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등굣길에서 묻는 정의
새로 부임한 학교에서 가장 뜨거운 현안은 통학버스 노선이었다.
농어촌 학교에서 아이들의 등하굣길은 교육의 시작점이자 가장 첨예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는 오래전 세 학교가 통폐합되면서 면지역 중심학교가 되었다.
학생 수 감소라는 시대적 변화 속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학교가 하나로 합쳐지면서 아이들의 생활권까지 하나로 좁혀진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은 여전히 각자의 마을에서 살고 있고,
바닷가 마을, 산간지역, 좁은 농로와 굽은 해안도로가 하나의 통학권 안에 공존하고 있다.
학교는 현재 34인승 통학버스 두 대로 학생들의 등하교를 지원하고 있다.
여기까지 듣고 보면 학생수 50여 명의 소규모 시골 학교에 대형버스가 두 대나 필요한지 의아해질 것이다.
하지만 통학버스는 학생수만으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학생 수가 아니라 거리이고,
거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살고 있는 지역의 환경적 특성과 가정환경 등의 조건이다.
새 학기가 시작되자 학부모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1학년 아이가 매일 한 시간 넘게 버스를 탑니다,
학교를 눈앞에 두고 30분을 넘게 버스를 타고 다른 마을을 돌아옵니다,
왜 어떤 아이는 집 앞에서 타고, 어떤 아이는 큰 길가로 걸어 나와야 합니까?
우리 아이도 집 앞에서 타겠습니다,
초등학생과 중학생이 함께 공동통학을 한다는데, 중학생이 더 우선인 것 같습니다,
몇몇 아이 때문에 우리 아이가 위험한 길로 가야 합니까? 다른 안전한 길은 없습니까?
......
집 앞까지 버스가 오는 아이를 보면서 내 아이가 정류장까지 걸어 나와야 한다면 불공정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오랜 시간 버스를 타는 아이에게는 체류시간이 가장 큰 문제가 될 것이고,
맞벌이 가정은 승하차 시간이 중요했을 테고,
저학년 학부모는 내 아이의 안전을 최우선일 것이다.
중학생을 우선한다고 하지만,
중학교 입장에서는 버스 한 대로 한 시간 이십 분이 넘게 초등보다 더 넓은 학구를 돌아야 하는 어려움이 우선이었을 것이다.
모든 요구는 각자의 이유로 타당했다.
그러나 모든 상황을 동시에 충족하는 노선은 존재하지 않았다.
한 학생의 승차위치를 옮기면 전체 운행시간이 늘어났다.
특정마을 이동시간을 줄이면 다른 지역 학생들의 이동시간이 늘어났다.
누군가의 편의를 고민하면 다른 누군가의 불편이 커지는 구조였다.
통학버스 노선은 단숨에 해결할 수 있는 단순한 교통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제한된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의 문제였고, 결국 공정함과 공평함의 문제였다.
아이들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농어촌 학교의 아이들은 학교 밖에서 친구를 만나기 어렵다.
통폐합 이후 생활권은 더욱 넓어져서 학교에 오지 않는 이상 아이들이 만나 어울릴 수 있는 여건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는 부모님의 차가 필요해졌다.
그렇지 않으면 하루 대부분을 집안에서 휴대전화나 텔레비전과 함께 보낼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농어촌 학교에서 통학버스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다.
통학버스는 아이들을 세상과 연결하는 길이며,
친구를 만나고 공동체를 경험하는 출발점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실제 삶을 이해하는 일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교장, 교감, 행정실장, 운전주무관님과 함께 4개월 동안 수차례에 걸쳐 현장을 돌고 협의를 했다.
두 대의 통학버스의 통학로를 돌며 등교시간과 하교시간을 체크하고, 학생들의 피로도를 살폈다.
지도를 펼쳐놓고 노선을 그려보기도 하고, 직접 현장을 걸으며 도로 폭과 교통흐름, 회차 공간, 교통법규 위반 가능성까지 점검했다.
