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용, 전진의 다큐멘터리 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
때로는 가장 어린 존재가 가장 오래된 지혜를 건넨다.
학생자치회가 주관하는 학생다모임이 있었다.
전교생이 다모임실에 모였다.
토론 주제는 이것이었다.
행복한 학교를 위해서는 무엇이 더 중요할까?
학생자치위원들이 직접 준비한 역할극이 시작되었다.
등장 학교 이름은 '배려초'와 '규칙초',
이 두학교의 놀이터에서 그네 타기 중에 일어나는 이야기다.
"네가 먼저 해."
"아니야 네가 먼저타"
서로 먼저 타라고 양보하는 중에 그넷줄은 엉키고 시간은 흐르고 모두 우왕좌왕한다.
배려는 넘쳤지만 오랜 양보 탓에 아무 일도 쉽게 정해지지 않고 있다.
배려초에서는 친구들끼리 서로 양보만 한다.
그럼 규칙초의 역할극은 어떻게 진행되나 보도록 하자.
규칙초 아이들은 스스로 규칙을 만드는 중이다.
그네는 세 번만 타기, 새치기하지 않기, 다 타면 바로 다음 친구에게 넘겨주기 등
조금 딱딱해 보여도 질서는 있다.
그러나 기다리지 못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다툼이 생긴다.
기준을 문제 삼는 아이들이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배우를 자처한 자치위원들의 행동들이 재미있어 아이들이 와아 웃었다.
역할극이 끝나자 슬롯를 맡은 자치위원이 드디어 질문을 던진다.
"여러분은 어느 학교 학생이 되고 싶나요?
이제 배려초와 규칙초 중 선택하여 자리를 옮겨주세요."
웅성대던 아이들이 어느새 자리를 잡고 찬반토론을 펼친다.
배려가 먼저라야 행복하다는 아이도 있고, 규칙이 있어야 질서가 있다는 아이도 있다.
시간이 갈수록 단어가 주는 무게 탓인지 아이들의 근거와 이유는 설득력이 떨어지고 있다.
그때 오 학년의 한 아이가 손을 들고 조용히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 배려도 규칙이어야 하고,
규칙도 배려가 있어야 합니다."
슬슬 지쳐가던 선생님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옅게 웃었다.
모두의 마음이 잠시 거기서 멈춘 듯하다.
규칙은 누군가를 억누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를 편하게 하기 위한 약속이다,
그리고 배려 또한 막연한 친절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기 위한 질서라는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봤을 말이다.
그러나 아이의 입에서 이런 문장이 나온다면 다를 일이다.
어른들은 오래 살아온 시간만큼 많은 설명을 덧붙이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가끔 어떤 아이들은 세상의 복잡한 원리조차 너무 당연하다는 듯 짧고 단순한 말로 꿰뚫어 버리는 경우가 있다.
마치 오래된 선문답처럼 말이다.
티베트 불교에는 '린포체(Rinpoche)'라는 말이 있다. 귀한 보물이라는 뜻이다.
그곳 사람들은 수행과 자비의 마음을 가진 고승이 죽어 다시 태어난다고 믿는다.
어린 몸으로 태어나지만 삶의 본질을 이미 알고 있는 듯한 아이들, 그들을 린포체라고 한다.
문창용, 전진 감독이 만든 한국다큐멘터리 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는 그런 린포체의 이야기다.
어린 린포체 앙뚜와 그의 스승 우르갼의 길고도 힘든 여정을 담은 영화다.
티베트와 맞닿은 인도북부 라다크의 해발 3000미터 히말라야 산골마을에는 다섯 살 소년 앙뚜가 살고 있다.
사람들은 그 아이를 전생의 고승이 환생한 린포체라고 믿는다.
그리고 앙뚜의 곁에는 가장 먼저 아이 안의 특별한 영혼을 알아본 스승 우르갼이 있다.
티베트와 중국의 관계가 막히며 국경이 닫히고, 오랜 세월 누구도 린포체를 찾아오지 않는다.
