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이야기
“오늘은 뿔뚝이 아저씨 안 오시나?”
저녁 다섯 시쯤이면 누나와 내가 주고받던 말이다.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분을, 우리는 매일 그 시간에 기다렸다.
가게를 열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다.
덕산식당에는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많이 오셨다. 돌아보면 가게의 첫 몇 달을 받쳐준 건 그분들의 한 끼 한 끼였다. 오늘 먹고 가신 분이 내일도 와주시는 일. 문을 연 지 얼마 안 된 가게에는 그보다 든든한 일이 드물었다.
그중에 저녁 다섯 시쯤 꼭 찾아오시는 세 분이 있었다. 서로 중국말로 대화를 나누시기에 누나와 나는 세 분 모두 중국 분인 줄 알았다.
처음에는 닭곰탕을, 다음 날에는 칼국수를 드셨다. 술 한잔 곁들이는 날에는 닭도리탕을 시키셨다. 그렇게 메뉴를 하나씩 드셔보시더니, 나중에는 닭도리탕으로 주문이 정해졌다.
그중 팀장처럼 보이는 분이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가실 때면 불뚝 나온 배가 눈에 들어왔다. 누나와 나는 우리끼리 그분을 ‘뿔뚝이 아저씨’라고 불렀다.
당시 우리는 자주 오시는 손님들께 원하시는 음식을 조금 내어드리거나 돈가스를 한 조각씩 서비스로 드리곤 했다. 어느 날 아저씨가 그러셨다.
“사장님, 이렇게 서비스 주시면 뭐가 남아요?”
한국말이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나는 궁금한 걸 그대로 물었다.
“사장님은 어떻게 그렇게 한국말을 잘하세요?”
아저씨는 깜짝 놀라시더니 너털웃음을 터뜨리셨다.
“사장님, 저 한국 사람이에요.”
누나와 나도 깜짝 놀라 웃었다.
“그런데 중국말을 엄청 잘하시네요.”
“조금 하는 거죠.”
그렇게 한바탕 웃고 나니, 다음부터는 말을 건네기가 한결 편해졌다.
아저씨는 그 뒤로도 거의 매일 저녁에 오셔서 닭도리탕을 드셨다. 음식 이야기로 시작한 대화가 조금씩 사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누나와도, 나와도 가까워졌다.
어느새 다섯 시가 되면 아저씨가 오시나 기다리게 됐다.
“오늘은 뿔뚝이 아저씨 안 오시나?”
밥을 드시지 않아도 좋았다. 그냥 들러서 커피 한잔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매일 저녁 밥을 먹으러 오시던 분이, 매일 저녁 얼굴을 보고 싶은 분이 되어 있었다.
하루는 누나와 아저씨가 이야기를 나누다가 대전 얘기가 나왔다. 아저씨 댁이 대전이라고 하셨다. 자연스럽게 성심당 빵 이야기가 이어졌다.
아저씨는 집에 다녀오게 되면 빵을 사다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이곳을 떠나기 전에는 꼭 사다 주시겠다고.
그렇게 몇 주쯤 지났을까.
아저씨가 성심당 빵 상자를 몇 개나 들고 가게로 들어오셨다. 두 손에 빵을 가득 들고 웃고 계셨다.
“아이고, 이런 걸 뭘 사오셨어요.”
아저씨가 빵을 건네며 말씀하셨다.
“저는 실없는 소리 하는 거 싫어해요.”
그 한마디를 하시고는 그날도 닭도리탕을 드셨다.
지금 생각하면, 빵을 사다 주겠다는 약속에는 처음부터 ‘떠나기 전’이라는 말이 붙어 있었다.
얼마 뒤 아저씨는 이곳 현장 일이 곧 끝날 것 같다고 하셨다.
“그동안 맛있는 밥 잘 먹었어요.”
그 인사를 남기고 아저씨는 다른 일터로 떠나셨다.
매일 오시는 분이라, 내일도 뵐 줄 알았다. 이곳의 일이 끝나면 떠나셔야 한다는 걸, 우리는 그분과 가까워지는 동안 자꾸 잊었던 것 같다.
아저씨의 성함도 나이도 여전히 모른다. 누나와 ‘뿔뚝이 아저씨’ 이야기를 할 때면 빵 상자를 들고 웃으시던 얼굴이 떠오른다. 지금은 어느 현장에서 일하실까. 오늘 저녁은 잘 드셨을까.
언젠가 다시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시면, 커피를 세 잔 타고 싶다. 누나 한 잔, 아저씨 한 잔, 나 한 잔.
마주 앉아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듣다가, 예전에 아저씨가 하셨던 질문에도 답을 드리고 싶다.
“사장님, 이렇게 서비스 주시면 뭐가 남아요?”
그날은 웃고 넘겼던 말에, 이제야 대답이 생겼다.
남았어요, 아저씨.
아저씨가 다시 오시면 반가워할 사람이, 이 작은 가게에 둘이나 남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