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녀와 선생 (19)

by천비단


우와, 나 이거 알아. 야자 나무 아니야?


맞아. 쩔지?


근데 제주도에 야자 나무가 있어?


변준이는 부모님이 사줬다는 고급 하와이안 셔츠를 자랑했다. 연두색 배경에 야자수와 파인애플이 덕지덕지 그려진 것이었다. 변준이는 “당연하지! 이렇게 큰 야자수가 여기저기 있어!”라고 말하며 팔을 크게 휘둘렀다. 우리는 변준이 앞에 모여 왁자지껄 떠들었다.


제주도로 떠나는 수학여행이었다. 항구에서 본 유람선은 고개를 완전히 꺾어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커다랬다. 선실에 들어가 잠시 대기하니, 우렁찬 소리와 함께 출항했다. 바닥이 넘실거리는 것이 하늘을 나는 것처럼 기분이 묘했다. 남자애들은 기대감이 부푼 채 장난을 치며 놀았다.


순간 시야가 어두워졌다. 전등이 나갔다. 동시에 쿵 하는 충격음과 함께 바닥이 기우뚱했다. 이따금씩 파도 때문에 배가 흔들리긴 했지만, 이건 파도에 흔들리는 수준이 아니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나는 셔츠를 구경하던 무리와 함께 넘어져 구석으로 굴러갔다. 비명과 울음 소리가 선실을 채웠다.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그 누구도 섣불리 행동하지 못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어둠 속에서 공포에 질린 채 울기만 했다.


그때였다. 복도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벌컥 열렸다.


백경철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주황색 구명조끼를 차고 있었다. 지금 배가 침몰하고 있으니 빨리 탈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방 안에 들어와 캐비닛을 열었다. 구명조끼가 한가득이었다. 선생님은 한명씩 구명조끼를 채워주고는 문밖으로 나가 오른쪽으로 쭉 가라고 했다.


나는 구명조끼를 찬 후 복도로 나왔다. 이미 배가 심하게 기울어 바닥과 벽을 구분하는 게 의미 없을 지경이었다. 1층으로 내려가는 복도 구석에서 시꺼먼 물이 차오르는 것이 보였다. 나는 바닥과 벽을 더듬거리며 천천히 출구로 나아갔다.


철렁이는 물소리와 다급한 고함 소리, 사이렌 소리, 전등에서 스파크 튀기는 소리가 나를 위협했다. 다리가 벌벌 떨렸다. 출구로 가는 10미터 남짓한 거리가 악마의 소굴처럼 느껴졌다. 내 뒤에서 검은 물줄기가 나를 삼키려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휴게실 문고리를 붙잡은 채 멈춰서 엉엉 울었다. 주변에 어둠 뿐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 울음 소리는 누구에게도 닿지 않았다.


순간 쾅 소리가 나더니 세상이 흔들렸다. 나는 뒤로 넘어졌다. 그대로 어두운 복도 끝까지 굴러 떨어질 게 뻔했다. 넘실거리는 어둠이 나를 삼키려고 아가리를 크게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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