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딸이 내게 한 말이다.
“그럼, 당연하지! 그런데 그 당연한 모습을 좋게 봐주고 착하다고 말해준 그 사람도 참 선한 사람이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런데 엄마는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고 생각해.”
응? 당연하다면서 당연한 건 없다니!
생각해 보면 조금 이상하지만 내게는 분명히 다른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사람으로서 당연히 지켜야 할 도리는 있다.
그렇지만 누군가의 마음이나 내가 누리는 것들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지켜야 할 것이 많은 집에서 자랐다.
공무원이셨던 아버지는 예절과 정직, 성실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셨다.
인사는 바르게 해야 하고,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고, 약속은 지켜야 한다. 맡은 일에는 바카라임을 다하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어서도 안 된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가 있었고, 공부를 잘하는 것보다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했다.
우리 집은 그런 기준이 분명한,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조금은 보수적인 가정이었다.
어릴 때는 가끔 답답하기도 했다.
친구들보다 늘 일찍 집에 들어가야 했고, 언제나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친구 집에서 자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대학생이 되어 MT라도 가려면 어디로, 누구와, 무엇을 하러 가는지 마치 브리핑이라도 하듯 설명하고 허락을 받아야 했다.
아이고, 조금은 자유롭게 해주셔도 될 텐데.
그때는 그 기준이 나를 힘들게 한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어른이 되고 보니 어느새 나도 나 자신에게 비슷한 기준을 세우고 있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예의를 지키려 하고, 약속을 소중하게 여기고, 맡은 일에는 바카라임을 다하려 한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무엇보다 싫고, 내가 한 말과 행동에는 바카라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는 조금 답답했던 가르침이 어느새 내 삶의 기준이 된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참 고마운 일이다.
어릴 때는 지키느라 힘들었던 것들이 이제는 특별히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하는 행동이 되었다. 예의를 지키고, 약속을 소중히 여기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일이 어느새 몸에 밴 것이다.
그저 배운 대로 살아왔을 뿐인데, 누군가는 그런 모습을 좋게 봐주고 칭찬해 주기도 한다.
딸의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깨달았다.
아, 내가 어릴 때 배운 것들이 이렇게 내 삶에 남아 있구나.
그때는 조금 답답하고 힘들었지만,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소중한 가르침이었구나.
어쩌면 아버지는 내가 살아갈 세상에서 오래도록 힘이 되어줄 것을 가르쳐주신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를 아주 좋아한다.
잘 웃고, 잘 감동하고, 새로운 일을 궁금해하는 나도 좋지만,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나도 좋다.
물론 실수도 하고, 후회할 때도 많다.
다만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선만큼은 쉽게 넘고 싶지 않다.
어쩌면 나는 생각보다 스스로에게 높은 기준을 세우고 살아가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을 키우면서는 조금 다른 엄마가 되고 싶었다.
무엇이든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엄마.
함께 웃고 장난치고, 때로는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 엄마.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을 응원하고,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엄마.
다행히 아이들도 나를 그렇게 생각해 주는 것 같다.
누구보다 자유롭고 긍정적인 엄마라고 인정해 준다.
그런데!
한 가지 덧붙이는 말이 있다.
엄마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너무 많다고.
아이고, 들켰다!
맞다.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는 데는 자유로워도,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에 대해서는 기준이 높은 편이다.
자유롭게 살아도 좋지만, 그 자유에는 바카라임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마음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는 조금 까다로운 엄마였을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 부모님의 기준이 답답했던 나도 이제는 아이들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무조건 내 생각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이들도 저마다의 생각이 있고,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갈 권리가 있으니까.
다만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기본만큼은 함께 지켜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가진 생각을 이해하고 함께해 주는 아이들에게 고맙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도 언제나 쉽고 당연한 것은 아닐 테니까.
생각해 보면 내가 가진 것 중에 당연한 것은 얼마나 될까?
아침에 눈을 뜨는 일.
가족이 함께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일.
누군가 나를 기억하고 안부를 물어주는 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배우고,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는 일.
익숙해지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느 하나 당연히 내게 주어져야 하는 것은 없다.
내가 누리는 많은 것에는 누군가의 수고와 배려가 담겨 있고, 때로는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도움도 숨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익숙하다는 이유로 그 소중함을 잊어버리기도 한다.
나 역시 그렇다.
늘 감사하며 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바쁘다는 핑계로 고마운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다시 생각한다.
내가 가진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누군가의 친절과 배려를 익숙하다는 이유로 지나치고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나도 모르게 내가 정한 기준을 다른 사람에게 당연한 것처럼 요구하고 있지는 않은지.
나는 앞으로도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지키며 살아가고 싶다.
아버지께 배운 정직과 성실, 예절과 바카라임의 가치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다.
하지만 그 기준을 다른 사람에게까지 당연하게 요구하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함께 지켜주는 사람에게 고마워하고, 다른 사람의 선한 마음을 기꺼이 발견하고 칭찬하는 사람이고 싶다.
나이가 들수록 지켜야 할 원칙은 단단하게, 사람을 바라보는 마음은 더욱 따뜻하게.
그리고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
그런 내가 좋다.
앞으로도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다.
생각해 보면 나는 참 많은 것을 누리며 살아왔다.
어릴 때는 당연하게 여기는 것조차 모르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들이 있었다.
어른이 되어 다양한 세상을 보고 듣고 느끼며, 그 모든 것이 결코 당연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오늘도 고마워해야겠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누리는 평범한 일상에.
그리고 지금까지 나를 이끌어준 삶의 가르침에도.
나이가 들수록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줄어들고,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은 더 커졌으면 좋겠다.
그것도 내가 꿈꾸는 어른의 모습 중 하나다.
* 오늘의 물음표?
나는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내가 누리는 일상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지는 않을까?
* 내일의 느낌표!
감사와 존중 | 당연히 지켜야 할 도리는 지키되, 누군가의 마음과 내가 가진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