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녀와 선생 (21)

by천비단


주말 오후였다. 다음주 진도를 확인하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자 껄끔한 니트에 두꺼운 코트를 입은 남성이 서 있었다.


“요, 이강사. 잘 지내셨나?”


“무슨 일이야? 형.”


박형은 한쪽 눈썹을 치켜들더니 실망하듯 말했다.


“1년 만에 만난 것 치곤 재미없는 반응인데.”


“1년 만에 만났는데 여전히 유치하네. 들어와.”


박형은 캐주얼한 운동화를 벗고 집에 들어왔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테이블에 앉았다. 앉자마자 박형은 내게 종이를 건넸다. 박형과 어울리지 않는 파스텔톤 분홍색 종이였다. 종이에서 연연한 향기가 났다.


“…이게 뭐야?”


“뭐겠냐?”


“내가 생각하는 게 아니길 바라는데.”


“청첩장. 나 결혼한다.”


“허.”


어이가 없었다. 방탕하고 천박한 비혼주의자였던 자가 1년 만에 자신의 신념을 배반하고 청첩장을 들고 찾아올 줄은 몰랐다. 나는 그 핑크빛 종이를 집어든 채 박형을 경멸하듯 내려다보았다.


“그 눈깔만 봐도 무슨 생각 하는지 다 보이네. 이 시발 새끼가.”


“협박이라도 당했어? 형 과거가 약점 잡힐 게 많기는 하니깐 그런 거라면 이해해.”


박형은 호탕하게 웃어재꼈다. 그는 내가 농담이라도 던진 줄 안 모양이다.


“협박 당한 거 아니고, 사기 아니고, 위장결혼도 아니고. 진짜 사랑해서 만난 거야.”


박형은 베시시 웃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형 주둥아리에서 ‘진짜 사랑해서’라는 말이 나올 수 있는 거였어? 나랑 술마실 때마다 여자 욕하던 사람이?”


“오늘만 싸가지 없이 씨부리는 걸 용서하지. 내 업보라고 생각할게.”


박형은 인심쓰는 독촉꾼처럼 굴었다. 나는 커피 두 잔을 타서 테이블에 놓았다. 박형은 뜨거운 커피를 돼지국밥 국물을 마시듯 후루룩 마셨다.


“1월에 결혼하는데. 올 거냐?”


“미쳤냐?”


“그럴 줄 알았어.”


박형은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갈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당연히 학교 사람들도 다 올 텐데, 학생이 성매매하는 사실을 숨겨서 잘린 전 계약직 교사가 자리할 곳이 아니다.


“축의금만 보낼게. 10만 원. 콜?”


“째째한 새끼. 더 내.”


“내 결혼식에는 로또 낼 사람이 바라는 건 많아.”


우리는 바로 어제까지 친하게 지낸 사람들마냥 편했다. 나는 그 사실이 퍽 감사했다. 박형은 한없이 가벼운 인간이었지만, 나를 향한 우정은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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