결국 두 사람은 소년의 전생의 사원을 찾아 나서기로 한다.
메마르고 험준한 겨울 산길과 눈 덮인 국경지대를 넘어가며 수많은 고난을 겪지만 둘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드디어 목적지에 다다른다. 영화는 계속 그러한 일상을 보여준다.
영화 속 어린 린포체는 때때로 놀랄 만큼 깊은 성찰의 말을 내어놓는다
오랜 순례 중에 몸과 마음이 지쳐버린 스승에게 조용히 말한다.
" 나쁜 마음이면 하지 마세요"
그 말은 꾸짖음이 아니라 맑은 물 같은 충고였다.
길게 설명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그 짧은 한마디가 어른들의 길고 복잡한 충고보다 더 깊게 마음에 와닿는다.
아직 세상을 모르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아이들은 가끔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오랜 세월 수행한 고승들이나 내어놓을법한 선문답 같은 맑고 단순한 문장을 건네곤 한다.
이런 장면도 있다.
곧 두 사람의 이별의 순간이 왔다.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고 아이처럼 엉엉 운다.
이제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를 앙뚜를 홀로 사원에 남겨두고 가야 하는 우르갼의 뒷모습이 쓸쓸하다.
스승 우르갼이 눈물을 닦으며 말한다.
"린포체가 어른이 되면 저는 아이가 되겠죠"
그러자 앙뚜가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그때는 제가 스승님을 모실게요"
이 대화는 환생의 진위를 따지기보다 인간이 얼마나 깊이 사랑할 수 있는 지를 보여준다.
다시 태어나도 서로를 알아보고 싶을 만큼의 인연.
그것은 종교 이전에 인간의 마음이다.
영화 속 앙뚜의 말들은 그렇게 단순하다.
그 단순한 말을 깊이 새기고 싶다.
어른들은 더 복잡하게 설명하고 더 많은 것을 가지려 애쓰는데,
아이는 사랑과 바카라임, 관계의 본질을 가장 짧고 명료한 한마디로 건네고 있기 때문이다.
더 많이 갖겠다고 더 많이 배우겠다고 우리가 붙들고 사는 모든 것들이 갑자기 누추하고 거추장스럽게 느껴진다.
어쩌면 지혜란 많은 것을 소유하는 능력이 아니라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을 단순하게 바라보는 아이들의 마음인지도 모른다.
티베트 불교의 린포체 Tulku Lobsang은 이런 말을 했다.
" 행복한 인생을 살고 싶다고 말하지 마세요.
행복한 하루를 살고 싶다고 말해야 합니다. "
생각해 보니 아이들이 그렇다.
아이들은 평생의 성공을 꿈꾸지 않는다.
오늘 친구와 나누었던 말들,
자기 말을 끝까지 들어준 사람들,
운동장에서 함께 뛰어논 일들을 더 크게 기억한다.
그래서 아이들의 세계에는 우리가 잃어버린 삶의 본질이 그대로 남아있다.
나익 들수록 계산하고, 비교하고, 의심하는 법을 채워가는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사람을 믿고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늘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순간에는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오래 잊고 지낸 삶의 중심을 내밀어준다.
" 배려도 규칙이고, 규칙도 배려예요."
" 나쁜 마음이면 하지 마세요."
" 그때는 제가 스승님을 모실게요."
그 짧은 말속에는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본질이 들어있고 인간됨이 살아있다.
단순하지만 오래 마음에 남는 문장이 되었다.
좋은 교육은 아이들을 우리 방식대로 완성시키는 알이 아니다.
아이들이 가진 선한 감각과 오래된 지혜를 꺼내어 잃지 않게 지켜주는 일이어야 한다.
갈피가 잡히지 않는 날들이다.
세상은 점점 빠르고 거칠어진다. 서로에게 쉽게 상처 주고 쉽게 등을 돌린다.
그럴 때면 나는 가끔 이런 영화들을 다시 보고 싶고,
아이들의 말을 오래 듣고 싶어진다.
때로는 가장 어린 존재가 가장 오래된 지혜를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