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펜션은 다 마감이라 일단 대기 예약 걸어두었어."
"그리고, 우리 텐트 하나 더 있어. 펜션 자리 안 나면 텐트에서 자 봐."
그녀의 이 한 마디 이후, 마치 기다렸다는 듯 모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캠핑... 많은 사람들의 로망, 멋진 취미 혹은 일상으로 자리 잡은 그것. 드디어 나에게도 그 ‘캠핑’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산도 좋아하고 바다도 좋아한다. 새파란 하늘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바람 솔솔 부는 계곡에 발 담그고 있는 시간은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나무에서 나는 향도, 숲에서 나는 진한 풀 내음도 참 좋다.
나는 자연을 좋아한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 자연을 온전히 느끼고 즐기기 위해 캠핑을 하는 거겠지.
하지만 수년의 세월이 흐르며 나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서서히, 그리고 아주 명확하게 깨닫게 되었다. 내가 자연과 함께하는 이 즐거운 시간을 위해 감당해야 하는 부수적인 것들—각종 벌레들, 불편한 화장실과 잠자리 같은 것들을 기꺼이 건뎌낼 만큼 자연을 ‘열렬히’ 사랑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벌레라면 질색팔색을 하는, 야생과 거리가 먼 도시형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늘 마음 한구석에는 아이들에게 자연과 함께하는 '자연스러운 시간'을 선물하고 싶었다. 엄마인 나의 개인적인 취향과 두려움 때문에,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누릴 수 있는 아름답고 소중한 경험을 놓치는 건 미안하고 싫었으니까. 땅을 밟고, 밤하늘의 별을 보고, 텐트 안에서 각종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잠드는 그 수수한 기쁨을 아이들의 기억 속에 꼭 새겨주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더 크기 전에 야생 그대로의 '쌩 캠핑'을 떠나보기로 마음먹었다.
펜션이 결국 안 나오면 개고생이 기다리겠지만 그래도 뭐 한 번 해보자는 결심으로.
일단 아이들에게 펜션으로 밑밥을 던졌다.
"아... 그런데 혹시 안 되면 텐트에서 자야 할 수도 있어."
돌아온 대답은 예상대로 "그럼 안 갈래."였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이번 캠핑만큼은 왠지 모르게 밀어붙이고 싶었다.
"모든 경험은 다 피가 되고 살이 돼. 한번 해보고 영 아니다, 진짜 힘들다 싶으면 다시는 안 하면 되잖아? 이 참에 나의 새로운 취향을 발견할 수도 있는거고."
"............... 샤워실은 있는거지?"
"응. 엄청 깨끗하대, 캠핑 많이 한 이모들이 청결하다고 했으니 믿어 봐."
"................알았어."
그렇게 어설픈 타협을 마치고, 일주일 전부터 장보기가 시작되었다. 텐트 안에 깔 가장 중요한 매트부터 세면용품, 랜턴, 음료와 물, 술과 과자, 과일, 일회용품, 써큘레이터, 충전기, 그리고 고기까지. 정작 부피가 제일 큰 텐트는 친구네가 가져오는데도 우리 차 트렁크는 이미 만석이었다. 심지어 우리 텐트까지 실은 친구네는 짐 때문에 애들을 못 태울 뻔했다는 농담을 건넸는데, 보내온 사진을 보니 캠핑 고수라 가능한 테트리스 적재 기술 덕분에 아이들이 탈 공간이 겨우 나올 정도였다.
40도가 넘어버린 올여름 폭염 속에 첫 캠핑을 간다 하니, 또 다른 캠핑 고수이자 러버인 A는 내게 말했다.
"내가 캠핑 진짜 사랑하는 거 알지? 그런 나도 여름에는 안 가, 지혜야."
"개고생한다 생각하고 가는 거야. ㅋㅋㅋㅋㅋ"
"ㅋㅋㅋ 네가 캠핑을 좋아했음 좋겠는 사람으로서... 단단히 마음먹고 가. 계곡은 있는 거지?"
"응. 바로 옆에 있어. 같이 가는 집이 에어컨도 샀대, 우리는 써큘레이터 가져가고."
"대박...! 그럼 괜찮을 거야. 재밌겠다. 잘 다녀와."
도착하자마자 벌과 모기들의 공격으로 우리 딸들만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노릇노릇 구워지는 목살과 소시지 냄새 덕분에 견녀냈다. 비 예보가 있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텐트를 칠 때는 날이 화창했다. 마침내 완성된 우리의 첫 텐트. (비 오듯 땀을 흘리며 텐트를 쳐준 친구 남편에게는 정말이지 고맙고 미안할 따름이었다.)
우리 집을 제외한 두 가족은 모두 아들만 있는 집이었다. 계곡에 들어가자마자 15분 만에 다 놀았다며 나가자는 우리 딸들과, 한 시간이 지나도 물 밖으로 나올 생각이 없는 아들들을 보며 서로 허허 웃었다.
'딸과 아들이 이렇게나 다르구나.'
신나게 물놀이를 마쳤으니, 본격적인 먹부림이 시작되었다. 나름대로 이것저것 야심 차게 챙겼는데, 캠핑 고수들 비주얼 앞에서는 한없이 단촐한 차림새였다. 1차로 가볍게 고기를 끝내자마자 오리주물럭과 도가니스지탕, 그리고 칼국수가 조금의 쉴 틈도 없이 이어졌다.
'자연 속에서 먹으면 뭐든 더 맛있다'는 말이 크게 와닿지 않았었다. 하지만 왠 걸, 이 날은 정말 차원이 다른 맛이었다. 마지막 피날레로 모닥불에 마시멜로우까지 구워 먹으며 하늘을 보는데 순도 100퍼센트의 즐거움을 느꼈다. 중학생부터 일곱 살까지 제각각인 나이대의 아이들도 큰소리 한 번 안 내고, 찡찡거림 하나 없이 매 순간 잘 먹고 잘 놀아주었다.
잠자는 내내 비가 억수같이 퍼부었지만, 잠도 잘 잤다. 모든 것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수월했다.
개고생을 단단히 각오하고 떠난 설악에서의 1박 2일. 하지만 고마운 사람들 덕분에 매 끼니 황송한 특식을 대접받으며 다정하고 말랑말랑한 추억을 한가득 안고 돌아왔다.
이만하면, 아주 성공적인 첫 '야생의 쌩 캠핑'이었다.