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 예감
휴게소 문을 힘차게 밀치며 한 여성이 들어선다.
그녀의 어깨와 팔, 허벅지에는 오랜 운동으로 만들어진 잔근육이 선명하게 잡혀 있었다.
클라이밍과 수영을 오래 했고, 우주 생활을 시작한 뒤에도 근력 운동을 빼먹지 않았다.
어깨 위로 찰랑거리는 흑색의 단발머리가 싱그럽다.
태성이 반갑게 인사했다.
“어이, 서지우~”
테성이 내미는 손에 가볍게 하이파이브를 하고는 한이준에게 눈길을 돌린다.
“또 커피 마셔?”
“세 번째.”
“새벽부터?”
“새벽이니까.”
“심박수 올라간다고 하지 않았어?”
“이게 환경학자라서 사람 심장까지 관리하려고 하네.”
“죽으면 환경에 부담되니까.”
한이준이 웃었다.
“긴장돼?”
“뭐가?”
“시추.”
“아니.”
“거짓말.”
“왜?”
“넌 긴장하면 커피를 더 마시잖아.”
한이준이 컵을 내려놓고 지우를 바라봤다.
서지우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너 시험 전날에도 커피 네 잔씩 마셨잖아.”
“아니 너 그걸 기억해?”
“당연히 기억하지.”
“왜?”
“네가 고함량 카페인에 취해서 밤새 시끄럽게 떠들었으니까.”
“내가?”
“응.”
“무슨 말을 했어?”
“화성에 가겠다고 했지.”
한이준의 표정이 언뜻 굳은 듯 보였다.
서지우는 그를 살짝 바라보다가 피식하고 웃었다.
“어...진짜 기억 안 나?”
“……글쎄.”
“그때 네가 뭐라고 했냐면...”
“뭐라고 했는데?”
“화성에 가면 제일 먼저 땅부터 파겠다고 했어.”
“내가?”
“응.”
“그때부터 고고학자였네.”
태성이 거들었다.
“그때는 그냥 대학생이었지.”
서지우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결국 이렇게 해냈네.”
지우가 말했다.
한이준도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그러게.”
잠시 둘 사이에 말이 없었다.
휴게실 안쪽에서는 다른 대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동 커피머신이 다시 작동했고, 작은 모터가 낮게 웅웅거렸다.
정거장 내부에는 인공중력이 작동하고 있었다.
원통형으로 회전하는 생활 구역의 원심력이 사람의 몸을 바닥 쪽으로 끌어당겼다.
우주정거장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둥둥 떠다니는 것은 아니었다.
지구와 완전히 같은 중력은 아니었지만, 이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지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동작으로 걸어 다닐 수 있었다.
그래서 이곳의 아침은 지구의 아침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적어도, 창밖에 지구가 떠 있다는 것만 빼면.
서지우가 다시 단말기를 들었다.
한이준이 물었다.
“오늘 일정은?”
“아르테미스 계곡 북쪽 구역.”
“시추?”
“시추.”
“목표 깊이는?”
“12.8킬로.”
“이번에도 아무것도 없으면?”
“그럼 다음에 또 내려가겠지.”
“지루하네.”
“그래서 네가 고고학자잖아.”
“오늘도 유적 찾으러 가?”
“유적이 있을 거라는 증거는 아직 없어.”
“그런데 왜 가?”
“없다는 증거도 없으니까.”
“고고학자들은 참 편하네.”
“환경학자들은?”
“있는 걸 망치지 않는 게 일이지.”
그 말은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한이준도 웃음을 거뒀다.
화성은 인간이 만든 거대한 실험장이었다.
대기를 바꾸고 있었다.
물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토양을 개량하고 있었다.
수십억 년 동안 변하지 않았던 행성의 표면을 인간의 필요에 맞춰 조금씩 뜯어고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무엇을 건드리고 있는지, 아직 아무도 완전히 알지 못했다.
서지우는 단말기의 시추 데이터를 다시 확인했다.
“근데..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
“뭔데?”
"지하 온도.”
“높아?”
“아니.”
그녀가 화면을 한이준 쪽으로 돌렸다.
“너무 일정해.”
한이준의 눈이 데이터 위에 멈췄다.
“일정하다고?”
“10킬로미터 까지 내려가는 동안 예상되는 지열 변화가 거의 없어.”
“센서 오류 아닐까?”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그런데?”
서지우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세 번 확인했어.”
한이준이 화면을 확대했다.
수치들이 이어졌다.
작은 변화조차 거의 없었다.
마치 누군가 지하 깊은 곳에서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하지만 그건 말이 되지 않았다.
한이준이 고개를 들었다.
“본부에는 보고했어?”
“아직.”
“왜?”
“확신이 없으니까.”
서지우가 단말기를 거뒀다.
“그래서 오늘 직접 내려가 보려고.”
한이준은 다시 창밖을 바라봤다.
서지우가 단말기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런데 너 혼자 가는 건 아니잖아.”
“누가 같이 가는데?”
“아직도 몰라?”
한이준이 고개를 저었다.
“난 명단만 봤어.”
“명단만 보고 사람은 안 봤네.”
서지우가 피식 웃었다.
그때 휴게실 입구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사람을 봤으면 나부터 제외했겠네.”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검은색 작업복을 입은 남자가 문에 기대 서 있었다.
