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먹었어요

손님 이야기

by박성욱

잘 먹었어요

날씨가 좋았던 어느 날이었다.


몇 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많이 편찮아 보이시는 할머님과 밝은 표정의 남자분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나중에야 두 분이 할머니와 손주라는 걸 알았다.


그 뒤로 일주일에 한두 번씩 두 분을 뵈었다. 손주는 늘 돈가스를, 할머님은 닭곰탕을 주문하셨다.


손주는 음식을 잘 드셨다. 할머님은 한 숟갈을 뜨고 나면 좀처럼 다음 숟갈을 들지 못하셨다. 음식은 대부분 남았고, 포장해 가시는 날도 있었다.


처음에는 내 음식이 마음에 걸렸다. 간이 셌나. 국물이 입에 맞지 않으셨나. 그릇을 치우면서 자꾸 이유를 찾았다.


계산할 때면 손주는 꼭 말씀하셨다.


“할머니가 몸이 많이 안 좋으셔서 잘 못 넘기세요. 맛이 없어서 남기는 건 아니에요.”


음식을 남겨 미안하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오실 때마다 그랬다.


나는 괜찮다고 손을 내저었다. 손주는 밥 한 끼를 먹는 동안에도 마음 쓸 곳이 참 많아 보였다. 제 밥을 먹다가 할머님의 숟가락을 살피고, 돌아갈 때는 식당 주인의 마음까지 살폈다.


한 번은 메뉴에 없는 죽을 끓여드렸다. 부드러운 음식이면 조금 더 드실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죽을 내어놓고는 자꾸 그쪽을 보게 됐다. 한 숟갈이라도 더 드셨으면 했다. 그러다 내 눈길까지 식사를 재촉하는 것처럼 느껴지실까 봐, 일부러 다른 일을 했다.


음식을 만들어드릴 수는 있었지만, 잘 드시게 하는 일까지 내 마음대로 되지는 않았다.


그렇게 여러 번 뵙는 동안 할머님이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가신 적은 없었다.


장마가 끝날 무렵이었다.


두 분이 다시 가게에 들어오셨다. 손주는 여느 때처럼 돈가스를 주문했고, 할머님은 칼국수를 고르셨다. 늘 곰탕을 드시던 분이라 그 주문이 기억에 남았다.


그날은 두 분 다 말씀이 적었다.


평소에는 손주가 한 숟갈이라도 더 드시라며 권하고, 할머님과 작은 실랑이를 벌이곤 했다. 그날은 수저가 그릇에 닿는 소리만 간간이 들렸다.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실 때, 할머님이 먼저 말씀하셨다.


“잘 먹었어요. 칼국수 맛있네.”


오늘은 좀 드셨나 보다.

그 정도로 생각했다.


두 분이 웃으며 나가신 뒤, 누나와 나는 평소처럼 그릇을 확인했다.


할머님의 그릇이 깨끗이 비어 있었다.


처음이었다.


나는 그릇을 들고 누나를 보았다. 누나도 같은 것을 보고 있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었다.


“오늘 칼국수 맛있었나?”


내가 끓인 칼국수가 오늘은 할머님께 잘 맞았나 싶어 조금 으쓱했다. 그릇을 내려놓았다가, 괜히 한 번 더 들여다봤다.


다 드셨네.

할머님이 이걸 다 드셨네.


그 사실이 자꾸 새롭게 좋았다.


생각해 보니 그날은 계산대 앞에서 손주의 설명이 길어지지 않았다. 몸이 안 좋아서 그렇다는 말도, 맛이 없어서 남긴 게 아니라는 말도 필요 없었다.


두 분은 그저 잘 먹었다고 말씀하시고, 웃으며 돌아가셨다.


그릇을 치우는데 문득 할머님의 저녁이 궁금해졌다. 오늘 저녁에도 이렇게 드실 수 있으려나. 손주도 할머님의 숟가락을 덜 살피고 제 밥을 편히 먹을 수 있으려나.


오늘 저녁에도 잘 드셨으면.

내일 아침에도, 그다음 끼니에도.


밥상을 물리실 때마다 할머님이 하실 수 있는 말이, 오늘처럼 ‘잘 먹었다’였으면.


그날 나는 빈 그릇 하나를 들고, 아직 차려지지 않은 밥상들을 오래 생각했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