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오노, 나무를 심은 사람
체육관 뒤편은 통로가 좁고 드나듦이 불편하여 오래 방치된 공간 같았다.
풀이 허리 높이까지 자랐고, 마른 덤불은 사람 손이 들어가기 어려울 만큼 엉켜있었다.
예초기를 넣기도 위험했고 당연히 사람이 직접 들어가 정리하기에도 위험한 구조였다.
어느 날 아이들이 웅성거리며 체육관 쪽을 기웃대고 있었다.
"선생님, 뒤에 염소 있어요"
검은 염소 한 마리가 체육관 뒤편에서 삐죽이 고개를 내밀었다.
자세히 보니 두 마리였다.
시설주무관님이 댁에서 데려온 염소였다.
그새 무성하던 풀들이 거짓말처럼 정리되어 있었다.
대단하다, 거기에 염소를 투입할 궁리를 냈다니...
돈도 거창한 장비도 들지 않았다.
행정도 아니고,
회의를 거친 계획도 아니고,
공문 속 해결바카라도 아니었다.
그저 삶 속에서 익힌 감각이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신뢰한다.
세상에는 매뉴얼로 움직이는 사람이 있고, 삶의 감각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
전자는 주어진 일을 처리하지만 후자는 공간의 결을 읽는다.
생각해 보면 그분은 늘 그런 식이었다.
낡은 창고를 손질하여 목재로 직접 제작한 평상이 들어섰고,
학교에 오시는 노인일자리 어르신들의 쉼터가 되었다.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농기구들은 저마다 분류되어
색깔별로, 용도대로 꺼내기 쉽게 전시되어 있었다.
봄이 오기 전에 면사무소로 달려가 꽃모종을 얻어와 화단을 손질했다.
봄꽃이 지면 여름꽃이 올라오고, 여름이 물러가면 가을꽃이 그 자리를 메울 것이다.
학교 풍경은 매일매일 새 단장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만든 텃밭도 그중 하나였다.
새벽마다 학교로 출근하여 미리 흙을 고르고 거름을 넣고 고랑을 만들고 비닐을 입혔다.
아이들은 고사리손으로 시설주무관님이 손질해 놓은 감자모종을 하나씩 받아 들었다.
세상 진지하게 주무관님의 설명을 듣고는 엄숙한 표정으로 감자를 심고 이름표를 꽂았다.
쉬는 시간마다 감자 앞으로 달려가서 쪼그려 앉아 흙을 만지고,
싹이 올라오는 속도를 비교하고, 감자꽃을 쓰다듬었다.
교실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표정들이었다.
“선생님, 제 감자 싹 났어요.”
그 짧은 말속에는 교과서 몇 장보다 더 살아있는 기쁨이 들어 있다.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학교는 공문으로만 움직인 지 않는다고.
학교를 살아있게 만드는 것은 대개 문서에 기록되지 않는 손들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먼저 움직이는 사람들.
메마른 공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들,
그 모습은 장지오노의 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을 떠오르게 한다.
우리 학교 시설주무관님의 손길은
전쟁과 황폐함 속에서도 묵묵히 나무를 심던 엘제아르 부피에의 손길과 닮았다.
그는 나무가 없기 때문에
이곳의 땅이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달리 해야 할 중요한 일도 없었으므로
이런 상태를 바꾸어 보기로 결심했다고 덧붙였다.
- 장지오노, 나무를 심은 사람 중에서-
거창한 구호 같은 건 없다.
다만 눈앞의 황폐함을 지나치지 않는 한 사람의 마음만 있다.
누군가의 칭찬이나 보상을 바라며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학교가 조금 더 따뜻해지기를
아이들이 환해지고 살아있는 공간에서 자라기를 바라며
묵묵히 손을 움직이는 사람인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아무런 기술적 장비도 갖추지 못한
한 사람의 영혼과 손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하니
인간이란 파괴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는
하나님처럼 유능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장지오노, 나무를 심은 사람 중에서-
세상은 늘 성과와 화려한 결과만으로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이런 종류의 숭고한 노동인지도 모르겠다.
조용하고, 반복적이며 잘 드러나지 않는 사람의 일.
꽃을 심고 나무를 가꾸고,
평상을 만들고 노인의 쉼터를 만들어주고,
아이들과 감자를 심고 흙의 소중함을 가르치고,
삶의 지혜를 한껏 발휘하며 학교 뒤편에 염소를 풀어놓는 일.
별일 아닌 것 같지만 정말 큰 도움이 되는
보이지 않는 손길들이 쌓여 학교는 살아난다.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 엘제아르 부피에는 양치기이다.
전쟁과 탐욕으로 황폐해진 산골 마을.
사람들은 떠나고 땅은 메말라간다.
그곳에서 그는 혼자 묵묵히 나무를 심는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선언도, 명성을 바라는 마음도 없다.
다만 황폐한 풍경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일 뿐이다.
수십 년 동안 이어진 그의 노동 끝에
메마른 산에는 숲이 돌아오고, 물이 흐르고, 사람들이 다시 모여 살기 시작한다.
장 지오노는 그를 두고 이렇게 쓴다.
아주 단순하게 자신이 할 일을
고집스럽게 해 나갈 뿐이었다.
- 장지오노, 나무를 심은 사람 중에서-
학교는 건물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누군가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오늘도 묵묵히 작은 숲을 만든다.
꽃을 심고,
흙을 일구고,
메마른 공간에 생명을 들여놓는 사람들.
학교가 아직 따뜻한 이유는
그런 손길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염소 두 마리를 운동장으로 데려와
아이들과 함께 염소를 보았다.
즐거운 날이었다.
염소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 말간 눈을 바라보며
사람에게 하듯 혼잣말로 속삭였다.
"고마워"
우리 학교에는 염소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