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기차

<칠드런스 트레인>을 보고

by푸른 꽃

처음에는 무정한 엄마라고 생각했다. 어린 아들에게 다정한 말 한마디 건네는 법이 없었으니까. 지긋지긋한 가난 속에서 아들은 때로 ‘신이 내린 형벌’처럼 느껴지는 존재였다.


영화 〈칠드런스 트레인〉 속 안토니에타가 못마땅했다. 나도 엄마이면서 말이다.


영화의 배경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6년 이탈리아다. 당시 가난에 시달리던 남부의 아이들을 북부 가정으로 보내 돌보게 하는 ‘행복열차’가 있었다. 아메리고 역시 그 기차에 오른다.

기차가 떠날 때 안토니에타는 두 팔로 자신의 몸을 감싸듯 팔짱을 낀 채 승강장에 서 있다. 소리 내어 울지도, 아이를 향해 달려가지도 않는다. 멀어지는 기차를 그저 눈으로만 좇는다.


아이들에게는 행복기차였지만, 보내는 엄마에게도 그랬을까.


아메리고는 데르나와 함께 지내게 된다. 그녀는 아이를 돌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아메리고는 데르나의 친척들과 식탁에 둘러앉아 넉넉한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음악을 듣는다. 밤에 깨끗한 침대를 낯설어하던 아이의 눈빛이 아직도 선하다.


그는 처음으로 바이올린을 손으로 만져본다. 데르나의 오빠에게 연주를 배우며 바이올린을 좋아하게 되고, 그것은 차츰 꿈이 된다.

어느 날 밤, 상처를 받고 돌아와 울음을 터뜨리는 데르나를 아메리고가 가만히 지켜본다. 그러다 곁으로 다가가 그녀를 위로한다.


아메리고는 북부에서 지낸 뒤 나폴리로 돌아온다. 데르나가 보내온 편지와 음식도 안토니에타는 아들에게 전하지 않는다. 바이올린까지 전당포에 맡긴다. 아메리고에게 엄마는 자신의 꿈을 막는 사람으로 보인다. 그는 다시 북부로 떠난다.


마에스트로가 된 아메리고는 안토니에타의 부고를 듣고 나폴리로 돌아온다. 나폴리의 낡은 집에는 어린 시절의 바이올린이 남아 있었다. 안토니에타가 전당포에서 다시 찾아 간직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 바이올린이 왜 그곳에 남아 있었는지 알게 된 순간, 무정하다고 생각했던 안토니에타가 조금 다르게 보였다.


안토니에타는 아들을 낳았지만 결국 놓아주었고, 데르나는 낳지 않았지만 아메리고를 받아주었다.


아이가 어릴 때는 무언가를 해주는 것이 엄마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넘어지면 일으켜주고 문제가 생기면 방법을 찾아주는 것. 아이가 커서도 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이가 힘든 일을 이야기할 때 나는 해결바카라부터 말하곤 했다.


“그럴 때는 이렇게 생각해야 해.”


어느 날 아이가 울면서 말했다.


“엄마는 들어주다가 힘들었구나 하고 공감만 해주면 돼.”


행복기차는 수많은 아이들을 태우고 북쪽으로 향했다.


기차는 떠났고, 엄마들은 그곳에 남았다.


나는 여전히 언제 받아주고 언제 놓아주어야 하는지 잘 모른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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