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 기억을 걷는 시간
“아, 근데 진짜 궁금한 게 있는데.”
태성이 물었다.
“뭐."
"왜 하필 화성이냐?"
"인류가 살기 가장 적합한 후보니까."
"달도 있잖아?"
"너무 작아."
"금성은?"
"가서 얼어 죽어."
"하..좋네. 후보가 셋인데 둘이 탈락했네."
"화성도 아직 합격한 건 아니야."
"그럼 우리는 불합격 예정인 학교에 돈을 퍼붓고 있는 거네.“
박태성이 한이준 옆으로 와서 멀리 보이는 붉은 점을 바라본다.
"처음 봤을 때랑 많이 다르지?"
"뭐가?"
"화성말야."
"벌써 12년이나 지났잖아. 강산도 10년이면 변하잖냐.."
"그래도 행성이잖아. 12년 만에 뭔가 다 바뀌는 건 좀 이상하지 않냐?"
창밖의 화성은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처음 이곳에 왔던 12년 전의 화성은 지금보다 훨씬 작고 선명했다.
붉은 표면 위로 검은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었고,
극지방의 얼음은 지금보다 넓었다.
대기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지금은 달랐다.
화성의 가장자리를 따라 희미한 푸른빛이 번지고 있었다.
아직 지구의 하늘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너무 얇고, 너무 희미했다. 하지만 분명히 존재했다.
사람이 만든 대기였다.
“12년 전에는 저게 안 보였어.”
강태성이 말했다.
“뭐가?”
“대기말야.”
한이준이 창밖을 바라봤다.
“그때도 있었어.”
“있긴 했지. 있었는데 안 보였잖아.”
“지금도 제대로 보이는 건 아니야.”
“그래도 색이 있잖아.”
박태성은 유리창에 얼굴을 조금 가까이 가져갔다.
“저거 처음 만든 사람들은 진짜 대단했겠다.”
“미친 사람들이었지.”
“그게 그거 아니냐?”
“아니.”
한이준이 웃었다.
“대단한 사람과 미친 사람은 결과가 다르잖아.”
“그래서 우리는 어느 쪽인데?”
“아직 모르지.”
박태성이 피식 웃었다.
“역시 고고학자는 대답을 안 해.”
“고고학자는 과거를 다루는 사람이야. 미래는 네가 알아서 해.”
“난 엔지니어인데.”
“그러니까.”
박태성이 다시 화성을 바라봤다.
아직 모든 것이 붉었지만
화성의 북반구 위로 얇지만 흰 구름이 지나갔다.
구름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엷은 띠였다.
분명 12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풍경이었다.
“12년.”
박태성이 중얼거렸다.
“벌써 그렇게 됐네.”
“뭐가?”
“화성.”
“너는 12년을 다 여기서 보낸 것처럼 말하네.”
한이준이 그제야 그를 바라봤다.
“3년은 지구에서 준비했어.”
“맞아.”
“그 뒤로 9년 동안 왔다 갔다 했고.”
“지구, 정거장, 화성.”
“그리고 다시 지구.”
태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네가 화성에 몇 번이나 왔더라?”
“정확히 세면 7번.”
“7번?”
“장기 체류까지 포함하면.”
“그런데도 아직 질리지 않아?”
한이준은 창밖을 바라봤다.
붉은 행성이 천천히 시야를 가로질렀다.
“질릴 만큼 오래 본 적은 없는 것 같아.”
"들어가지도 못한 적도 많으니까.."
태성이 피식 웃었다.
“12년짜리 프로젝트인데?”
“프로젝트가 12년인 거지.”
한이준이 말했다.
“내가 화성에서 산 시간이 12년인 건 아니잖아.”
태성이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한이준은 다시 화성을 바라봤다.
처음 테라포밍 프로젝트가 시작됐을 때 사람들은 화성의 하늘을 바꾸는 데
수백 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어떤 연구자는 천 년을 이야기했다.
어떤 사람들은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인류는 기다리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
특히 지구가 더 이상 기다려주지 않을 때는 더욱 그랬다.
12년 전, 인류가 처음으로 테라포밍 계획을 공식 승인했을 때만 해도
화성은 지금과 달랐다.
얇은 대기.
얼어붙은 물.
붉은 먼지.
그리고 인간이 살아가기에는 지나치게 혹독한 환경.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지구와 화성을 오갔다.
우주정거장은 그 사이를 연결하는 중간 기지가 되었고, 화성에는 거주구역과 대기 처리 시설,
수자원 채굴 시설이 하나씩 늘어났다.
행성은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아주 조금씩.
그러나 한이준은 알고 있었다.
행성의 시간에서 12년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한이준이 따라 말했다.
“이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우리 몇 살이었지?”
“너 스물다섯.”
“너는?”
“스물여섯.”
“그때는 화성이 이렇게 될 줄 알았나?”
“전혀.”
박태성이 웃었다.
“그때는 우리가 여기서 커피 마시고 있을 줄도 몰랐지.”
한이준은 대답 대신 손에 들고 있던 컵을 들어 올렸다.
커피는 이미 절반쯤 식어 있었다.
“저거 보면 아직도 사람이 살 곳은 아닌데.”
“맞아.”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잖아.”
“사람이 살 수 있게 만들고 있으니까.”
한이준이 휴대용 단말기의 화면을 넘겼다.
화성의 옛 지형도가 나타났다.
현재의 지도와 겹쳐지면서 붉은 표면 위로 거대한 푸른 영역들이 희미하게 나타났다.
박태성이 잠시 화면을 바라봤다.
“저건 뭐야?”
“과거 추정 수계.”
“물이 있었다는 거야?”
“아주 오래전에.”
“얼마나?”
“수십억 년 전.”
박태성이 잠깐 침묵했다.
“그럼 화성도 예전에는 지구 같았던 거야?”
한이준이 그를 바라봤다.
“지구 같았다는 표현은 좀 과장이고.”
“그래도 물은 있었다며.”
“있었지.”
“그럼 됐네.”
박태성이 어깨를 으쓱했다.
“물이 있으면 사람들은 결국 뭔가를 만들잖아.”
한이준이 피식 웃었다.
“그 논리면 지구에 물이 많아서 문제가 생긴 거네.”
“물이 아니라 사람 때문에.”
이번에는 한이준이 웃었다.
그러나 화면 속 화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붉은 행성 위로 푸른 선들이 천천히 펼쳐지고 있었다.
강이었을 것이다.
호수였을 것이다.
어쩌면 바다였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화성에서는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테라포밍 이전의 화성은 너무 오랫동안 죽은 행성으로 취급되어 왔다.
인류는 그곳에서 물을 찾았고, 얼음을 녹였고, 대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화성의 과거보다 화성의 미래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았다.
왜 화성이 필요한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단순했다.
지구가 인간들에게 더 이상 살기에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이준은 단말기의 화면을 끄고 다시 창밖을 바라봤다.
박태성은 말없이 옆에 서 있었다.
창밖에서 푸른 지구가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아까까지 보이던 화성과는 전혀 다른 색이었다.
박태성의 표정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정거장 벽면의 시계가 조용히 숫자를 바꾸었다.
6:41.
창밖의 지구는 아주 천천히,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조금씩 작아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