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게임 생활을 할 당시, 중국 출장이 잦기도 했고 긴 시간 중국에 파견근무를 나갔던 적도 있었다.
그렇게 해외 생활을 하다 한국으로 돌아올 때면 공항에서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엄마, 나 도착했어."
엄마는 둘째 딸이 연애도 안 하고 늘 그렇게 일만 하는 것이 안쓰럽다 하시다가도,
중국에서 들어올 때 마오타이주 한 병 사 오면 그렇게도 좋아하셨다.
그날은 동네 아줌마들과 중국음식 파티를 벌이시곤 했다.
인천 공항에 내리면 한국의 냄새가 있다.
상해 공항에 도착하면 중국 냄새가 반기는 것처럼 인천 공항도 그런 냄새가 있기 마련이었다.
엄마는 딸의 도착 소식에 마음이 분주했을 것이다.
"저녁 뭐 해 놓을까?"
엄마의 한결같은 소리였다.
그리고 나는 또 한결같이 "김치찌개, 돼지고기 들어간 김치찌개."
엄마는 전화를 끊고 바로 정육점을 갔을 것이 훤히 보이곤 했다.
그랬던 엄마가 둘째 딸의 늦은 결혼을 겨우 보고, 임신 소식만 듣고 돌아가셨다.
유방암이 재발한 때문이었다.
내 뱃속의 아이는 7개월이었다. 엄마는 끝내 손주를 안아 보지 못하고 힘겨운 생을 그렇게 마쳤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나는 늘 엄마가 필요하다.
아마도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우리는 모두 엄마가 필요하니까.
힘들 때, 괴로울 때, 아플 때마다 자꾸 엄마가 보고 싶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이 있다.
난 엄마가 끓여 주는 걸쭉하고 감칠맛 나는 돼지고기 김치찌개가 그렇게 좋았는데,
그래서 나는 그것이 나의 소울푸드인 줄 알았는데,
엄마가 보고 싶으면 생각나는 음식은 따로 있었다.
"배추 된장국"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왜, 배추 된장국이지?
한동안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냥, 엄마가 보고 싶으면 생각나는 배추 된장국을 한 냄비 끓여 놓고
마음이 나아지길 기다리면서 먹고, 상처가 아물길 바라며 먹었다.
그렇게 끓여서 먹는 나의 속내를 남편은 끝내 알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이유를 알게 됐다.
엄마는 내게 설거지도 시키지 않고, 요리도 가르치지 않았다.
일만 하기도 바쁜 내가 안쓰럽기도 했지만, 결혼하면 죽을 때까지 할 일인데 굳이 미리 하지 말라는 것이 이유였다. 김치도 그냥 사 먹어라,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외식하면 되지. 그러셨다.
그랬는데, 유일하게 한 가지.
배추 된장국을 끓이면서 내게 어떻게 끓이는지 알려주셨던 것이다.
"배추 된장국은 찬바람이 불면 끓여 먹어. 그럼 맛있지."
구수한 된장국 냄새가 내 주변을 맴돌면 이내 배가 고파졌다.
"알배기로 해도 괜찮아. 속에 있는 노란 부분은 생으로 먹어. 그럼 달고 맛있어. 큰 건 잘게 썰지 말고 숭덩숭덩 손으로 잘라 넣어도 되고. 된장만 넣어도 맛있어. 집된장이나 재래된장 넣고, 국물은 조금 짭짤해야 배추 넣었을 때 간이 맞아. 마늘은 안 넣어도 되고, 파 듬뿍 넣으면 끝나지"
이것은 주문 같았다.
배추된장국을 끓일 때면 어김없이 어디선가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멸치국물로 해도 되고, 요리사처럼 애쓰지 말고 잘 안되면 다시다 있지? 그거 살짝 넣어도 돼."
엄마는 뭐든 쉬웠다.
깐깐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유독 배추 된장국을 끓일 때면 국물부터 정성을 가득 들이게 되었다.
그래야 엄마랑 대화를 오래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무런 반찬이 필요 없었다.
잘 익은 배추 된장국에 흰밥을 넣어 말아먹으면, 나는 그렇게 속이 꽉 찬 것처럼 단단해졌다.
배추 된장국 한 그릇.
마치, 약인 것도 같았다.
마음이 쓰리고 아플 때면 끓이고, 삶에 지치면 또 끓이고.
잔뜩 끓여서 아침이고 점심이고 저녁이고 밥을 말아서 한 그릇 푸지게 먹었다.
그러면 또 나는 다시 일어서서 반복되는 일상에 맞서 당당하게 걸어갈 수 있었다.
나이 오십을 넘기고도 나는 여전히 엄마가 보고 싶다.
그리고 볼 수 없는 그리움을 담아 배추 된장국을 정성스레 끓인다.
엄마 목소리가 폴폴 끓는 배추 된장국과 함께 들려온다.
"맛있지?"
대답이 뭐 필요 있으랴, 밥 두 공기 각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