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취업을 했다. 졸업하고 석 달을 같이 지내다가 없으니 허전하고 뒤숭숭하다. 그렇다고 빈 둥지 같지는 않다. 단지 막연해서 재촉하거나 불편한 기색을 보인적 있었을까. 챙겨야 할 것들을 빠뜨리지나 않았는지 돌아보는 중이다. 명절 전에 연락을 받고 일사불란하게 방을 구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필름처럼 지나간다.
어떤 옷이 어울리는지 취향과 실제가 꼭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의외의 것들에 눈을 떠가는 것도 보기 좋았다. 그 속에서 절충이 답일 때도 있고 낯설고 엉뚱한 데서 답을 찾기도 하면서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도 알아가길 바랐다. 내 생각과 다르다고 어리둥절하지 말고 나쁘지 않다면 해보기를 바랐다.
부모 마음으로 이것저것 추가할라치면 지내보면서 하자고 되려 말리는 품이 제법 어른 같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이사이 당부의 말이 늘어났다. 일에서 오는 고충을 감정으로 끌고 가면 안 된다고도 했던 것 같다. 지난주 방은 괜찮은지 둘러볼 겸 정리해 주고 돌아올 때도 사람들 속에 잘 섞이길 노파심이 줄지를 않았다.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너의 나중을 지금부터 준비하는 것이니 촘촘히 배우라고만 했다. 첫날은 일도 사람도 생소해서 얼굴이 온통 발갛게 달아올라 있더니 이튿날부터는 제 자리를 찾은 듯했다. 디자인 쪽 일이 그렇긴 하지만 출근한 지 5일째인데 야근이라고 했다. 지친 기색보다는 아직은 모든 게 신기하기만 한 신입이었다.
새벽 한 시 반쯤 집에 도착이라고 문자가 떴다. 그래도 오늘 하루는 재택근무라고 위안을 삼고 있었다. 그제야 잠을 청했다. 아이 보내놓고 한가할 줄 알았는데 더 바빠졌다. 누워있으면 앉아 있어야 될 것 같고 앉아 있으면 서 있어야 될 것 같아서 뭘 하든 종종걸음 친다. 아이의 수고에 발맞춰야 될 것만 같아서다.
보이든 보이지 않든 부지런을 떤다. 일과가 끝나고 서로의 하루를 털어놓을 때 부끄럽지 않고 싶다. 이쯤 되면 어떤 자기 개발서에 비할 게 없다. 아이의 힘을 빌어 작심삼일이 되지 않게 무르익어 갈 일이다. 새벽 별이 유난히 총총하다. 아이도 그처럼 자기 자리에서 꿋꿋이 빛나길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