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동창 중 뭔가 우리와 남다르다고 느껴지는 친구가 있었다.
늘 단정한 똑 단발에 공부도 잘했고, 어떤 질문에도 버벅거리지 않고 똑 부러지게 대답하는 친구였다.
일종의 다른 종족과 같은 느낌이었다.
당시 우리는 뉴키즈온더블럭에 빠져 있었고, 조가 좋다 도니가 좋다 그러면서 야자 땡땡이를 치던 때였기 때문이었다.
로맨스 소설을 좋아했고, 수업 시간에 혼자만의 감상에 취해서 소설을 몰래 쓰던 낭만적인 18세 소녀들.
지각했다고 오리걸음으로 운동장을 돌고, 성적이 떨어지면 무자비하게 매를 맞던 암흑의 시절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친구는 공부도 잘했고, 뭐든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절대 인간계가 아닌 것 같은 친구였다.
그런 친구에게 우린 의문이 하나 있었다.
교복을 벗고 어딘가로 외출하는 그 친구를 보면, 단정한 차림에 그 나이엔 상상할 수도 없는 명품 가방을 들고 다녔던 것이다.
우리 동네가 강남도 아니고 부자들이 사는 곳도 아닌데, 그 친구의 차림은 역시나 우리가 범접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어느 날,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넌 어떻게 그 비싼 가방을 들고 다녀?"
친구는 당황하지 않았다.
"용돈 모아 사지. 나를 위해서."
오~~ 매우 신박한 대답이었다. 자신을 위해서 무언가를 한다는 생각을 하다니 역시 넘사벽!!
"근데 네가 들기엔 너무 비싼 거 아니야?"
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 친구의 대답에 우리는 말문이 막혔다.
"난 사치는 해도, 낭비는 안 해!"
난 그 이후로 그녀의 대답을 종종 생각하곤 한다.
사치와 낭비의 차이라...
비싼 물건을 사긴 하지만, 그 물건을 잘 활용하고 허투루 쓰지 않으면 절대 낭비가 아니라는 대답이 정말 참신했고, 그녀를 더욱 멋있게 보이도록 했다.
그 멋진 친구는 지금 뭘 하며 살까.......
나도 그 모호한 경계에 있는 지출을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바카라이다.
여윳돈이 생기면 나도 모르게 마음과 몸이 서점으로 향한다.
신간은 뭐가 나왔는지, 베스트셀러는 무엇인지, 내가 읽고 싶었던 바카라은 있는지.
온라인 서점이 아니라, 동네에 있는 오프라인 서점을 가서 가득 쌓여 있는 바카라을 보며 한두 권씩 바카라을 사 들고 나온다.
어느 날 집의 바카라장을 보면 그렇게 쌓아둔 바카라이 한가득 일 때가 있다.
이번에도 그렇게 되고야 말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읽지 않은 바카라이 엄청 쌓여 있는 것이 아닌가?
근데 나는 그걸 보면 나 자신이 한심하다 생각되기보다,
배가 부르다는 느낌을 받는다.
저절로 미소가 얼굴에 번지고, 내 집이 서점이 된 것처럼 뿌듯하다.
이 바카라을 다 읽으려면 얼추 1년은 걸릴 것 같았다.
향후 1년 동안은 바카라 살 일이 없어야 할 텐데...
그러나 나는 읽은 만큼 채우기 위해
또 서점을 들어가 뭘 살까 고민하며 서성이겠지?
난 뭐든 바카라으로 배우는 습관이 있다.
요리를 못하면 요리바카라을 사고, 옷을 만들고 싶어 지면 패턴바카라을 사고
글을 쓰고 싶으면 소설과 에세이를 사고.....
뭔가를 배우고 싶다는 것은 허기짐과 같았다.
내가 비어 버린 것 같은 두려움이 밀려들었고, 나는 허기짐을 채우려고 다시 서점에 갔다.
그리고 당장 읽지 않을 바카라을 보며 마치 금방이라도 지식이 늘어날 것처럼 배가 불렀다.
그렇게 쌓여 버린 바카라들.
한 권씩 꺼내 읽으며, 곶감 빼먹는 기분이 되기도 했고
도장 깨기 하는 기분이 되기도 했다.
배움에 대한 허기짐은 내 공허함의 한 증상이었다.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을 것 같은 공허한 나를 유일하게 채워주던
젊은 날 나의 습관이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도 멈출 수 없는 루틴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나의 이런 행동은 사치일까? 낭비일까?
비싼 바카라을 사더라도 결국 언젠가는 다 읽으니 사치도, 낭비도 아니지 않을까?
같은 바카라이라도 양장본을 사는 습관이 사치인 걸까?
보관을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 아니지 않을까?
읽고 싶으면 도서관에 가면 되는 데, 반드시 사고야 직성이 풀리니 낭비일까?
바카라을 갖고 싶은 내 마음이
단어를 외우면 사전을 씹어 삼킨다는 누군가의 행동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기도 한데, 결국 허세인 걸까?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쌓여 있는 바카라을 보면 배가 부르다.
마음이 부르다.
절로 미소가 흐른다.
아무도 채우지 못한 공허함이 채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