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침대에 걸터 앉아 있었다.
오렌지색이 감도는 은은한 조명, 푹신한 이불이 덮힌 단순한 매트리스. 40인치 정도 되는 TV 모니터에 내 모습이 비쳤다. 와이셔츠에 검은색 슬랙스를 입고 있었다. 나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며 물줄기가 바닥에 떨어져 부서지는 소리를 들었다.
샤워실 문이 열렸다. 하연이 나왔다. 하얀 박스 티셔츠가 가랑이를 아슬하게 가렸다. 하연의 뒤로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하연이 아무 표정도 없이 나를 쳐다보더니 천천히 침대쪽으로 걸어왔다.
“바로 할 거야?”
하연이 물었다. 아무 높낮이도 없고,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였다.
하연은 내 앞에 우뚝 섰다. 나를 경멸하듯 내려다봤다. 하연이 천천히 손을 아래로 가져가 팔을 교차하여 티셔츠 아랫단을 잡았다. 하연의 두 손이 슬며시 올라갔다.
“벗지 마.”
나는 말했다. 하연의 티셔츠가 배꼽까지 올라가다 멈췄다.
“…왜? 안 할 거야?”
“같이 자자고 했잖아. 섹스를 하는 게 아니라.”
“지금 장난해?”
하연이 헛웃음 쳤다.
“모텔까지 와서는 섹스는 안 하겠다고? 나 놀리는 거야? 선불이니깐 돈 내고 빨리 해.”
하연은 노골적으로 혐오감을 드러냈다. 자신은 돈을 받고 몸을 파는 창녀고, 나는 돈을 주고 여자의 몸을 사는 손님의 관계임을 확실히하고 싶어하는 듯했다. 나는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침대에 기어가 이불을 덮었다. 내 옆자리를 툭툭 쳤다.
“너도 누워. 같이 자자.”
하연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나를 노려봤다. 마치 이해할 수 없는 광인을 마주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녀의 눈에서 혼란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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