키는 180센티미터를 조금 넘었고, 넓은 어깨에 짧게 깎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
한 손에는 태블릿이 들려 있었고 다른 손에는 반쯤 먹다 남은 단백질 바가 들려 있었다.
강도윤이었다.
화성 지질공학팀 소속.
12년 동안 화성 지하 시추와 지질 분석을 담당해온 공학자였다.
서지우가 말했다.
“네 얘기한거야.”
“내 이야기 뭘 했는데?”
“아직 아무것도.”
“뭐야.. 그게 무슨 말이 그래”
다들 테이블을 보며 웃었다.
강도윤이 한이준 옆에 앉았다.
“이준아.”
“왜.”
“네가 이번 탐사팀 시추 설계에 들어간다는 거 진짜야?”
“응.”
강도윤이 단백질 바를 한입 베어 물었다.
“난 사실 지질층만 보면 되는데.”
“그래.”
“넌 땅속에 뭐가 있는지 찾고.”
“그렇지.”
“나는 아무것도 안 나왔으면 좋겠어.”
한이준이 그를 바라봤다.
“왜?”
“일이 줄어드니까.”
서지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강도윤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단백질 바의 포장을 접었다.
“근데 고고학자는 뭔가 나오길 바라잖아.”
“당연하지.”
“나는 반대야.”
“왜?”
“뭔가 나오면 분석해야 하잖아.”
“그게 네 직업인데.”
“그래서 싫은 거야.”
네 사람이 웃었다.
그때 복도 쪽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 여기 다들 계셨네요.”
이번에는 여성이었다.
짧게 자른 검은 머리와 둥근 안경.
그녀는 양손으로 커다란 금속 용기를 들고 있었다.
용기 안에서는 희미한 증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오민수였다.
정거장 시스템 엔지니어이자 이번 화성 탐사선의 추진 및 전력 시스템 담당이었다.
강도윤이 용기를 보며 물었다.
“그건 뭐야?”
“감자요.”
“아침부터?”
“아니. 달라요. 이건 화성용.”
한이준이 눈을 크게 떴다.
“뭐야, 화성용 감자가 따로 있다고?”
“아뇨.”
“엥? 그럼 왜 화성용인데?”
“화성에 가져가니까?”
강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논리적이네.”
서지우가 웃으며 용기 안을 들여다봤다.
“뭘 또 실험하는 거야?”
“이번에는 정말 달라요.”
“뭐가?”
“이번에는 진짜 먹을 수 있어요.”
“지난번에는?”
“먹을 수는 있었죠.”
“그게 무슨 뜻인데?”
오민수가 잠시 생각했다.
“먹고 싶지는 않았다는 뜻이죠.”
한이준이 웃었다.
“지난번 감자 어디서 재배했는데?”
“거주구역 4번 온실.”
“거기서 재배한거 다 맛이 없다고 하지 않았어?”
“그래서 이번에는 비료 조성을 바꿨어요.”
서지우가 말했다.
“비료가 문제가 아니었을 텐데.”
“왜?”
“네가 물을 너무 많이 줬잖아.”
오민수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물을 많이 주면 잘 자라는 거 아니야?”
“지구에서도 그런 식으로 키우진 않아요.”
“그러니까 화성에서 하는 거지.”
강도윤이 웃으며 말했다.
“화성 와서 감자도 못 키우면 우리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냐?”
오민수가 금속 용기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먹어볼 사람?”
세 사람 모두 조용해졌다.
“왜 아무도 손을 안 들어요?”
한이준이 대답했다.
“지난번을 기억하니까.”
“지난번 언제요?”
“두 달 전.”
“두 달 전이면 잊을 때도 됐잖아요.”
서지우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아직 기억해.”
“너는 환경학자잖아.”
“그래서 더 기억해.”
오민수가 한숨을 쉬었다.
“에효, 과학자들이란.”
둘의 대화를 바라보던 한이준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서지우도 고개를 숙인 채 웃었다.
오민수만 억울한 얼굴이었다.
“다들 왜 그래요. 이번에는 진짜 괜찮다니까요.”
태성이 한이준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서 오늘 몇 시 출격이냐?”
“브리핑 끝나고 바로 준비.”
“시간 얼마 안 남았네.”
“응.”
화성은 달라지고 있었다.
아직 붉은 대지가 대부분이었지만, 곳곳에는 인간이 만든 흔적이 남아 있었다.
거대한 돔이 지표면에 박혀 있었고, 그 주변으로 대기 처리 시설이 길게 이어졌다.
먼 곳에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구름이 희미하게 떠 있었다.
화성의 대기는 조금씩 두꺼워지고 있었다.
아직 인간이 숨을 쉴 수는 없었다.
하지만 처음 왔을 때보다 분명히 달라져 있었다.
태성이 말했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살 만해졌지.”
서지우가 조용히 대답했다.
“살 만한 것과 살 수 있는 건 달라.”
태성이 그녀를 바라봤다.
“또 환경학자 모드야?”
“아니.”
서지우가 창밖을 보았다.
“그냥 사실을 말한 거야.”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때 휴게실 벽면의 시계가 시간을 표시했다.
06:52
곧 출격 준비를 시작해야 했다.
한이준은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가자.”
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