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녀와 선생 (14)

by천비단


“가끔은 다른 맥주도 갖고 오면 안 돼? 항상 같은 것만 마시니깐 질리는데.”


하연은 캔맥주를 따며 퉁명스럽게 불만을 표했다. 왼손으로 땀에 눌러붙은 뒷머리를 정리하면서, 오른손으로 맥주를 입술에 가져갔다. 그녀의 가느다란 목이 넘실대며 꿀꺽꿀꺽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곧 여름방학인데 계획 있어?”


“계획은 무슨. 계속 돈 벌어야지.”


“어머니 상태는 어떠셔?”


“똑같아. 일어날 기미도 안 보여.”


그녀는 맥주캔을 발갛게 상기된 볼에 가져가댔다. 반대손으로 민소매 블라우스를 펄럭이며 열기를 식혔다. 새벽임에도 더위가 느껴지는 날씨였다.


나와 하연이 아침마다 캔맥주를 주고 받은 지도 4개월이 되어 간다. 그동안 여러 대화를 나누며 어머니 안부도 묻는 사이까지 발전했다. 처음에 하연이 나를 경계하던 때를 떠올리면 감개무량하다.


“곧 수술 들어갈 거야. 그거 받으면 많이 좋아질 거래.”


그녀는 담담하게 말하며 맥주캔을 귓가에서 흔들었다. 맥주가 찰랑이는 소리가 파도 소리처럼 청량했다.


“쾌유하시길 바랄게.”


“고마워.”


멀리서 413번이 얼굴을 보였다. 하연은 캔을 거꾸로 들어 목에 쏟아 부었다. 두손으로 캔을 찌그러뜨리고 내게 넘겼다.


“오늘 방과후수업 있지? 이따 보겠네.”


“학교에서 보자.”


“그래.”


하연은 버스에 올라타다 말고, 살짝 뒤돌았다. 잠시 망설이더니, 내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리고는 내 반응은 보지도 않고 바로 버스 안쪽으로 도망치듯 걸어갔다. 나는 놀랐다. 하연에게 저렇게 귀여운 구석이 있었나. 내게 손을 흔들어줄 만큼 신뢰가 쌓인 걸까.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의미가 없는 짓은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꼈다. 살랑거리며 바람이 불어 땀을 식혀주었다.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가던 길이었다. 복도 멀리서 남학생 둘이 스마트폰을 보며 걸어왔다. 당연하게도 그들은 내게 인사하지 않았다. 익숙한 상황이다. 나도 그들을 안 체 말고 지나가려고 했다.


나와 그들이 지나치던 순간이었다. 한 남학생이 작게 소곤거렸다.


“야, 이 년 존나 걸레였네. 이거 실화임?”


다른 남학생이 맞장구쳤다.


“이런 년이 우리 학교에 있을 줄은 몰랐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우뚝 멈춰섰다. 뒤를 돌아봤다.


“잠깐만, 얘들아.”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천비단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고양이로 태어날걸

84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총 22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13화창녀와 선생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