진로 고민 때문입니다.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언제까지 낭만과 열정만으로 대학생활을 할 수 없다는 위기감을 느끼며 카이스트생들 역시 다른 대학생들과 똑같이 학점 관리며 스펙을 쌓는 데 몰두합니다.


아들 역시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단장단’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과 기왕이면 ‘단장’까지 하고 싶다는 욕심 앞에, 3학년이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3학년까지 하면 힘들지 않을까?”

“왜 응원단장까지 하고 싶은 걸까?”


역시나 이번에도 아들의 고민에 엄마와 아빠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저는 더욱 빡빡해진 공부와 동아리 활동을 병행하는 것이 건강에 무리가 가지 않을까 걱정했고, 남편은 아들이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를 궁금해했습니다.


아들의 말에 따르면, 훈련은 힘들고 고되지만 실전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뒤 느끼는 그 희열이 꽤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던 것 같습니다. 학교 밖 행사를 하며 카이스트를 대외적으로 알리는 것도 뿌듯했고, 다른 동아리 혹은 학생회 임원들과의 교류도 단장단이 되어야 할 이유였습니다. 아무래도 단장단 형과 누나들을 도우며 응원단을 직접 이끌어보고 싶다는 꿈을 키워온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발목을 잡았습니다. 아무래도 동아리 활동에 할애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학점이 생각만큼 잘 나오진 않았습니다. 물론 자신의 기준에 못 미친다는 뜻이긴 합니다만, 복수전공에 응원단까지 병행한다는 것이 무리긴 했습니다.


“아빠 생각에는, 네가 학점과 바꾼 그 경험은 결코 어디서도 살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해. 공부를 잘하고 높은 학점을 받는 것도 좋지만, OO이처럼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 또한 그 시기에만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남편은 단장단 지원을 놓고 고민하는 아들에게 단정적인 대답을 하는 대신 슬그머니 ‘하는 쪽’에 힘을 실어주는 듯한 말을 했습니다. 아들은 며칠간 심사숙고하더니 단장단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하고 ‘단장’이 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그해 단장단에 지원한 3학년은 두 명. 둘 중 한 명만 단장이 될 수 있기에 1년간 어떻게 응원단을 이끌어갈 것인지에 대한 자신의 포부와 계획을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발표 당일, 정성스레 만든 PPT를 보여주며 부족한 부분은 없는지 저희에게 묻는데 콩깍지가 제대로 씐 제 눈엔 아들이 단장이 될 것 같더라고요.


결국 응원단장이 된 아들은 그해를 화려하게 물들였습니다. 코로나 이후 모든 것이 정상화되면서 교내 행사뿐만 아니라 대전시 축제, 공공기관 행사에서도 카이스트 응원단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매년 열리는 연세대와 고려대의 학생 교류전인 연고전(고연전)처럼 카이스트와 포스텍에도 카포전(포카전)이라 부르는 학생 교류 행사가 있는데, 아들은 그곳에서도 응원의 열기를 한껏 끌어올렸습니다.

저는 그 모습들을 유튜브를 통해 확인했습니다. 예년에 비해 칼군무가 더욱 정교하게 느껴졌고, 이벤트 무대는 역대급으로 보였습니다.

tip) 3:10초부터 감상(2023 카포전 농구 하프타임)


아들은 응원단장이 되면서 응원 연습 외에도 단장이 챙겨야 할 것들이 많다는 것을 몸소 경험했습니다.

먼저 단원들의 마음을 챙겨야 했습니다. 시간을 쪼개가며 힘든 훈련을 하는 만큼 후배들을 격려하며 응원단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단장이 해야 할 제법 큰 일 중 하나였습니다. 학교에서 주는 지원금 외 교외 행사를 통해 들어오는 행사비를 관리하는 회계도 단장의 몫이었습니다. 공금을 투명하게 관리하면서도 응원단에게 득이 되도록 이끌어가는 일을 새롭게 배워나갔습니다. 그 외에도 교외 행사를 위해 담당자들과 통화를 하고, 일정을 조율하고, 무대 세팅하시는 분들과 교류하는 것도 단장의 일이었습니다. 이런 경험들은 응원단장이 아니었다면 겪어볼 수 없었을 겁니다.


아들의 공식적인 응원단장 임무는 그해 카포전을 끝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다음 단장에게 모든 것을 이임한 날 홀가분해 보였습니다. 최선을 다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그런 표정으로 말이죠.

일상으로 돌아온 아들은 후배들의 행사에 종종 참여하며 무대 뒤에서 구슬땀을 흘렸습니다. 현 단원들이 제대로 된 무대를 이끌 수 있도록 뒤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왔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대학생 본분으로 돌아와 학점을 챙기고 다음 단계로의 도전을 위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만약 아들이 카이스트 응원단장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학점은 남았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미련 또한 남았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응원단장으로 활동한 그 소중한 경험이 아들의 앞으로의 삶에도 꽤 큰 의미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아들은 분명 ‘카르페 디엠’에는 바카라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테니까요. 단장으로서의 몫을 다하는 바카라임 외에도 자신의 선택에 대한 바카라임도 져야 한다는 것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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