그렇게 학교는 수개월동안 대안을 모색했다
쉽지 않았지만 가장 최선의 두 가지 노선을 완성했고,
그에 따라 예상되는 문제점을 면밀히 검토했다
학부모위원과 운영위원을 모시고 통학노선조정위원회를 구성하고, 대안을 놓고 여러 차례 논의를 이어나갔다.
그 과정에서 학교는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학생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
-저학년 학생의 이동시간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특정 학생이나 특정마을이 아닌 전체 학생의 형평성을 고려한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한다 등이었다.
이 원칙들을 세우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른 이름이 있었다.
철학자 존 롤스였다.
그는 그의 저서 <정의론>에서 '무지의 베일'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내가 어느 마을에 사는지, 몇 학년인지, 집 앞에서 버스를 탈 수 있는지, 매일 오십 분을 이동해야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규칙을 만든다면 우리는 어떤 원칙을 선택할 것인가?
롤스는 사람들이 그런 상황이라면 가장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도 받아들일 수 있는 규칙을 선택할 것이라고 보았고 그 과정을 공정이라고 했다.
우리 학교가 가장 어린 학생, 가장 긴 시간을 이동하는 학생, 가장 위험한 통학환경에 놓인 학생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공감과 설득이 가능할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은 철학서처럼 단순하지 않았다.
맞벌이 부모의 사정, 형제자매가 초 중등에 다니는 가정, 통합자유학구에서 통학하는 학생들의 이동시간, 갑자기 전입해 온 원거리에 거주하는 유치원생 등은 무지의 베일 아래서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은 바로 이 지점을 지적하였다.
우리는 가족과 지역,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며, 자신의 관계와 경험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롤스가 "어떤 원칙이 공정한가?"를 묻는다면,
센델은 "우리는 어떤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가?"를 물어보아야 한다고 했다.
통학버스 노선 문제는 바로 이 두 질문이 만나는 자리였다.
학교는 가장 불리한 학생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했다.
동시에 공동체 구성원들이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함께 감당할 수 있는 불편의 범위를 찾아야 했던 것이다.
오랜 협의와 설득 끝에 결국 모두가 조금씩 불편을 나누기로 했다.
학교는 인근 중학교와 협의를 진행했고,
교육지원청의 컨설팅을 받아 새로운 노선 안을 보완하였다.
학부모 간담회에서는 노선도가 바뀐 부분에 대해 최선을 다해 프레젠테이션을 했고.
그러면서도 새로운 불만과 이의를 제기하는 학부모에 대해서는 설명보다는 경청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려고 했다.
통학버스 노선은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갈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우려를 표하는 학부모도 계시다.
학구의 지리적 특성상 좁은 도로와 급경사, 보행로가 없는 구간은 학교의 노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노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는 염려도 여전하다
하지만 학교는 할 수 없는 일을 설명하는 데 머물지 않기로 한다.
할 수 있는 일을 끝까지 바카라임지기로 한다.
버스 차량의 지속적인 점검과 안전운행,
아이들의 이동시간에 대한 꾸준한 점검과 노선의 개선,
그것이 우리가 지킬 수 있는 약속이었다.
모든 과정을 마친 지금도 이것이 '과연 최선일까', '누구에게나 공평한 결정일까' 하는 질문은 남아있다.
정의와 공정함은 무엇일까.
누구도 완전히 만족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가장 어린아이를 먼저 배려하고
가장 긴 시간을 이동하는 학생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며,
모두가 조금씩 불편을 나누어 감당하기로 합의했다면,
그것은 지금 우리 공동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정의에 가까울 것이다.
통학버스 노선은 한 번 정하면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학생 수는 해마다 줄어들고 마을의 상황도 끊임없이 변한다.
정의는 완성된 답이 아니라, 계속 수정하고 보완해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갈등을 없애는 일이 아니다.
갈등을 통해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더 나은 답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대화하는 일이다.
통학버스 노선은 단순한 이동 경로가 아니다.
그것은 아이들의 하루를 어떻게 시작하게 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며
우리의 공동체가 어떤 정의를 실천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매일 오가는 그 길 위에서,
학교는 교육의 가치가 교실 밖에서도 실현될 수 있음을 배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