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분은 보내지 말아 주세요

- 작은 학교에서 만난 간달프

by뭉클

작은 학교를 다녀왔다.
전교생이 스무 명 남짓인 학교였다.

홈스쿨링 학생들까지 합하면 스물세 명, 스물네 명쯤 된다고 했다.

숫자로만 보면 작다.

그러나 그날 내가 본 학교는 어떤 큰 학교보다도 활기찼다.
체육관에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한 평 집짓기" 준공식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아이들은 직접 목재를 자르고, 못을 박고, 벽을 세우며 두 평 남짓한 작은 집을 완성했다.

완공된 집의 크기는 작았지만, 그 안에 담긴 시간과 땀은 결코 작아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의 얼굴은 밝았다.
그 밝음은 단순히 행사가 즐거워서 생긴 표정이 아니었다.

자신이 직접 해냈다는 자부심, 친구들과 함께 무언가를 완성했다는 성취감이 배어 있었다.

발표를 하는 아이도, 작업 사진을 바라보는 아이도 어딘가 한 뼘 더 자란 듯 보였다.
목공교육의 힘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오늘날 아이들은 손보다 화면을 먼저 만난다.

클릭은 익숙하지만 망치질은 낯설다.

결과는 쉽게 얻지만 과정은 경험하기 어렵다.

그러나 나무는 다르다.

서두른다고 집이 완성되지 않는다.

친구와 호흡을 맞춰야 하고, 실수하면 다시 고쳐야 하며, 끝까지 바카라임져야 한다.
나무를 다루는 과정은 결국 자신을 다루는 과정이다.
목재 한 장을 세우기 위해 협력하는 동안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배려를 배우고, 실패를 견디며, 완성의 기쁨을 경험한다.

그날 프로젝트를 진행한 건축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이들은 지금 인생의 집을 짓는 토대를 쌓고 있는 중입니다."

목공은 단순한 기술교육이 아니라 사람을 만드는 교육 같았다.


그런데 이날 한 평 집보다 더 인상 깊었던 것은 학교와 교육공동체였다.
학교 곳곳에 교장의 철학이 스며 있었다.
학생들과 함께 숲을 가꾸어 정원을 만들고,

운동장은 전교생이 파크골프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아름답게 조성된 맨발 걷기 길은 학생들뿐 아니라 교직원, 학부모, 지역 주민들

그리고 홈스쿨링 학생까지 학교 안으로 불러들였다.

학교가 담장을 높이는 대신 온 마을을 품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들은 학교를 좋아했고, 학부모들은 학교를 신뢰했다.

지역민들은 학교를 응원하고 예산과 노력을 지원하기 위해 애썼다.


그날 학교장은 인사말을 이렇게 시작했다.

" 제가 우리 학교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러분 때문입니다.
부족한 사람인데도 이렇게 과분한 사랑을 받고 좋은 평가를 받는다면
그것은 모두 여러분 덕분입니다 "

학교장의 인사말 속에는 '나'보다 '우리'가 훨씬 많았다.

그리고 곧 이어진 학교운영위원장의 축사는 잊을 수 없는 장면이 되었다.

학교운영위원장은 단상에 올라 축사를 생략하고 더 중요한 이야기를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교육장을 향해 서서 이렇게 말했다.

"교장선생님이 이 학교에 오래 머물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학교장의 사랑한다는 고백에 보답이라도 하듯 진심을 담아 몇 번이고 부탁하는 것이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안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누군가를 향해 계속 있어 달라고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그동안의 노력을 인정한다는 뜻이고,

함께한 시간을 신뢰한다는 뜻이며,

앞으로도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이다.
교육자로서 이보다 더 큰 찬사는 없을 것이다.


학교의 변화는 결국 사람에게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학교장이 있다.

좋은 학교장은 훌륭한 건물을 짓는 사람이다.

사람의 마음으로 뼈대를 잇고, 교육공동체로 내부와 외관을 단단히 세우는 사람이다.

아이들이 힘을 합쳐 한평 집을 짓듯,

정작 교장은 그동안 학교와 지역을 담을 학교라는 더 큰 집을 짓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아이들이 행복하게 머물고,

학부모가 신뢰하며,

교직원이 함께 꿈꾸고,

지역슬롯가 찾아오는 집.
그 집은 목재로 지은 집보다 훨씬 크고 단단할 것이다.
그래서 그날의 준공식은 단순히 한 평 집의 완공을 축하하는 자리를 넘어 더욱 빛나 보였던 것 같다.
한 사람의 교육철학이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현실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자리였던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그가 마치 영화 <반지의 제왕>의 간달프 같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간달프를 강력한 마법사로 기억한다.

하지만 영화를 자세히 보면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된다.

간달프는 사실 직접 세상을 구하지 않는다.

반지를 들고 모르도르로 가는 것도 프로도이고,

왕이 되어 나라를 일으켜 세우는 것도 아라곤이며

용기를 내어 친구를 지키는 이도 샘이다.

간달프는 늘 한 걸음 뒤에 서 있다.

대신 그는 그 사람들 안에 숨어있는 가능성을 가장 먼저 알아본다.

모두가 평범한 호빗으로만 보았던 프로도에게 세상을 바꿀 용기가 있다는 것을 보았고,

방랑자로 살아가던 아라곤에게 왕의 자질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며,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작은 호빗들에게 중간계를 구할 힘을 발견했다.

간달프가 한 일은 마법보다 믿음이었다.

학교장은 마법 지팡이 대신 아이들과 지역민의 손을 잡고,

중간계 대신 작은 학교를 돌보며 한 걸음 뒤에서 학교를 지탱하고 있다.

사람을 믿고 사람을 연결하는 든든한 모습으로.

작은 학교에서 나는 간달프를 보았다.


"교육장님, 이분은 보내지 말아 주십시오."


그 말은 단순히 한 사람을 붙잡고 싶다는 뜻이 아니었다.

아마도 학교장이 만들어 온 공동체를 지키고 싶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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